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YTN 사장의 사퇴는 언론계에 몇 가지 고민을 던졌다. 앞으로 전개될 정권과 언론 간의 싸움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구본홍 카드’ 실패를 경험한 MB 정권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꾀할까.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민영화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YTN 민영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화할 경우 YTN 노조를 무력화시킬 수 있고, 보도PP(방송채널사업자)에 관심 있는 후보군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목적 카드인 건 분명하다. 1년 동안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벌여온 YTN 노조로서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MBC 민영화도 있다. 방송공사법 제정과 민영 미디어렙 도입은 MBC 민영화의 틀을 규정짓게 만든다. 친여 성향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방만 경영’을 문제 삼아 민영화 논의에 불을 지피면 MBC로서는 이 문제를 피해가기 어렵다. 더구나 민영 미디어렙은 서울과 지방MBC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아킬레스건이다. ‘선택의 지점’에서 MBC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민영화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국영화’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방송공사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KBS의 ‘국영방송화’는 시간문제다. MBC·YTN의 민영화와 KBS의 ‘국영방송화’가 전제된 상태에서 종합편성채널과 보도PP가 들어선다고 가정해보자. 그야말로 방송판 자체가 ‘조·중·동 방송’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법 날치기 논란과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정부 여당의 손을 들어준다면? 여권의 방송계 재편을 막는 건 더욱 힘들어진다.
 

앞으로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는 정부 여당과 ‘조·중·동화하려는’ 방송사와 싸워야 할지 모른다.

‘여권발 방송계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지만, 민주당과 방송사의 풍경은 지리멸렬하다. 민주당이 100일 장외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전면전 양상은 아니다. 솔직히 민주당의 장외 투쟁이라기보다는 일부 의원의 결사항전으로 보는 게 정확할 듯싶다. 9월 정기국회 복귀설이 솔솔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방송사 내부 풍경은 더욱 가관이다. ‘조·중·동 방송’ 출현을 경계하기 전에 방송의 ‘조·중·동스러운’ 행태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하면서도 자사 이익 확보를 위한 ‘주판알 튕기기’가 복잡하게 진행되는 방송사 내부 상황이 한몫을 한다. 언론노조 총파업 동력이 예전 같지 않고 ‘보도투쟁’ 지침이 하부 단위에서 무력화되고 있는 이유다.

우리가 기존 방송사를 지켜야 하는 까닭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의 보도 행태다. ‘조·중·동 방송’과 방송의 ‘조·중·동스러운’ 보도 행태가 본질에서 어떤 차이가 나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방문진 구성에 따른 방송 장악 논란은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고, 미디어법 날치기 논란 역시 철저히 정치 공방 수준에 머물러 있다.

쌍용자동차 보도는 가장 압권이다. 진압 과정에서 쓰러진 노조원을 경찰이 곤봉과 발로 무차별 폭행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경찰의 진압 방식을 비판하는 리포트는 거의 없었다. 사태의 본질을 파헤치는 보도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 강경·폭력 진압’이라는 단어가 방송 뉴스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시민단체 일각에서 ‘왜 우리가 이런 지상파 기득권자들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라는 회의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는 ‘조·중·동 방송’을 만들려는 정부 여당과 ‘조·중·동화하려는’ 방송사들, 이 두 개의 골리앗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조·중·동 방송’ 출현 저지를 논하기 전에 왜 ‘우리’가 기존 방송사를 지켜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자명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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