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에 대한 공포로 타국에 피난해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난민이라 부른다. 이란 출신의 O씨는 그냥 박해를 무서워해서가 아니라 죽인다고 하는 통에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2008년 9월9일부터 형법이 개정되어 개종자를 사형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뭐 그가 우리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니고, 2005년 이후 거의 4년 가까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이란 식으로 말하자면, ‘배교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란에서 모슬렘으로 태어났으나 ‘희망의 소리’라는 국제 크리스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05년 봄 한국에 입국해 그해 추석 경기도 동두천에서 열린 쿠르드 예배에 참석하며 신앙에 눈을 떴다. 이후 이라크 쿠르드인 A씨와 한국인 B씨의 지도로 성경을 공부하며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다 그해 11월 이란인 C씨에게 해시시를 받아 피웠는데, 그는 그것이 마약의 일종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물론 모른다는 것이 면책사유가 될 리 없으므로 다음 날 한국 경찰은 그를 체포했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이어 그는 강제 퇴거 명령을 받고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난민 신청을 기각당한 2006년 여름 세례를 받아 완전한 ‘배교자’가 되었다. 이것은 그가 이란에 돌아갈 경우 누가 그를 죽여도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니, 오히려 그를 죽이는 것은 코란에서 이슬람 교인에게 부과한 의무에 해당한다. 법적으로 사형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란 영사가 그해 10월 귀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고, 그에 따른 박해 위험 때문에 귀국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했다. 이로 인해 그는 공개적인 배교자가 된 셈이다. 그 뒤 다시 한 번 난민 신청을 냈지만 또다시 기각되었다.

이미 3년 9개월 동안 구금되어 있던 그는 강제 송환 위기에 처해 1개월째 단식 중이지만 과연 그와, 짧게는 2개월부터 길게는 2년까지 갇혀 있는 다른 장기 구금자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고국에 돌아갈 경우 박해 위험에 놓인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난민에 해당하며, 난민 강제 송환 금지는 모든 나라를 구속하는 기본적인 국제관습법이라지만 과연 우리나라가 이것을 받아들일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그의 면회 및 건강 상담을 진행했지만, 보호소 측이 접견을 허용치 않아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대화했다는데, 과연 이것도 건강 상담일까? 세 가지 다 아닐 것 같다.

쌍용 때도 그랬는데 이방인에겐 오죽하랴

대한민국 법무부의 판결은 짧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어차피 너네 나라 간다고 정말 죽지는 않을 거야, 전도한다고 나대지만 않으면. 지난해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청와대 앞의 경찰들이 한 말이 떠오른다. “이곳은 작전 구역에 해당하므로 필요 시 발포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무서웠다. 어차피 그건 말뿐이었다 해도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살짝 을러대도 겁이 나는 판국에 법적으로 넌 사형에 처해질 것이고 관습법상 널 죽이는 게 네 가족과 이웃의 의무라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은 어차피 돈 벌러 왔으니까, 정말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빨리 가라며 난민을 재촉한다.

어차피 쌍용 사태 때 자국민에게도 의사를 허용하지 않았던 우리가 이방인에게는 오죽하랴마는 그 많은 장로님은 이 믿음의 형제가 처한 위기 앞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9년 대한민국 인권상 후보자를 추천해달라는 메일이 왔다. 도대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그냥 창을 닫았다. 얼마나 좋을까, 모든 희망도 이렇게 그냥 쉽게 닫히는 거라면.

기자명 김현진 (에세이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