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통신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백두산 및 개성 관광에 합의하고 돌아온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
지난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백두산 관광에 합의한 이후 백두산 관광 길을 열기 위한 발걸음이 부산하다.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 환송 오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앞으로 (백두산) 들쭉술을 마시려면 현 회장한테 허락받으십시오”라며 백두산 관광이 현대그룹 주도로 개시될 것임을 시사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백두산 직항로에 대한 대체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10월30일 평양을 방문한 현대그룹 일행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측과 내년 5월부터 서울-백두산 직항로를 이용해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기로 합의하고 백두산 일대를 둘러보았다. 11월 중순께에는 정부 합동 실사단이 공항·숙박·교통 등 부대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백두산 일대를 답사할 예정이다. 아직 직항 노선, 관광 코스, 관광 요금 등 세부 문제가 남았지만 6개월 후 백두산으로 가는 첫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한편 남북 정상회담 직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창바이산(長白山)’ 명칭을 사용한 것이 구설에 올랐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는 〈유네스코 뉴스〉 10월호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Biosphere Reserves)’을 소개하는 연재물의 하나로 중국의 ‘창바이산 생물권 보전지역’을 실었다가 언론과 국회, 그리고 네티즌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

북한이 백두산 절반을 중국에 넘겼다?

현대아산 측 추정대로라면 내년 5월부터 하루 200~300명씩 백두산 관광 길에 나서겠지만, 남북의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이들이 가지고 가는 백두산에 대한 인식은 40~50년 전 냉전 시절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지난 1월 장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선수들이 벌인 ‘백두산 세리머니’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사용한 ‘창바이산’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국민이 가지고 있는 백두산 인식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백두산 세리머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4%가 잘한 행동이라고 답했으며,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더구나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응답한 사람마저도 장소나 방법이 문제였을 뿐 백두산이 우리 땅이라는 생각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지금도 백두산이 우리 땅이라는 인식은 냉전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로 서해가 냉전의 바다에서 평화와 공존의 바다로 바뀌고 백두산 관광이 교류와 협력의 매개로 인식되는 지금,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낡은 인식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연합뉴스북한 쪽 등산로를 이용해 백두산에 오른 남한 관광객이 일출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광복 이후 백두산 문제가 최초로 제기된 것은 1960년대였다. 1961년 12월 중국이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보도가 나갔으며, 1965년 5월 중국이 한국전쟁 참전 및 원조 대가로 북한에 백두산 할양을 요구한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오랫동안 잊혀졌던 백두산과 더불어 간도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민족의 발상지이자 문화의 요람인 백두산을 빼앗은 중국의 야욕과 북한의 굴종을 비난하는 기사와 글이 쏟아져나왔으며, 간도를 포함한 백두산 이북 지역에 대한 영토 주장과 더불어 ‘간도수복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백두산 영토 문제에 관해 더욱 상세한 소식이 전해진 것은 1980년대였다. 1983년 8월부터 중국이 백두산 천지 영유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어 북한이 한국전쟁 참전 대가로 천지의 절반을 중국에 바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1983년 9월 김영광 의원 등 국회의원 55명이 ‘백두산 영유권 확인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1950년대 북한과 중공 국경분쟁 이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백두산 천지가 남북으로 양분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중략) 우리는 이를 주권 침해인 국가적 중대사로 단정하고, 여기에 남북한 6000만 민족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영유권을 정당히 밝히고자 한다”라며 백두산이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10년 뒤인 1993년 12월, 북한과 중국 간에 백두산 천지를 분할하는 국경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여야 의원 261명이 다시 ‘백두산 영유권 확인에 대한 결의안’을 제출해 백두산이 우리 땅임을 천명하고 원상 회복을 주장했다.

1960년대 이래 언론을 통해 혹은 교육을 통해 백두산은 대한민국 영토라는 인식이 형성되었으며, 북한이 한국전쟁 참전 대가로 백두산의 절반을 중국에 할양했다는 주장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장춘 동계올림픽에서 ‘백두산 세리머니’를 낳은 것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사용한 ‘창바이산’ 명칭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조·중 국경조약’의 맥락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법적 행위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1909년 청국과 일본 간의 ‘간도협약’으로 백두산정계비와 석을수-백두산 인근에서 발원하는 두만강 원류로는 상류로부터 홍토수(紅土水), 석을수(石乙水), 홍단수(紅丹水)가 있는데, 두 번째 원류인 석을수는 북쪽에서 흘러오는 홍토수와 합류한 후 다시 홍단수와 만난다-를 잇는 선이 국경선으로 확정되었고, 백두산 천지 동남쪽 4km 아래에 있는 백두산정계비를 경계로 백두산 천지는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배성준 제공북한 쪽에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접근로는 장군봉으로 오르는 코스(위) 하나뿐이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과 중국 간에 국경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고, 1962년 북한과 중국 사이 ‘조·중 국경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백두산 천지의 중앙을 지나 홍토수를 잇는 선이 국경선으로 확정되었다. ‘조·중 국경조약’으로 백두산정계비에서 백두산 천지에 이르는 지역이 북한 영토로 귀속되었다. 문화혁명 때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인 주더하이(朱德海)가 백두산 천지를 북한에 팔아넘긴 매국노로 공격당했다는 사실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지원 아래 북한이 백두산 천지의 절반을 회복했음을 뒷받침해준다.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의 또 다른 문제점은 북한의 현실적 존재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백두산을 대한민국 영토로 보는 시각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한반도 전체에 미친다는 인식을 근거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일부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 단체로 간주한다. 따라서 북한이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은 대한민국 처지에서 무효이며, ‘조·중 국경조약’도 당연히 무효이다. 그러나 냉전 시절에도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국가 자격으로 제3국과 각종 조약을 체결해왔으며, 대한민국의 주권이 휴전선 이북까지 미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으며, 남북이 ‘국가연합’의 단계로 나아가고 ‘종전 선언’의 주체임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북한이 중국과 체결한 ‘조·중 국경조약’을 부정하고 백두산이 대한민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반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이 통일된 후 동독과 폴란드가 맺은 국경조약을 계승해 전후 처리 과정에서 폴란드에 할양한 영토를 인정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북한은 백두산 전체의 25%만 소유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백두산 관광을 다루는 기사에는 낙관적 전망들로 가득하다. 서울-백두산 직항로를 이용하면 2시간 남짓에 백두산 천지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7시간 이상 걸리는 중국 쪽 백두산 관광에 비해 비교 우위에 있다거나, 2005년 7월 백두산 시범관광에 합의했다가 중단된 사례가 있지만 이번에는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른 후속 조처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등 백두산 관광 홍보를 방불케 하는 기사들이 연일 게재되었다.

그러나 백두산 관광의 전망이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며, 실상이 정확하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보통 백두산 천지를 중국과 북한이 양분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산 전체도 양분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백두산 전체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영역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중국 쪽에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접근로는 3개의 코스-장백폭포를 따라 오르는 북쪽 코스(北坡), 장백산대협곡을 끼고 오르는 서쪽 코스(西坡), 압록강대협곡을 끼고 오르는 남쪽 코스(南坡)-가 있지만 북한 쪽에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접근로는 장군봉으로 오르는 코스 하나뿐이다.

중국이 2005년부터 백두산을 지린성(吉林省) 관광의 제1명소이자 대표적 ‘생태관광경제시범구’로 조성하기 위해 장백산공항 건설 등 인프라 구축과 관광 자원 개발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로 나선 북한이 나아가야 할 길은 험난해 보인다. 중국이 이미 장백산 생수, 장백산 인삼 등 ‘장백산’ 브랜드를 선점한 마당에 북한이 내놓을 ‘백두산’ 브랜드가 얼마나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관광 면보다 중요한 것은 백두산이 남북 간 교류와 협력뿐만 아니라 북한·중국 간 교류와 협력의 지점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인 중국 쪽 백두산 남쪽 코스가 개통되었는데, 중국 땅과 북한 땅을 넘나드는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이 협력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앞으로 백두산 순환도로나 천지를 일주하는 산책로 등 관광 자원 개발의 과정에서 북한·중국 간의 협력뿐만 아니라 백두산 개발에 자본을 투자하는 한국의 참여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는 것도 남북 및 북한·중국 간 교류와 협력의 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지린성 주도로 백두산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했으나 현재 한국 측의 항의와 중국 내 경쟁으로 인해 유보한 상태이다. 그러나 백두산의 국제 홍보와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4년 북한과 중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고구려 유적을 동시 등재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공동 등재할 수 있다면 백두산을 평화와 협력의 장소로 만드는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다.

기자명 배성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