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모습.

불빛에 반짝이는 깨진 유리 조각을 수정에 빗댄 ‘수정의 밤’(Kristallnacht)은 턱없이 관대한 표현이다. 이 책 한국어판 부제 ‘대학살의 전주곡’ 또한 그날 낮밤에 걸쳐 독일어권 전역에서 일어난 가공할 테러의 실상에는 한참 모자란다. “1938년 11월10일 이른 시간에 시작되어 해질 녘까지 계속된 독일 유대인에 대한 폭력은 파괴의 회오리를 일으키며 터져나왔다.”

그것은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그날을 온전히 체험한 이들에게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바로 그 밤의 발단과 결과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바로 그 테러의 확산을 낳은 6년을 주목한다. 그리고 수정의 밤에 대한 독일 유대인과 독일 정부, 전 세계의 반응을 추적한다.”

수정의 밤은 1938년 10월18일, 유대인을 쫓아내라는 히틀러의 명령에서 발단한다. 이날 독일에서 쫓겨난 1만2000명이 넘는 유대인 중에는 하노버에서 27년 남짓 거주한 부부도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살던 그들의 아들 헤르셸 그린스판은 이에 격분해 독일 대사관을 찾아가 3등 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를 저격한다. 11월6일 그린스판이 쏜 총에 맞은 폼 라트는 사흘 후 세상을 뜬다.

그런데 수정의 밤의 기원은 395년 전까지 거슬러 오른다. 1543년 마르틴 루터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사목 서한에서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는 “불로 태워야 하고 타지 않고 남은 것은 모조리 진흙을 덮거나 뿌려서 아무도 그 재나 돌조각을 볼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존엄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람들 모두를 악마로 만든 ‘편견을 가진 소수’

나치 독일 외교관의 목숨 값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도, 이를 빌미로 나치가 독일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직 폼 라트에게 숨이 붙어 있던 11월8일 나치는 유대인에 대한 첫 번째 집단 처벌로 유대 신문·잡지 발행 즉각 중단, 유대 어린이들의 공립학교 퇴교, 유대인 문화 활동 금지 조처를 내린다. 또 이날 일부 지역의 시나고그가 불에 타고 유대인 상점의 쇼윈도가 박살난다. 11월8일 밤에서 9일로 넘어가는 밤 사이에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70명이 처형당했다.

폼 라트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하루가 지난 뒤 나치 돌격대원의 만행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독일 전역에 산재한 시나고그 1000여 곳이 불에 탔다. 유대인 상점의 유리창은 무참히 깨졌고 가게 안의 물건은 모조리 약탈당했다. 유대인 가정은 가택 수색을 받았다. “그 24시간 동안 16세부터 60세 사이의 유대인 남성 3만명 이상이, 그러니까 독일 내에 남아 있던 모든 유대인 남성의 4분의 1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나치는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며 적반하장이며  분수를 모른다. 물고문은 약과다. 삽과 곤봉과 채찍질로 사람을 죽이는 거야 널리 알려진 악행에 속한다. 하지만 계속 코를 고는 노인의 얼굴을 밤새 때려 죽이다니! 수정의 밤 다음 날 베를린에서는 유대인이 입은 재산 피해를 유대인 스스로 변상해야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잊는다. 수정의 밤에 붙잡혀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유대인 남자들은 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입조심을 하라는 나치의 협박에 짓눌렸기 때문이다. 다하우에 끌려갔던 헤니 프릴루츠키의 아버지는 50년 뒤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유대인 난민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세계 각국의 갖가지 핑곗거리는 인류애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프랭크 폴리, 펑샨 호, 아리스티즈 데 소사 멘데스, 에미 에르트만의 종족과 국적을 초월한 목숨을 건 선행은 큰 위안이 된다. 그런데 ‘찾아보기’에 “호, 펑샨” 항목만 있는 건 꽤 아쉽다. 적어도 프랭크 폴리의 인류애 실천은 금방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폴리, 프랭크 122~123, 126, 164~169, 206~208, 222.”

“그 밤은 편견을 가진 소수가 사람들 모두를 악마로 만들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의 저자 마틴 길버트가 말하는 수정의 밤이 남긴 교훈 중 하나다. 정말 일부 극소수만의 문제일까?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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