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가 ‘부산 영화’라는 장르를 만들었다면, 〈해운대〉는 그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윤제균 감독(40·사진)은 2001년 〈두사부일체〉로 데뷔했다. 지난 9년간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등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이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운 관객의 반응에 자신도 “얼떨떨하다”라고 말했다.

영화의 흥행을 예상했나? 흥행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정성을 알아봐주신 것 같다. 그동안 발표한 영화 때문에 ‘쌈마이’ 코미디 감독이라 불렸다. 그런 사람이 한국 최초의 재난 영화에 도전하는 모습을 관객이 격려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개봉 전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컴퓨터 그래픽(CG)을 걱정하고, ‘재난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재난이다’라는 말도 하더라. 어렵게 낳아서 병치레 많이 한 자식이 건강하게 성장해 번듯한 대학에 합격한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전문수

자신의 성장 배경이 〈해운대〉를 만드는 데 영향을 많이 줬을 것 같다.
부산 대신동에서 태어나 대학 입학 전까지 동래에 살았다. 골수 롯데 자이언츠 팬이고, 야구 얘기라면 밤새워 할 수도 있다. 대학 입시에 번번이 실패하고 삼수를 하면서 많이 힘들고 외로웠다. 그때마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위로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세계 영화제를 다니면서 유명한 바다를 보지만, 아직까지 해운대만큼 예쁜 바다는 본 적이 없다.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많이 부러웠다. 같은 부산 출신인데도 고향에 내려가면 곽 감독은 다 알고 윤제균은 모르더라. 〈친구〉에 이어 〈해운대〉가 부산 대표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20년 전의 해운대와 현재 해운대의 모습이 많이 다를 것 같다. 
20년 전 해운대는 삼수생이던 나를 품어주던 ‘조용한 어머니’ 같은 곳이었다. 이제는 마천루 빌딩 숲으로 변해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 같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해운대는 30년 정도의 세월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마린시티는 뉴욕 맨해튼을 연상시키지만, 영화의 주 무대인 미포항은 전형적인 어촌이다. 확연히 대비되지만 그 모든 곳이 해운대의 모습이다.

쓰나미라는 소재가 해운대 주민에게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쓰나미라는 설정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다. 영화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브랜드를 지우고 모양을 바꿔 주민 피해가 없게 했다. 영화가 27개국에 수출됐는데, 제목을 바꾸자는 말이 많았다. ‘빅 웨이브’ ‘쓰나미 인 부산’ 등. 절대 못 바꾸게 했다. 영화를 관심 있게 본 외국인이 해운대를 많이 찾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해운대에서 미포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장소 섭외는 어떻게 이뤄졌나.
해운대에 살아도 곳곳을 구석구석 알기 어렵다. 부산 토박이지만 미포 쪽은 나도 영화 때문에 처음 들어가봤다. 미포항 방파제에 있는 포장마차를 보자마자 ‘아, 여기다’ 하고 마음을 굳혔다. 영화 속에 연희(하지원)가 운영하는 횟집이 그 포장마차다. 한 달 넘게 삼고초려하면서 어렵게 촬영 허가를 받았다.

〈1번가의 기적〉도 그렇고 재개발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해운대〉에서도 주요 갈등 축이 쇼핑몰 건설 문제로 인한 만식(설경구)과 억조(송재호) 사이의 갈등이다.
재개발을 반대 혹은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기존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인정이 필요하다. 가끔 나라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해운대〉에서 보이는 갈등은 재개발로 인한 오해나 갈등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인연에 관한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인생이란 작은 인연과 오해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피천득 선생의 글을 읽었다. 그 문장이 영화를 푸는 열쇠였다. 사실 연희가 운영하는 금아횟집의 ‘금아’도 피천득 선생의 호에서 따온 거다.

기자명 장일호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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