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었다. 물론 책이 잘 팔려서가 아니라 재미있는 원고를 만나서다. 책 편집을 하다보면 좋은 원고(그래서 출판을 했겠지만)를 만나기는 쉬운데, 이처럼 재미있는 원고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책을 편집하는 내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마치 교실 현장에서 듣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런 매력은 편집자가 잊고 살았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학창 시절 입시는 뒷전인 채 책을 읽고 토론하는 놀이에 맛을 들여 불법 동아리를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경쟁만이 살길”이고 “1%의 천재가 사회 전체를 먹여 살린다”라는 구호가 환영받는 시대에, 시험과 상관없는 ‘인터넷 문화에 관한 토론 수업’은 지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은주 선생님은 지난 5년여 동안 아이들과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 관심사가 너무나 궁금했던 철없는(?) 선생은 아이들 생각을 수업에 활용하고 토론 수업으로 소통과 배려를 가르쳤다.

토론 수업이 주는 매력은 ‘참여’와 ‘소통’에 있다. 책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풀기를 반복한다. 때때로 어른도 깜짝 놀랄 만한 질문을 해대는가 하면 배꼽 잡을 만큼 엉뚱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 언어가 오염되었다며 어른들이 부산을 떨 때에도, ‘야동’ 때문에 친구들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길 때에도, 불법으로 영화를 다운로드할 때에도, 게임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로할 때에도, 티격태격 목소리를 높이기는 해도 서로를 인정하고 의견을 귀담아듣는다. 그러고는 저희들끼리 정답 없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은 아이들 문화에 대한 이야기지만 요즘 소통 문제로 고민하는 어른이 꼭 봤으면 하는 게 편집자의 간절한 생각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부딪히는 문제 역시 우리 아이들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을뿐더러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게 어른 아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명 한승오 (책보세 편집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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