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생수를 끊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 기사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조계사에서 열흘째 단식 중이던 전교조 간부는 기자를 보자마자 “〈시사IN〉 기사 죽 읽었다. 생수를 마시면 안 되는데…”라며 미안한 듯 생수병을 뒤로 감춰 기자를 당황하게 했다.

수돗물 잘 마시는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는 지인도 있었다. 내 경우 처음에는 생협에서 유기농 보리차를 사서 끓여 마셨다. 그런데 아이들이 ‘맹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일찌감치 수돗물을 마셔왔다는 이들한테 해법을 구하니 도자기를 애용하면 좋다고 했다. 도자기나 장독대에 수돗물을 받아 반나절 이상 두면 소독 냄새 등 휘발성 물질이 날아간다고. 그 물을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마시거나 레몬을 띄워 마시면 맛이 그럴듯하단다.

ⓒ전문수페트병 생수를 끊기 위해 가방에 물병을 챙겨넣고 다녔다. 습관이 되지 않아 깜박할 때도 있었다.
그 말대로 따라해보았다. 냄새는 없었다. 그러나 물맛이 좀 밍밍하게 느껴졌다. 생수와는 뭔가 달랐다. 좋은 생수에서는 뭐랄까, 깊고 부드럽고 때로 달착지근한 맛이 나지 않던가. 그때 〈보틀마니아〉 저자의 말이 떠올랐다. “푸아그라(먹이를 강제로 투입해 살찌운 거위 간으로 만든 요리)가 일반 간 요리보다 맛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사회와 자연의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그런가 하면 “‘끊고 살아보기’ 기사를 보고”라는 짧은 메모와 함께 책 한 권을 택배로 보낸 출판사 사장님도 있었다. 뜯어보니 〈블루골드〉(개마고원 펴냄)라고, 지구 곳곳에서 다국적 기업에 맞서 물을 지키려 싸우는 사람들의 수난사를 기록한 책이었다. 읽다보니 십여 년 전 취재차 만난 충북 청원군 미원면 주민들이 생각났다. 초정약수로 유명한 이곳에 생수공장이 몰려들면서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마셔온 물을 다 버리게 됐다”라며 크게 반발했다. 오늘날 생수회사와 주민들이 당시처럼 격렬하게 충돌하는 일은 드물다. 이유가 무엇일까? 먹는물관리법이 강화된 덕분일까?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요즘은 자기 동네 지하수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죽자사자 싸우려는 농민이 드물다. 그보다 적당히 보상받는 길을 선택한다. 승산 없는 싸움임을 이미 간파한 거다.” 그 말을 듣고 돌아나오는데 입맛이 썼다.

공중전화 부스보다 찾기 힘든 음수대

고백하자면, 지난 한 달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도 있었다. 아직 습관이 되지 않다보니 아침에 집을 나서며 물병 챙기는 일을 깜박해서였다. 물병 없는 날, 거리에 나서면 난감했다. 물이나 음료를 사 마시는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경운동가들의 말마따나, 오늘날 잘 관리된 음수대를 찾기란 고장나지 않은 공중전화 부스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나 또한 길을 걷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신 기억이 근 십 년 새 없었던 것 같다. 시골을 여행할 때도 꼭 생수를 사들고 다녔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 물을 사 쓰면 사 쓸수록 안전한 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게 ‘과도한 개인주의’의 역설이라고 환경 작가 빌 매키벤은 지적한다. 공공기관이 수돗물에 대한 관리 및 투자를 점차 줄여가게 되기 때문이다. 물뿐 아니다. 길이 막히고 기온이 올라간다고 더 큰 차를 사고 더 큰 집을 지을수록, 다시 말해 문제가 생겼을 때 공공적 방식으로 이를 푸는 대신 사적 영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엉켜버리고 결국에는 비용 총량도 증가하게 된다고 매키벤은 주장한다.

믿을 수 있는 생수보다 믿을 수 없는 생수가 훨씬 많다는 조사 결과가 끊임없이 쏟아져도 생수에 충성하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더욱이 생수는 수돗물보다 평균 250배 비싸다). 엘리자베스 로이트는 그런 의미에서 생수야말로 ‘20세기 최대의 마케팅 성공작’이라 부른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생수병 대신 수돗물 담긴 물병을 들고 나와 세련된 자태로 인터뷰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한국 텔레비전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근데 이거, 또 소송감이려나? (끝)

※ 다음 호부터 ‘독자 체험-끊고 살아보기’가 이어집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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