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푸단(復旦)매체여론조사센터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98%가 자신이 중국인인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또 세계 모든 나라를 놓고 조국을 고를 수 있더라도 중국인이 되겠다고 밝힌 이들이 94.9%나 됐다. 더 나아가 응답자의 95.9%가 중국인은 무조건 중국을 지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국내 한 경제신문의 지난 10월5일자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건국 60돌을 맞아 중국에서 이는 애국주의 캠페인 와중에 실시된 조사이니, 여론이 얼마쯤 부풀려졌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설문조사 타이틀이 ‘공화국 60년의 발전’이었다 한다. 응답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애국심이 표출되기 좋은 분위기였던 셈이다. 또 다른 국내 경제신문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해 보도한 브랜드 컨설팅 기관 레퓨테이션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의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프랑스 스페인 칠레 미국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사람보다는 앞섰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인도 사람에게는 뒤졌다. 그러니 푸단매체여론조사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겠다.

중국의 ‘애국동맹’이 한국에 상서롭지 못한 까닭
 

그러나 그것을 감안해도, 인류 다섯 가운데 한 사람이 특정 국가를 향해 드러내는 이 배타적 연대의 풍경에는 뭔가 무시무시한 데가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10월5일 발표한 ‘2009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중국은 92위였다. HDI는 소득과 교육수준, 평균수명과 유아 사망률 따위를 종합해 매기는 나라별 ‘삶의 질’ 성적이다. 이 순위에서 앞자리를 차지한 10개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2위)와 캐나다(4위), 일본(10위)을 빼면 모두 유럽 국가였다. 미국은 13위, 한국은 26위였다. 물론 HDI의 객관성을 맹신할 것은 없다. 또 삶의 질과 애국심의 농도가 비례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 둘이 전혀 무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튼 중국인이 누리는 삶의 질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들의 애국심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에 살든, 중국 밖에 살든 마찬가지다. 이들의 애국심은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도 인상적으로 드러났다.

중국인 일반의 애국주의는 중국 엘리트의 애국주의를 반영하는 것일 테다. 역으로, 이들 중국인 일반의 애국주의가 중국 엘리트의 애국주의에 반영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애국주의는 중국과 중국인을 묶을 뿐 아니라,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는 5분의 1 인류와 베이징의 정치 엘리트들을 묶는다. 이 거대한 ‘애국동맹’은 19세기 이래의 제국주의자들만 위협하는 게 아니다. 중국과 지정학적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작은 나라’ 한국에도 상서롭지 않다.

북한처럼 작은 나라가 애국주의로 충만해 있을 때, 그것은 세상에 커다란 위협이 되지 못한다. 본디 지닌 덩치가 작으므로, 그 덩치에서 나오는 주먹 힘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중국의 애국주의는 얘기가 다르다. 중국인들이 누리는 삶의 질이 어떻든, 중국은 지금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강대국이다. 이 나라의 힘은 곧 미국에 맞먹을 참이고, 이번 세기 안에 미국을 넘어서리라 관측된다. 설령 중국이 세계 경영의 완력에서 미국에 앞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동아시아 경영의 지분에선 이내 미국을 제칠 것이다. 초강대국의 애국주의가 세계에 얼마나 파멸적인지는 근년의 미국이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중국이라 해서 그 길을 가지 말란 법이 없다. 강대국의 애국주의는 곧 대국주의이고, 그 대국주의는 지금보다 힘이 약했던 시절 중국이 그리도 비판했던 패권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 한 세기 남짓 일본과 미국에 하도 괴롭힘을 당하느라, 한국은 그 이전 오랜 세월 중국대륙의 왕조국가들에 당한 괴로움을 잊었다. 역사의 원근법이 중국을 ‘선한 나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초강대국 중국의 국가 이성이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 덜 사악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의 애국주의 세력이 그리도 미워하는 미국은, 사실 한반도와 질긴 지정학적 인연을 맺은 강대국 가운데 이곳에 영토적 욕심을 내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한반도의 단기적 미래가 통일 과정이든 분단고착 과정이든, 번영의 길이든 퇴락의 길이든, 거기 가장 큰 힘을 행사할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문화를 숭상하고 중국인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내가 그 나라의 애국주의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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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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