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사르코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기사를 썼다가 편집장이 해고된 데 항의하는 〈파리 마치〉 기자들.

1940~1944년 나치 치하 프랑스의 상당수 언론은 민족주의자들을 감시했고, 반유태주의에 앞장섰다. 하지만 독립과 함께 숙청당했다. 천재적 시인으로 불렸던 로베르 브라지야크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것을 철저하게 반성(또는 청산)했던 역사적 전통 덕분일까. 2007년 현재, 프랑스에는 전세계 정론지의 대표 격인 르몽드가 있고, 전세계 언론의 자유를 모니터하는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있다. 이만하면 프랑스를 ‘언론 자유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벌어졌던 (아니,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사건은 프랑스 언론의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사례 1.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세실리아 사르코지는 지난 대통령 결선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국 발간 부수 30만부를 자랑하는 일요신문(Journal du Dimanche·JDD)의 한 기자는 이 사실을 단신으로 처리하고자 했다. 가십기사를 즐겨 싣는 기존 편집 방향을 고려할 때, 이런 생각은 당연했다. 편집회의 결과 기사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편집국장인 자크 에스페랑디외에게 몇 통의 전화가 걸려온 이후 문제의 기사는 지나치게 사적인 일이라는 이유로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사례 2. 2005년 8월, 프랑스 최대 주간지 〈파리 마치〉(Paris Match)는 내무부장관이던 사르코지의 부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 내보냈다. ‘파파라치 잡지’의 대명사 격인 〈파리 마치〉가 내보낸 이 사진으로 인해, 사르코지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이후 2006년 6월 이 잡지의 편집장 알랭 제네스타는 소유주와 불화(공식적인 이유는 주요 기사를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신뢰 상실)를 빚은 끝에 갑작스레 해임되었다. 2006년 11월, 알랭 제네스타는 자신의 해임에 사르코지 당시 내무부장관이 개입했다고 주장했지만, 사르코지 측에서는 이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라갸르데르 그룹, 르몽드 지분 5.4% 매입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사건 모두 사르코지 현 대통령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고, 두 매체(일요신문·〈파리 마치〉)의 소유주가 모두 라갸르데르 그룹이라는 사실이다.

라갸르데르 그룹은 에어버스를 만드는 항공사 EADS의 지분 15%를 보유한 프랑스의 대표 기업이자, 세계 최대의 출판 재벌 중 하나인 HFM(아셰트 필리파키 미디어) 및 라디오 채널을 다수 보유한, 프랑스 최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 회장은 아르노 라갸르데르이다.

그동안 사르코지의 ‘언론계 친구들’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아르노 라갸르데르 회장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인간적 관계(종종 형제애라고 표현되는)를 고려하면 사르코지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결합’이라는 도식으로 이해된다.

대선 결과 발표 직후, 사르코지 대통령 예정자는 호화스러운 휴가를 떠났는데 그 비용을 뱅상 볼로레라는 언론 재벌이 모두 부담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명백하다. 프랑스에서는 지금 언론을 방패 삼아 자본 권력(언론 재벌)과 정치 권력이 연애를 하고 있다. 이를 보면 애초에 언론이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EPA사르코지 대통령 부부. 언론계 유력자들과 교류하며 불리한 기사는 철저히 차단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3대 일간지인 르피가로·르몽드·리베라시옹이 겪어온 지난 몇 년간의 변화를 보면 의문은 점점 더 깊어진다. 우파지 르피가로의 소유주가 군수산업체인 다소로 넘어갔으며 중도 좌파지 르몽드의 지분 5.4%를 라갸르데르 그룹이 사들였다. 좌파지 리베라시옹의 최대 주주(37%) 자리는 ‘에두아르 드 로트실드’라는 귀족 금융 재벌이 차지했다. 언론 역시 자본 권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본을 어디에서 들여올 것인가. 해결책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자본 권력과 정치 권력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그래서 그들이 서로를 감싸 안아줄 때, 이 막강한 권력을 과연 누가 견제할 것인가. 아마도 대답은 어느 나라에서건 같을 것이다. ‘편집권 침해’의 직접 피해 당사자인 기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것.

프랑스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일요신문 기자 노조는 사측의 지나친 편집권 개입을 이유로 파업을 선언하고, 표현의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공동선언문을 작성했다. 〈파리 마치〉 역시 정치적 이유에 의한 편집장 해임에 강력하게 반발해 1968년 이후 최초로 파업을 감행했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는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았고, 기자들도 자신들의 투쟁을 오래 끌어나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언론의 현실이 온통 잿빛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르피가로 등 70여 개 일간지와 잡지를 가지고 있는 ‘속프레스’를 군수업체인 다소가 사들였을 때, 약 2백50명의 언론인들(전체 2천7백여 명)은 다소의 입성으로 인해 편집 방향이 바뀔 것을 걱정해 정들었던 보금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어디에 있건, 그들의 기개는 프랑스 언론의 희망이다.

기자명 성욱제(방송위원회 연구센터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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