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 황제를 지낸 푸이(왼쪽 세 번째)와 그의 가족.

만주(滿洲)를 아십니까? 아마도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로 시작하는 〈광야에서〉라는 노래를 기억하실 겁니다.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 이 노래를 뜨겁게 불렀던 나조차 그때 우리가 왜 한국의 민주주의를 희구하면서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이라는 가사에 전율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내게 최초의 만주 이미지는 이육사와 윤동주에게서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동아시아의 ‘역사 전쟁’이 불붙으면서 이른바 중국의 ‘동북 공정’ 문제가 동아시아 역내의 주요한 분쟁 의제가 되면서 다시금 만주 이미지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주 문제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 〈1Q84〉에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문학청년 덴고의 아버지는 일제 말기 만주에 농업 이민을 갔다가 패전 후 완전히 삶이 뿌리 뽑혀 귀향한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만주라는 표현을 쓰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입니다. 중국은 청나라 시대부터 그것을 ‘동북(東北)지역’이라 불렀고, 이는 국경 개념이 희미했던 변경(邊境)을 명백한 중국의 관할로 확정하고자 하는 의욕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만주에 대해 떠드는 것은 최근에 읽은 오카베 마키오의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어문학사) 때문입니다. 한국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만주는 미스터리였습니다. 조선인에게 만주는 국외 무장 항일투쟁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 역시 반제국주의 투쟁의 중심 장소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대아시아 정책의 최전선이자, 소비에트 남하를 막는 ‘반혁명의 전초기지’였고, 태평양전쟁 이후로는 후방 기지 성격을 띠는 중층적 공간이었습니다. 

만주는 일제 말기 총력전 체제의 희생양

일제 말기 문학을 공부하면서도 나는 만주라는 공간에 대해 실감할 수 없었고, 그래서 수 년 동안 이 시기 전문가인 김재용 교수(원광대)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막연하나마 만주의 이미지를 그려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제 말기 문인들의 만주체험〉(역락)을 김재용 교수의 지도 아래 편집하기도 했지만, 역시 내게 만주는 실감이 없는 한 개념일 뿐이었죠.

그러다가 최근 번역된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을 읽고 보니, 지난 수년간 피상적이던 만주인식의 한계를 넘어 분명한 실체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저자인 오카베 마키오의 만주 연구는 일본 지식인들이 견지하는 매우 끈질기면서도 무서운 학문적 태도를 느끼게 합니다. 어떤 직업적 안정 없이도 수십 년에 걸쳐 만주국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념을 발휘하는 것은 존경스러울 정도지요. 마치 일본에는 임종국 선생이 여러 명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은 1932년 만주에 성립되었던 ‘만주국’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일본의 파시즘이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반혁명으로 성립되었으며, 만주 역시 조선과 함께 일제 말기 총력전 체제의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만주국이 중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말은 조선의 근대화가 그렇듯 날조된 거짓말이라는 것이지요.

기자명 이명원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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