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국제 비교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최상위권인데 학업 흥미도는 하위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왜 공부하는지를 드러낸다. 한마디로 ‘혼날까봐’ 공부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들은 ‘마냥 애를 놀릴 수는 없지 않냐’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혼날까봐’ 공부하는 것이 마냥 지속되기는 어렵다. ‘사춘기’라는 거대한 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동기가 ‘혼날까봐’보다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사춘기는 집안이 전쟁터가 되거나 아이가 무기력증에 빠져드는 시발점이 된다.

‘혼날까봐’보다 업그레이드된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는 교과서적인 답이 있다. 우선 목표실현형 동기부여. 즉 자신이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나 직업을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전공이나 진로를 조기에 결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낯선 광경이다. 대학에 원서를 내야 하는 시기가 되어서야 전공을 정하거나, 심지어 원서접수 직전에 지망 학과를 바꾸는 일을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봐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달라질 전망이다. 입학사정관제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사실상 미국에서만 실시하는 매우 독특한 제도로,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사교육비를 높이고 대학의 이중 플레이―겉으로는 미사여구로 치장하면서 뒤로는 토플과 경시대회를 반영하고 고교등급제를 실시하는―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이에 대해서는 최근 필자의 저서 〈이범의 교육특강〉을 참고하라). 하지만 입학사정관제가 우리나라에 미칠 긍정적 효과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진로·적성·전공에 대해 조기에 생각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입학사정관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입학사정관제가 보편화하면 대학에서 가장 주요하게 고려할 요인은 ‘전공 적합성’이다. 그렇다면 중학교 정도 시기에 ‘뭐가 좋다’ 내지 ‘뭘 하고 싶다’는 게 정해지는 게 매우 유리하다. 그에 맞춰 성적, 특별활동, 비교과 영역, 독서 이력이 구체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누적되어온 학생이 눈에 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압살하는 한국 교육
 

 

올해 ‘생태주의 건축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고1 학생을 보고 내가 그 어머니에게 한 말이 있다. “효녀를 두셨군요.” 이 학생의 경우 성적과 특별활동, 비교과 영역과 독서 이력을 건축·환경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것을 중심으로 관리해간다면 입학사정관제 아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 본 학생 중에 ‘역사 마니아’임을 자처하는 중학교 2학년, ‘축구 해설자가 되겠다’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효자나 효녀가 되게 하려면 어려서부터 〈만화로 보는 직업의 세계〉라든가 〈만화로 보는 학과의 세계〉 같은 책을 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동기부여 문제를 고려할 때 ‘목표실현형 동기부여’ 못지않게 중시해야 할 것이 ‘내적 동기부여’이다. 즉 ‘이런 과목이 흥미롭다’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1·2학년생에게 ‘어떤 과목이 제일 재미있니?’라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과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생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보면, ‘없어요’라는 답이 많다. 대답을 얻고 싶으면 질문을 바꿔서 ‘싫어하지 않는 과목이 뭐니?’라고 물어봐야 겨우 답이 나올 정도다.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공부에 대한 흥미를 체계적으로 압살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흥미로운 것’에서 ‘지겨운 것’으로 바꾸는 데 학교도, 학원도, 부모도 일조한다. 학생들의 70%가 ‘공부가 흥미롭다’고 답한다는 핀란드에 무한한 부러움이 앞선다.

‘좋아하는’ 과목은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과는 약간 다르다. 그 분야에 대한 내적 흥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 내내 흥미로움이 유지된 과목이 두 개 있었다. 과학과 지리였다(그리고 중학교 때 훌륭한 역사 선생님을 만나면서 역사가 추가되었다). 수학문제 한 문제 더 풀라고 하기 이전에, 아이가 관심을 두는 분야에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옆집 아이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라. “우리 아이는 입학사정관제 준비를 하고 있어요.”

기자명 이범 (교육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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