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문의 역사는 ‘언론 탄압’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런 통제의 역사 속에서도 신문이 기업적으로 고도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이라는 통제 방법이 적절히 작용한 결과이다. 내용은 통제하고, 신문은 기업으로 성장시킴으로써 비판을 무디게 하는 정책이 시행된 결과이다. 그리하여 신문 시장은 이제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곳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신문의 기업화는 1963년 제정한 ‘신문 및 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의 시설 기준 조항에서 비롯한다. 시설 기준을 충족하고 살아남은 언론사는 독과점적 언론 시장에서 기업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정부는 언론의 기업화를 위해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 신문 용지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이중 가격제를 실시하고, 저리의 외국 차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동시에 경제개발 정책의 결과 산업 구조가 소비재 산업 부문의 독점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언론의 재원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대했다. 언론으로서 신문의 존재보다, 기업으로서 신문의 유지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증면 경쟁 등 언론인 ‘생존 전쟁’ 불러
신문 독과점이 더욱 강화된 것은 1980년 언론 통폐합 때문이다. 언론 통폐합의 경우 언론 일반에서 보면 통제지만, 살아남은 언론사들에는 매우 유리한 조처였다. 그래서인지 신군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했다기보다는 언론 쪽의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언론 통폐합 결과 살아남은 언론은 경쟁이 완화된 조건 속에서 안정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동시에 언론 산업의 다각화, 매출액·자본 규모의 증대 등 모든 면에서 자본화의 길에 들어섰다.
정부의 과점 정책이 사라진 1987년 이후에는 경쟁이 심화되었다. 1990년대 초반 무한경쟁의 시대가 이에 해당한다. 갑작스럽게 카르텔 체제가 풀린 이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신문사들이 오직 무리한 자본 투자로 돌파하고자 했고, 이 경쟁은 외환위기가 진행되면서 신문 산업이 위기의 국면에 들어서게 만든 주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무한경쟁은 여러 면에서 진행되었지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증면 경쟁이고 둘째, 분공장 설치와 같은 무리한 투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공정 경쟁이다. 증면 경쟁은 지면을 채우기 위해서 섹션화를 도입했고 기사를 연성화했으며 지면에서 광고 비율을 늘렸다.
또 신문사들은 1990년대에 초고속 팩시밀리를 이용한 분공장 설치, 고성능 인쇄기 구입에 막대한 자본을 투여했다. 이는 당시 일간지들의 경영 사정을 고려하면 무리한 것이었고, 1991년에서 1996년 사이에 신문사들의 부채 증가는 2배에 달했다.
언론이 기업화·자본화하는 것이 왜 문제일까? 성장 자체가 부정적일 수는 없지만, 그 성장의 성격이 문제이다. 수용자와 일정한 신뢰 관계가 발전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 투하에 의해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부작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우선 언론 본연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1987년 이후 언론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각 언론사 노조는 공정보도를 위한 제반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재 정권 당시 잃은 언론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전술한 무한경쟁은 노동 강도를 높이고, 언론인들을 생존 경쟁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유력 신문 노조들은 언론운동의 전선에서 점진적으로 이탈했다. 공정보도 감시를 위한 내적 역량이 사라진 것이다.
자본의 영향력 최소화할 대책 세워야
또 자본에 의한 경쟁의 심화는 신문을 단순 상품으로 전락시켜 신문의 위기만을 부추길 뿐이었다. 광고에 의존하는 수입구조는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무가지 살포, 할인 판매, 부수 확장 격려금, 경품 제공, 구독 강요 등 불공정 시장 행위를 자행하게 했다.
이러한 불공정 시장 행위는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문사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 재벌 신문 또는 신문 재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신문들의 경쟁 심화는 자본력 있는 소수 언론에 의한 시장 독과점으로 이어지고, 이로부터 여론 독과점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구나 가족 중심의 족벌기업 체제로 성장한 유력 신문들은 신문 사유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7년 대선 직후 전국의 기자 3백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자 84%가 사주와 경영진이 대선 과정에서 편파 보도 및 특정 후보 줄서기를 주도했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은 신문 사유화가 사회에 어떤 피해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보광주식회사에서 탈세를 한 사주 홍석현 사장의 구속을 막고자 했던 중앙일보 논조, ‘사장님 힘내세요’라는 문구를 앞세운 중앙일보 구성원들의 시위 역시 신문의 사유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적절한 예이다.
신문의 산업화는 신문을 친자본적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1월, 재벌이 소유했던 신문들이 보여준 대기업 옹호, 정부의 정책 비판 논조가 좋은 예이다. 당시 김대중 당선자 쪽의 비상경제대책회의가 대기업의 상호지급보증 완전 해소, 기업의 결합재무제표 작성 등 재벌 개혁 정책을 앞당겨 실시키로 했다고 밝히자, 다른 신문과 달리 문화일보와 중앙일보는 기사를 통해 대기업 개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논조를 폈다. 이후 비상경제대책회의는 고삐를 늦춘 재벌개혁 정책을 발표했다.
언론 산업화는 광고 의존도를 높여놓았고, 광고주는 언론의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부동산 안정 정책에 소극적이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신문들의 대다수가 부동산 광고를 많이 하고 있다.
대광고주이자 경영진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인물 관련 기사로 기자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던 〈시사저널〉 사태 역시 광고주로 대표되는 자본의 영향력이 언론을 좌우한 예가 될 것이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소수의 마니아들에 의해 도배되는 인터넷 여론과 그들의 압박에 민감하게 반응한 자본(광고주)들의 광고 연장 철회는 〈PD 수첩〉 폐지 논란의 주요인이었다.
신문 시장의 자본화는 신문의 성장으로 인한 질적 발전보다는 친자본적 언론의 증대, 자본의 개입 확대로 인한 내적 언론자유의 위축 등을 초래했다. 신문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방송 일각에서 진행 중인 유료 방송 시장의 자본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외국 자본의 진출 등을 고려할 때 언론에서 자본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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