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말, 두 남자가 만난다. 한 사람은 세상이 좁다며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탐사전문 기자 이규연씨(사진 오른쪽)였고, 다른 한 사람은 루게릭병에 걸려 4년여 병상에만 누워 있던 박승일씨(사진 왼쪽)였다. 이씨가 박씨의 이야기를 내러티브 저널리즘(사건이나 인물을 정밀하게 추적해 소설처럼 엮는 기사 쓰기)으로 다루고 싶어 만남을 청했고, 박씨가 청을 받아들여 성사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한 사람은 자신의 고통과 강한 삶의 의지를 이야기하고, 또 한 사람은 그 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해 나가기로….

이후 박씨는 손발과 입 대신 안구 마우스(눈동자를 움직여 컴퓨터에 글을 쓰는 장비)를 사용해 자신의 내면과 일상을 기록해 이씨에게 이메일을 쏘았다. 때로는 ‘지상지옥/아침에눈을뜨고싶지않고그데(대)로갔으면/전날잠들기전그런생각을하곤해요’ 같은 절망적인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이씨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엉망인 글을 보며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는지 거듭 확인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이씨는 박씨에게 받은 이메일 50여 통을 정리하고, 박씨 주변 사람 50여 명을 인터뷰했다.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출판 이야기를 하자 박씨는 자신의 이름도 저자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책 판매금의 50%를 루게릭병 환자 후원금으로 내기로 했는데, 자신의 이름으로도 후원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에서였다. 10월24일 오후. 박씨의 집에 루게릭병 환우와 출판사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기적의 거인’ 박승일씨의 희망 일기를 담은 〈눈으로 희망을 쓰다〉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이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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