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팔당댐 인근인 이곳에 26일 아침부터 트랙터 다섯 대가 마을 들머리를 막아섰다. 트랙터 뒤로는 철망이 둘러졌다. 농민들은 농기구 대신 마이크와 플래카드를 들었다.

“강제측량을 막아냅시다. 본인의 행동에 책임지지 못하는 대통령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느 때 같으면 수확 철이라 손이 바빴을 가을 농가에 기계소리 대신 마이크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4대강 정비 사업에 팔당댐 유역이 포함되면서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아온 유기농 100여 가구가 농지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26일 경찰병력을 투입해 팔당댐 인근 농지를 측량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농민과 생활협동조합 회원 60여 명이 오전 9시부터 마을 입구를 차단했다.

유기농 농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9월 방문해 격려한 사진이 프린트된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했다.
이날 ‘강제 측량’이 시도된 곳은 팔당댐 인근 진중리·양수리·송촌리 등 일대.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는 “측량을 하려면 사업시행자가 5일 전까지 시장에게 통지해야 하고 토지 점유자에게도 출입구역, 출입기간 등을 통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도 조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농사를 짓고 싶다' 26일 경기도 두물머리 농민들이 트랙터로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오전 10시, 두물머리(양수리)에서도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직원들과 농민들 사이 대치가 벌어졌다. 경찰의 보호 아래 측량을 시도하던 기사들은 농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물러났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아무리 유기농 가구라고 해도 불특정장소에서 불특정하게 수질오염물질을 배출해 오염이 되는 ‘비점오염원’이라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유지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국토를 여러 사람이 공유해 환경도 살리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0월26일 경기도 두물머리(양수리)에서 경찰의 보호 측량에 나선 기사들

16년 째 유기농 농사를 지어온 박수창씨(62)는 “팔당댐 건설 당시 살길을 막아놓은 다음 유기농을 장려하더니 이제와 농사를 짓지 말라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친환경 농법이 하천 오염을 막는데 큰 구실을 했다는 것은 공무원들이 더 잘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 찾아 격려하기도

민주당 의원 다섯 명도 현장을 찾았다. 최재성 의원은 “홍수 피해도 거의 없던 이곳을 갑자기 4대강 사업에 포함시키고 100억원 가량 매출을 내던 유기농 가구들을 나가라는 처사는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김상희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도 찾아와 좋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 와 무슨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이곳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9월 방문해 농민들을 격려한 마을이다. 이날 농민들은 상추를 뜯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이 프린트된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했다.   

유기농 농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9월 방문해 격려한 사진이 프린트된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했다.
낮 12시께 김명국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이 현장을 방문해 농민들과 협상을 벌였다. 노승주 남양주 부시장 등이 합석해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와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서로 의견차만 확인하고 끝났다. 이날 비록 농민들의 저항으로 측량이 이뤄지지 못했지만 29일까지 매일 측량을 계속할 예정이다. 팔당생명살림 방춘배 사무국장은 “측량을 계속 저지하겠다. 이후 공사시행 고시가 나도 시행 법원에 공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충돌 과정에서 농민들 19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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