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11월15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김영일 북한 총리(왼쪽)와 한덕수 총리가 건배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초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는 남한 측이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한 데 비해, 북한 측은  통일방안 등 사변적·관념적 주제에 집착했다. 그러나 15년 만에 재개된 남북 총리회담(11월14∼16일)에서는 서로 처지가 바뀌었다. 남쪽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처럼 관념적 구상에 집착한 데 비해, 북쪽은 철저히 실리주의에 입각했다. 대북 소식통은 “정상회담 당시 남한이 제시한 경협 분야 중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분야를 북한 측이 우선적으로 선별했다”라고 지적했다.

우선 11월16일 발표된 합의문의 핵심 내용을 들여다보자. 8조 48항에 이르는 방대한 합의 내용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2월11일부터 문산-봉동 간 철도 화물수송을 시작한다고 한 대목이다. 날짜까지 박음으로써 이번 정부 내에서 실천에 옮겨지는 첫 사업이 될 예정이다. 그 다음, 지난 11월15일자 조선신보가 북한 측의 ‘최우선 과제’라고 소개한 개성-평양 고속도로와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문제는 2008년부터 착수한다고 되어 있다. ‘적극 추진 과제’라고 소개한 조선협력 사업은 2008년 상반기에 안변 지역에 선박블록공장을 착수하고, 남포의 영남배수리 공장 설비 현대화와 기술협력 사업, 선박블록공장은 가까운 시일에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남한 정부의 역점 사업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대해서는 장관급 추진위원회를 두고 그 산하에 5개 분야별 분과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또 개성공단에 관한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는 12월 초에 개성에서 실무 접촉을 갖고 협의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합의 내용의 내적 얼개, 또는 숨겨진 의미가 뭔가 하는 점이다. 북한 측이 ‘철도·도로 개건 현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데 대해 조선신보는 ‘경제협력 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하부 구조의 구축 문제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립서비스에 불과한 얘기다. 오히려 그보다는 돈과 직결되는 사업이라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다. 철도·도로 관련 공사가 일단 시작되면, 그에 필요한 장비와 돈과 인력 고용 문제가 제기된다. 북한으로서는 1거3득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남포와 안변의 조선소 건설 역시 마찬가지다. 공동 사용이나 조선협력은 먼 훗날의 얘기이고, 착수하자마자 돈과 장비가 들어오고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이다. 

통관 문제는 차기 정부 협상용으로 남겨

문제는 노무현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음 정권이 이들 사업에 뛰어들게 하기 위해서는 뭔가 연계 사업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문산-봉동 간 철도 화물 수송은 매우 안성맞춤인 프로젝트이다. 개성공단 활성화를 원하는 남쪽의 희망 사항과 개성에서 평양-신의주로 이어지는 철도 도로 연결을 원하는 북쪽의 희망 사항이 중첩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개성공단 3통 문제를 슬며시 뒤로 미뤄놓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3통 문제는 개성공단 활성화의 시금석이요, 개성공단이 활성화돼야 해주 특구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의 ‘입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3통 문제를 일단 유보해 두었다가 차기 정부와 철도·도로 사업 및 조선소 건설 착수를 위한 협상이 개시될 때 카드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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