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북한군 수뇌부를 개편한 직후인 지난 5월 인민군 977부대를 시찰하는 김정일 위원장(가운데).
북한군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4월25일 북한군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북한군 최고 수뇌부를 10여 년 만에 사실상 전면 개편했다. 최근에는 인민무력부 부부장이었던 김정각 대장을 새로 만든 직제인 총정치국 제1부국장으로 임명했다.

‘오늘의 변화가 곧 내일의 준비’라고 볼 때 최근에 드러난 김정일 위원장의 북한군 주요 인사 개편 방향은 대중 군사관계에서 모종의 변화를 추구하는 신호로 파악되기에 충분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북한군 주요 승진 및 보직 인사의 특징 중 하나는 1990년대 중반의 비중국 출신 유학파 군부 인사 우대에서 지중(知中) 혹은 친중(親中) 군부 인사의 등용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중반 이전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총참모장, 전재선 제1군단장, 현철해․박재경 총정치국 부국장, 리명수 작전국장, 주상성 인민보안상, 김윤심 해군사령관 등 김 위원장의 측근은 거의 유학파 출신으로 중국과 별 연고가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같은 시기에 중국 담당 대외사업 부서의 간부는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북한 군부 인사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2006년 4월 리봉죽 부총참모장과 최부일 부총참모장이 상장으로 진급하면서부터이다. 리봉죽 부총참모장은 1992년 4월 중장 및 부총참모장으로 승진했는데 같은 해 같은 날 함께 중장으로 진급한 리명수, 지영춘, 박승원, 오금철, 김기선, 심상대, 리병삼 등이 모두 2000년 초에 상장․대장으로 진급한 것과 비교하면 14년이나 늦은 진급이다. 그는 1997년 6월 북한군사대표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 군사위원 겸 총참모장인 푸취안유(傳全有)와 환담한 일이 있다.

최부일의 경우, 1995년 중장 진급 이후 11년 만에 상장 및 부총참모장으로 승진했다. 상장 진급 이후 2007년 1월15일 김정일의 593군 및 398군부대 시찰 때 동행하고 올 3월에는 김정일의 주북한 중국대사관 방문을 수행했다. 김정일 시대 북한군 주요 장성의 1계급 승진에 걸리는 시간이 5~10년이기 때문에 승진이 그리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없다. 최근 북·중 국경 경비와 관련해 북한 탈주자의 송환 문제에 대한 중국군의 협력을 이끌어낸 것이 주요 공로로 인정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2004년 방북한 중국군 국경경비대표단을 접견한 바 있으며, 2006년 9월 북한군 국경경비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차오강촨(曹剛川) 중국 국방부장과 협의한 인물이다.

김정각을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 임명한 까닭

또한 올해 4월에 총참모장으로 임명된 김겸식 대장은 2004년 7월12일 당시 서부전선을 담당하던 북한군 제2군단장으로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함께 비공식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군 관계자와 협의했다고 알려졌다. 가장 최근에는 총정치국 제1부국장 직제를 신설하고 인민무력부 부부장이었던 김정각 대장을 임명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김 위원장의 대중국 군사관계 변화를 예고하는 포석이다.

ⓒ조선중앙TV지난해 4월 방북한 차오강촨 중국 국방부장(왼쪽)을 영접하는 김정각 당시 인민무력부 부부장(오른쪽).
북한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은 북한군 창군이래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 없는 직책이다. 그러나 과거 북한군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 차수나 북한군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이었던 김명국 작전국장 혹은 리명수 작전국장 등 유사한 직책에서 유추해 볼 때 총정치국 제1부국장은 총정치국 내 4~5명의 부국장 중 선임으로서 총정치국장의 건강 악화나 궐석 등이 발생할 경우에 임시로 총정치국장의 업무를 대리하는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김정각을 총정치국장이 아니라 제1부국장에 임명한 것으로 보아 최소한 현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하기는 했으나 아직 사망하지는 않은 상태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단순히 조명록의 건강 악화 때문에 제1부국장 직제를 신설한 것일까? 이미 조명록 총정치국장은 2005년 상반기 이후 건강 악화로 김정일의 지방 시찰에 동행하지 않았으며, 공개 활동과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 시기부터 총정치국장 조명록의 업무는 별 문제 없이 김기선 총정치국 간부 담당 부국장이나 현철해 조직부국장, 박재경 선전부국장 등이 담당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총정치국 제1부국장을 굳이 신설하지 않아도 기존 총정치국 부국장들이 총정치국장의 업무를 실무적으로 관장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총정치국 제1부국장을 임명한 이유는 조명록의 건강 악화에 따른 대리 수행이라는 대내적 의미보다는 대외적으로 총정치국장을 대신해 북한군을 대표하고 책임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을 공식화할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총정치국 제1부국장으로 임명된 김정각 대장은 누구인가? 김정각 대장은 1946년생으로 북한군 820전차군단장 참모장 출신의 정통 군사지휘관이다. 군사 이론과 군사 외교에 밝고 특히 두 시간 동안 원고 없이 연설을 할 정도로 웅변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진급은 상대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1992년 2월 상장 진급 및 인민무력부 부부장 보직임명 이후 10년 만인 2002년 4월 대장으로 진급했다. 김정일 시대 승승장구했던 군부 인사들인 전재선 차수(5년), 김명국 대장(2년), 김격식 대장(5년), 현철해 대장(5년), 박재경 대장(3년), 김윤심 대장(5년), 리명수 대장(5년) 등과 비교하면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1992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정일에 의해 단행된 북한군 내 30여 명의 대장 진급자 중 가장 진급이 늦었으나, 가장 젊은 대장 진급자이기도 하다.

ⓒ신화사3월5일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해 류샤오밍 대사(맨 왼쪽)와 건배하는 김정일 위원장.
특히 그는 김일성이 살아 있던 1994년 4월 북한군 친선대표단을 이끌고 방중했고, 1995년 4월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으로 북한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재차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일 시대 보기 드문 ‘지중’ 혹은 ‘친중’ 성향의 인물이다. 올 3월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 방문에 동행해 류샤오밍 중국 대사와 환담할 때 배석했다. 또한 지난 10월2일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노무현 대통령을 평양 4.25 문화회관 앞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리명수 대장과 함께 영접함으로써 그의 위상 변화가 이미 감지됐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총정치국에서 오랫동안 뼈가 굵은 김기선 부국장이나 현철해 대장, 제1군단 정치위원 출신인 김승연 당부부장 등을 제1부국장으로 기용하지 않고 군사 외교에 능하다고 알려진 김정각 대장을 총정치국 제1부국장으로 임명한 것은 대외적으로 대중국 군사 관계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의도된 포석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가진다.

북·중 우호동맹조약 개정 가능성

대중 군사 관계 변화의 핵심에는 뭐니뭐니 해도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이 들어 있는 북중 우호동맹조약의 전면 개정이 놓여 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은 북중 우호조약의 개정이 북한의 대외 관계 개선에 좀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보장 약속이 한국의 핵 개발을 억제하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안보의 버팀목이었듯이 북중 우호동맹조약은 그동안 중국의 대북 안보 공약으로 기여한 반면에 북한의 대미․대일 접근이나 관계 개선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북중 우호조약상 제2조 자동개입 조항의 개정은 첫째, 북한의 안보를 북한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함으로써 북한의 핵 보유를 묵시적으로 인정받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둘째, 중국과의 느슨한 동맹은 대미 관계 및 대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접근에 한층 더 유리할 수 있고 셋째, 중국 역시 정치 부담을 덜어주는 조약 개정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북한의 적극적인 개정 방침이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가까운 시일 내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또다시 성사될 경우 북중 우호조약 개정 문제가 중요 의제로 다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무로는 김정각 제1부국장의 중국 방문 또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고재홍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kjh0022@in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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