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둘. 전직 정책보좌관 ㄴ씨 역시 얼마 전 의원실을 나왔다. 문화예술 정책 전문가였던 그 역시 총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좌하던 의원은 보좌진을 수시로 교체하기로 유명했다. 문화예술 관련 포럼과 세미나를 주관하며 정책 역량을 인정받았기에 ‘혹시나’ 했지만, 결론은 ‘역시나’였다. 다행히 그는 취업에 성공했지만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했다.
사례 셋. 현직 비서관 ㄷ씨는 이회창씨가 출마선언을 하기 전날 이회창씨 집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어야 했다. 그날 열린 ‘이회창 출마 반대 촛불집회’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ㄷ씨는 요즘 대선 캠프에 상주하며 대부분 이런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회의원의 의무에 ‘법률 제정’ ‘예산 심의’ ‘국정 감사’ 외에 ‘대선 부역’의 의무는 없지만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캠프에서 몸으로 ‘때우고’ 있다.
사례 넷. 전직 보좌관 ㄹ씨는 그나마 ㄷ씨가 부러운 형편이다. 자신이 캠프에 참여했던 후보는 당 경선에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졌다. 패장은 말도 없고 배려도 없었다. 캠프로 자신을 파견했던 의원은 총선 준비를 한다며 되받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경선 때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다퉜던 상대 캠프 참모들에게 자리를 부탁하는 처지가 되었다.
언론은 국회가 필요한 정책 대결은 하지 않고 정치 공방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을 대하는 보좌관들의 마음은 허탈할 뿐이다. 정책 대결을 준비해줄 보좌관은 필요 없다는데, 선거판에 뛰어들어서 몸으로 뛰라는데 어떻게 태평하게 정책 대결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좌관들은 그저 속으로 울며 ‘선거 보릿고개’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