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휴가철마다 순식간에 100만명이 방문해 진풍경을 연출하는 곳,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영화 〈해운대〉는 그곳에 ‘쓰나미가 온다면’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진짜 해운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쓰나미보다 걱정스러운 일이 많다. 연일 공사 중인 해운대의 맨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진짜 해운대에 대해 부산 토박이 ‘아저씨’들이 입을 열었다.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최종철(63·정년퇴직 교사·반여동 아파트 거주):영화 스케일 자체가 크고, 소리도 시끄러워 나이 든 사람이 보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재미있게 봤다. 결국 ‘인간애’ 아닌가. 몇몇 장면은 눈물이 나기도 했다.

정준규(35·회사원·우동 주택 거주):할아버지, 아버지, 나까지 3대째 해운대에 산다. 바닷가에 살다보니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상상은 많이 해봤다. 살다보면 답답한 일 많지 않나. 실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쓰나미가 덮쳐서 싹 쓸고 지나가니까 시원한 느낌도 있었다. 멀쩡하던 건물이 자빠지고, 그걸 또다시 만들어야 할 테고, 만들기 위해서 빈부의 격차를 떠나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나.
 

ⓒ전문수‘진짜 해운대’가 어떤 모습인지 말하는 부산 토박이 허영관· 화덕헌·최종철·이종성·박욱영·정중규씨(왼쪽부터).

화덕헌(45·사진작가·좌동 아파트 거주):간판쟁이부터 건설업자까지 해운대 복구에 나서면 경기 부양은 되겠더라. 쓰나미라는 게 실제 동남아에서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고, 영화 〈괴물〉보다 훨씬 구체적이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흥행이 좀 의외이긴 하지만, 현실감은 있었다.

허영관(47·공무원·우동 아파트 거주):부산 사람이 듣기에 사투리가 어색했다. 미디어에서 쓰는 사투리는 우리가 들으면 어색할 때가 많다. 그리고 해운대 해변가에서 보면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데 그런 부분이 영화에 잘 묘사가 안 된 것 같다. 일종의 왜곡 아닌가.

해운대구청은 ‘민원 쓰나미’로 고생했다. 영화 소재인 쓰나미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는 염려도 있었고,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도 했다.

화덕헌:센텀시티 쪽은 올여름에도 비 피해가 있었다. 장사하는 분들도 ‘해운대가 두려운 곳이 되면 관광객 안 온다’고 걱정했다.

:어렸을 적에 큰아버지가 좌동에서 돼지를 키우셨다. 그때는 아파트가 뭔지도 몰랐다. 큰아버지 댁에서 제사 지낸다고 하면 냄새 나서 가기 싫었던 기억이 있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부터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돼지도 사라졌다. 아파트 주민들이 영화에 아파트가 나오지 않게 민원 넣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 같으면 좋을 것 같다. 센텀·마린시티 쪽에 외지인이 소유한 아파트가 꽤 있다고 하던데 솔직히 땅값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아닌가.

화덕헌:큰 평수의 고급 아파트를 외지인이 꽤 소유한 걸로 안다. 친구가 우동 신세계백화점 주변에 전세로 들어갈 때 보니 주인하고 계약하는 데 서울 사람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100층 넘는 고층 아파트도 생긴다고 한다. 부산이 이 많은 부동산 물량을 다 소화할 수는 없다. 외지에서 돈이 안 들어오면 다 부도날 것이다.

:우리 사무실도 계약할 때 계약서를 서울로 보냈다.

해운대를 ‘부산의 강남’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종성(41·자영업·반여동 주택 거주):전에 PC방을 운영했는데, 서울 사람이 전화해서 PC방을 팔라고 했다. 내가 사는 반여동은 해운대구에 속하지만, 해변에서 멀다. 위치를 설명했는데도 ‘그래도 해운대 아니냐’며 괜찮다고 했다. 외지 사람들은 해운대는 다 해변이고 좋은 줄 안다.

허영관:센텀시티와 마린시티 등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우동·중동·좌동과, 저소득층이 밀집한 반송·반여·재송동의 소득 격차가 상당한 편이다. 며칠 전에 부산일보에서 마린시티, 센텀시티, 해운대 신시가지를 부산의 명품 지역이라고 1면에 소개했더라. 그런데 그 명품이라고 하는 게 결국 ‘아파트 숲’이다. 중동 달맞이길 쪽은 두 얼굴을 가졌다. 앞은 갤러리 등으로 화려한데, 뒤는 거칠게 표현해서 패잔병이 모인 곳이다. 어떤 원룸은 한 집에 세 명씩 시간대별로 나눠서 살기도 한다. 이 지역의 경우 건강보험료 징수율이 40%밖에 안 된다.

이종성:아파트가 많으면 명품 도시인가? 그렇다면 주택은 비주류다. 부산 지역의 주택은 소외됐다고 할 수 있다. 

해운대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이 없어지는 등 환경 문제도 심각한 편이다.

박욱영(53·학원 원장·좌동 아파트 거주):피서철에 오는 관광객은 모르지만, 5월쯤 되면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를 트럭으로 쏟아놓는다. 예전에는 자연적으로 모래사장이 형성됐는데, 지금은 그렇게 인위적으로 모래사장을 만든다. 광안리·해운대·송정해수욕장을 비교하자면 송정이 가장 좋다. 외지 사람들이나 해운대에 간다. 우리는 잘 안 간다.

화덕헌:우리 어릴 때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고 맨발로 해수욕 하러 가다보면 백사장 폭이 넓어 걸어가면서 발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때 비하면 모래사장이 정말 많이 줄었다.

박욱영:어제 장산에 올라갔는데, ‘도시 숲 조성’이라는 이름으로 조망대를 만든다고 나무를 베고, 바위에 구멍을 뚫고 있더라. 산에 올라도 아파트밖에 안 보인다. 거기서 무슨 자연을 생각할 수 있겠나.

허영관:해운대가 서면보다 온도가 2℃ 정도 낮다. 서면에서 근무할 때는 공기도 안 좋고, 먼지도 많아서 와이셔츠를 하루밖에 못 입었다. 그런데 해운대에서 일하면서 이틀씩 입는다. 그래도 아직까지 공기가 좋은 곳이 해운대다.

센텀시티 쪽에 들어선 신세계백화점이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화덕헌:들어서기 전 ‘해운대에 신세계가 옵니다’라고 광고했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가 오고, 이전에 있던 지역 상권은 다 무너지고 있다. 부산에도 지역 백화점이 있었는데 다 망했다. 신세계 덕분에 현지 고용은 발생할지 모르지만, 거의 다 비정규직이다. 게다가 신세계가 벌어들이는 돈은 다 서울로 가는 것 아닌가.

박욱영:해운대가 겉으로 보면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비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상가가 굉장히 많지만 공실률(비어 있는 사무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최종철:동네 슈퍼가 아니라 기업형 슈퍼마켓(SSM)도 무너지는 곳이 해운대다. 매년 2만명씩 인구가 줄고, ‘죽어가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운대에는 생산 시설이 없다. 사고, 먹고, 놀고, 관광하는 소비문화만 있다보니 경기를 많이 탄다. 장사가 잘되던 아웃렛·쇼핑센터도 백화점이 들어오면서 비는 경우가 생겼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해운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종성:주택단지보다 아파트가 많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동네 역사를 상세히 알고 있는 지역 토박이가 많이 사라졌다. 주민들 간의 정도 사라진 것 같다.

:아무리 개발이 된다 해도 아직까지 부산에서 해운대만큼 자연환경이 괜찮은 곳은 없다. 그런데 경쟁적으로 건물이 세워지면서 땅값이 계속 올라간다. 그러다보니 토박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자꾸 외부로 나간다. 나 역시 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던 해운대에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싶다. 땅값 때문에 해운대에 거주하지 못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해운대·장일호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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