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권력〉아서 제이 클링호퍼 지음이용주 옮김, 알마 펴냄
초등학교 시절 사회과부도라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이런 물음 또는 불만이 떠올랐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작지? 그리고 한구석에 조그맣게 처박혀 있는 꼴이잖아?’ 크고 중심에 있는 것에 대한 선망. 그런데 이런 부러움이 초등학생의 유치한 선망이 아니라는 걸 〈지도와 권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전세계 학생들이 세계 지리를 배우는 지도, 오늘날 세계 전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지도가 메르카토르 투영도법에 따라 그려진 세계지도다. 그런데 이 세계지도에서는 위도가 북쪽으로 갈수록 땅이 커져서, 북아메리카와 유럽이 실제보다 너무 커 보인다. 실제로는 북아메리카의 크기가 아프리카의 3분의 2 정도이며, 유럽 전체가 인도의 크기와 비슷하다.

저자는 지도 제작자 메르카토르가 어쩔 수 없는 유럽 중심주의자였던 데다가 그의 고객이 유럽인들이었다는 점, 요컨대 시대적 한계와 상업적 고려를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의 지도를 통해 전세계 학생들에게 서양 중심의 지리관과 세계관을 심어주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 더구나 ‘투영’ 도법이라는 것 자체가 유럽의 권력을 해외로 ‘투영’시키는 것.

메르카토르 세계지도는 유럽 등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그런가 하면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해 세계지도를 다시 그린 경우도 있었다. 지도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믿었던 독일 출신 아르노 페터스의 지도가 바로 그것. 그는 등면적 도법이라는 방식을 사용해 ‘백인 우월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근거한 과거의 세계지도와 달리, 부유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심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도를 그리고자 했다.

“지도는 단지 지구의 일부만을 표현한다”

그 결과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크기가 메르카토르 지도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그의 지도는 땅덩이 모양이 세로로 길쭉해진 꼴을 하고 있다. 그의 지도는 제3세계 지역을 강조하려는 의도 탓에 전문적인 지리학자들로부터는 배척당했다. 상업적 의도에서 비롯되어 결과적으로 제국주의 세계관에 봉사한 메르카토르 지도에 대한 도전으로서 의미를 지니지만, 그 역시 나름의 정치적 의도에 따랐기 때문에 저자는 이 둘을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르노 페터스의 지도는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이 상대적으로 크다.
지리학이라는 학문의 성립 자체가 제국주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독일 대학들은 1874년에 지리학과를 만들기 시작했고, 영국에서 지리학자가 임용된 것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이 각각 1887년, 1888년이었다. 이 시기 지도는 사회와 경제적 요인에 대한 제국주의 관점을 반영하기 시작했고, 바람이나 해류 같은 요인에는 관심을 덜 쏟았다. 지도는 바야흐로 지리학과 국가권력을 연결하는 도구가 되어갔다.

지도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답으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보다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영화는 감독이 작업한 선별된 프레임을 모아놓은 것이다. 감독은 포함할 것과 배제할 것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정해진 테두리가 있다는 점에서 프레임은 지도와 유사하며, 마찬가지로 지도도 단지 지구의 일부만을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리학과 지도가 세계 각지의 사정을 두루 살펴 지식을 넓히는 과목 또는 분야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지리학과 지도에 대한 이런 순진한 생각과 달리, 그것은 더 깊은 세계관의 문제, 첨예한 정치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제다. 그래서 저자의 마지막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지도는 세계의 역사와 정치를 묘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단지 반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미지에만 집중하지 말자. 그 과정을 숙고하고 그것을 만든 제작자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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