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수확의 계절인데도 농민들은 절망에 빠져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재고량에 설상가상으로 북한으로 보내는 쌀 지원이 중단됨으로써 쌀값이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울화통이 터진 농민들 중에는 누렇게 익은 논을 갈아엎고, 나락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농민들의 행동을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해방 뒤 농지개혁 이후, 오랜 세월 지주 밑에서 땅을 빌려 목숨을 이어가던 수많은 소작농이 자신의 땅을 갖게 되어 행복한 경작을 하던 때가 잠깐 있었다. 그 무렵 우리의 농촌 공동체는 물론 가난했지만 전쟁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로 접어들어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무엇보다 저곡가 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공업화를 시도하였고, 이로 인해 농촌은 다시 피폐해지면서 엄청난 농촌 인구가 수십 년에 걸쳐 도시의 슬럼으로, 공장으로 유입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도권은 과밀현상을 초래하고, 지방은 황폐해지고 말았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무엇보다 농촌 죽이기를 기축으로 한 경제정책 노선은 그 후 한번도 근본적인 교정 없이 계속되었고, 이 나라의 정책과 여론을 좌우하는 엘리트들은 오로지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조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 결과 비록 경제지표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성취했으나, 장기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불안하고 허약한 생존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현재 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식량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북한이 1990년대에 들어서 러시아와 동유럽으로부터 들여오던 석유와 원자재 공급이 끊어지면서 일시에 농업 붕괴 현상을 겪고 대량 기아 상황으로 빠져들었을 때에도 식량자급률은 지금 남한에 비하면 월등 높았다. 지금 남한의 식량자급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석유의 힘을 빌린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석유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상황이 닥치고 수출산업이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때 남한 사람들은 북한 동포들이 겪었던 것 이상으로 고통을 당할 것이 틀림없고, 이 나라는 아마도 아비규환의 상황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온갖 징후로 보아서 그런 날이 조만간 닥칠 가능성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힘 있는 자들은 아직도 비현실적인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수출만이 살길이라면서 그나마 간신히 남아 있는 소중한 농경지를 4대강 사업이니 보금자리 주택단지 건설이니 혁신도시 조성이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토목공사를 통해서 깡그리 제거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참으로 경악할 만한 것은 합리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러한 사업들을 엄청난 국가예산을 들여 주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엄격한 사전 환경조사도 거치지 않고, 마구잡이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사회에서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러한 권력의 폭주로 지금 당장 희생당하는 것은 땅과 생계수단과 집을 뺏긴 민초들과 자연환경이지만, 궁극적으로 부유한 자, 가난한 자, 권력 있는 자, 권력 없는 자를 막론하고 모든 존재가 이로 인한 재앙의 피해자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식량 자립 못하면 ‘노예화’는 필연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오늘날 생존해 있는 가장 존경할 만한 현인의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국 경제가 IMF 통치 아래 들어가던 1998년 1월 서울을 방문하여 당시 출범을 앞둔 김대중 정부를 향해 던진 간곡한 충고가 있다. 그는 한국이 IMF의 돈을 받되, 그 돈을 수출만이 살길이라면서 장기적인 고려 없는 고식적인 정책을 확대하는 데 쓸 게 아니라, 농업과 에너지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자립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 모두 시각이 좁고 편벽된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통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주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재앙에 직면했고, 남한은 무역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결국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말〉 1998년 1월호).

벌써 10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갈퉁의 이 충고는 여전히, 아니 갈수록 적실성을 띤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든 국가든 자립성을 첫째로 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렇지 않을 때, 설혹 운이 좋아 대파국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노예화는 필연적이다. 농민과 농촌을 살리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기자명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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