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끊기 25일차. 가족 가운데 한 명이 TV 끊기 선언을 어겼다. 미디어법이 통과되고 난 다음 날 저녁 9시30분, 장모가 YTN 뉴스를 본 것이다. 그날 나는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에 있었다. 집에 있던 아내의 말에 따르면, 상황은 이렇다. 9시30분 장모가 말했다. “지금 언론법 때문에 난리가 난 모양인데, 이거는 홍수 소식보다 큰 뉴스 같다. 방송사가 파업해 아나운서들이 바뀌었다고 라디오 뉴스에도 나오던데…. 또 지금 식구가 여의도에 앉아 있는데, ‘식구 된 도리’로 뉴스는 봐야 하지 않겠냐?” 아내는 YTN 뉴스 시청을 ‘승낙’했다. 30분 정도 뉴스를 보았다고 한다. TV를 안 보기로 약속한 한 달 동안, TV를 보다가 ‘걸리면’ 장모는 벌금 1만원을 내기로 했는데, 이런 경우 벌금을 받아야 하나? 시국이 시국인 만큼 벌금을 ‘면제’하기로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

미디어법 ‘날치기’ 시도는 가족 가운데 한 명이 TV 리모컨을 찾도록 만들었다.
TV를 끊었다고 하니 여러 사람이 물었다. 한 선배는 ‘TV 끊기는 잘 되고 있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술자리에서 만난 한 분은 “기사를 보았는데, TV 끊기가 그렇게 어려운가”라고 물었다. 대답은 이렇다. “TV만 안 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담배를 끊었을 때 생기는 금단증상만큼 TV를 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도 않다. 하지만 TV를 안 보면서 생기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게 어려웠다.”

한 달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가족이 둘러앉았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에게 나타났다. 아내의 말이다. “○○가 TV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다. 그전에는 아침에 어린이집 가기 전에 TV를 보다가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고 했는데, 그런 일이 없다.” 확실히 책을 보려고 하거나 다른 놀이를 하려는 듯해 보였다. 또 나를 비롯해 장모, 아내 셋이 책 읽는 시간이 늘었다. 상투적인 말 같지만 장모는 “TV를 보면 머리에 남는 게 없는데, 책 한 권을 읽으면 머리에 남는 게 있다”라고 말했다. 덤으로 가족끼리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TV는 그 옛날 마법사가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고, 우리 삶을 침묵의 상(像)으로 바꾼다. TV를 켜면 어린이를 인간으로 만드는 과정을 망칠 수 있다”라던, 문화심리학자 유리 브론펜브레너의 말이 떠올랐다.

TV 끊기를 실험하고 나는 무엇을 얻었나? 여유 시간을 얻었다는 것은 기본. 다른 무엇보다 일상을 돌아볼 수 있었다. TV를 멍하니 보고 있던 예전 모습을 여러 차례 떠올렸다. 늘 바쁘다 생각했고, 잠시 틈이 나면 TV를 보면서 ‘내가 쉬고 있다’고 여겼다. 목적도 없이 쉴새없이 리모컨을 눌러댔다. 그런데 지금, 그 시간에 과연 나는 쉬고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 의심한다. 한 달 동안 TV 끊기 실험을 한 뒤 얻은 수확이다.

TV 시청에도 ‘주체적 소비’ 필요

TV 끊기 실험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앞으로 완전히 TV와 ‘절교’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에게 의견을 물었다. ‘선택적 시청론’이 우세하다. 아내는 “사실 현빈이 나오는 드라마 〈친구〉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장모는 “나라에 급한 일이 생기면 뉴스는 봐야겠다. 북한에 핵 문제가 터지거나 홍수가 나거나 큰 인물이 죽거나 하면 뉴스는 봐야지. 아, 한·일전 축구 중계 같은 것도 봐야지.”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텔레비전에 종속되지 말자는 것. 신문에 난 TV 프로그램 소개 코너를 본 후,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가려 보자고 했다. 리모컨으로 ‘채널 서핑’하지 말고. TV 시청에도 ‘주체적 소비’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두 번째로 아이와 함께 있으면 되도록 TV를 켜지 말자고 약속했다.

TV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생각하는 시간은 늘어난다. 아무 생각 없이 TV만 줄곧 틀어놓다가는 점점 아무 생각이 없어지게 된다. 앞으로 조·중·동과 재벌이 지상파·종합편성채널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더더욱.

※ 다음 호부터 ‘끊고 살아보기 8탄-페트병 생수’ 편을 연재합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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