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수질검사를 받고 수돗물을 마시기로 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집에서야 끓여 마시면 된다지만 집 밖에서는 어떡하지? 특히 집에서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머무르는 사무실에서는?(지난번 밝힌 대로 〈시사IN〉 사람들은 13ℓ짜리 말통(대용량 통)에 담긴 생수를 마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누군가 귀가 번쩍 뜨일 제보를 해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서울환경련)이 올 초부터 ‘페트병 생수를 줄여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단다. 생수병이 환경오염과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이어서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매달렸다. 노하우를 전수해달라고. 전화를 받은 이지현 처장 왈, 자기들도 올 초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사무실 내 생수통과 정수기를 치웠단다. 환경단체로서 부끄럽지만, 이러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단다. ‘수돗물 마시다 집단으로 배탈나는 거 아니냐’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어떻게 수돗물을 내놓느냐’ 따위 꺼리는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물 항아리를 들여놓은 사무실

찾아보니 페트병 대신 쓸 만한 휴대용기(위)가 제법 많았다. 디자인도 근사했다.
그날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가까이에 있는 서울환경련 사무실을 찾아갔다. 생수병과 정수기를 끊고 사무실 환경을 어떻게 바꿨는지 궁금해서였다.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쓴다는 3층 건물에 들어서니 사무실 한 귀퉁이에 항아리가 놓인 것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아랫부분에 수도꼭지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이것이 생수병 대신 사용하는 물 항아리. 여기에 수돗물을 하룻밤 받아두었다 마시면 이른바 소독약(염소) 냄새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불순물이 가라앉아 물맛이 좋아진단다. 단, 물 갈 때가 좀 고역이라고. 항아리 무게를 눈으로 가늠해보건대 그럴 것도 같다. “〈시사IN〉에서도 생수통을 추방하고 항아리를 들이자고 해봐?” 했더니 동행했던 사진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 말라는 거겠지.

사실, 일반 사무실에서 이런 ‘갸륵한’ 실천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서울시에 제안하고 싶다. 아리수인지 수돗물인지, 마시자고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1사(社) 1음수대 보급운동’이라도 벌여달라고. 당장 힘들다면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차츰 확대해가는 방법도 있다. 서울시 자료를 보니, 2008년 말 현재 서울시에 보급된 아리수 음수대가 1345곳이란다(요즘은 냉수·온수가 분리돼 나오는 최신형도 있다). 그 대부분이 학교와 공공기관에 설치돼 있다. 민간 보급 실적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래 놓고 서울시가 페트병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기만이다. 현재 서울시는 페트병 아리수를 주요 행사 같은 데 무상으로 공급한다. 지난해 500만 병을 생산한 서울시는 올해 생산 목표를 700만 병으로 잡았다. 서울시뿐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 19곳 또한 이른바 병입 수돗물을 생산한다. 현행법상 수돗물을 판매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그런데도 이들 지자체가 병입 수돗물 생산시설을 해마다 늘려가는 것을 보며 일각에서는 수돗물 민영화를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환경적 관점에서도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환경단체가 수돗물을 마시자며 서울시 편을 드는 듯하다 냉랭해지는 것도 이 지점에서이다. 지난 호에 소개한 대로 페트병은 만드는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연료를 소비할뿐더러 폐처리 과정에서도 골칫덩이다. 미국의 경우 사용된 페트병 중 86%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한다.

‘그래도 외출할 때는 페트병밖에 방법이 없는 것 아냐?’ 의심할 분들 있을 거다. 나도 그랬다. 궁리 끝에 처음에는 집에 있는 미니 보온병에 끓여서 식힌 수돗물을 넣어 다녔다. 그런데 페트병 끊기를 선언한 며칠 뒤, 한 후배가 깜찍한 선물을 하나 건넸다. 포장지를 뜯어보니 짜잔~. 기막히게 ‘스타일리시’한 물건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패션 물병이었다.(다음 호에 계속)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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