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안 보자는 데는 가족이 쉽게 합의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제외하고는 별로 TV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 언제까지 TV를 안 볼 것인가? 우선 기한을 한 달로 잡았다. 7월31일 금요일까지 TV를 안 보기로 결정한다고 종이에 쓰고, 박수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두 가지가 문제였다. 집에서야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집에 가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장모가 낮에 즐겨 가는 동네 전파사의 주인 할머니가 ‘소일 삼아’ 노상 TV를 켜놓을 텐데. 다른 사람이 보는 TV를 끄라고 할 수도 없고. 또 어린이집에서 나누어준 교육용 DVD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의 집에 가서는 웬만하면 안 본다. 나(차형석 기자)는 적극적으로 안 본다. 아이의 교육용 DVD는 제외’라고 합의문을 작성했다. 역시 박수로 통과.
장중한 느낌을 주는 헨델의 ‘사라반드’를 틀고 가족이 TV 앞에 섰다. 내가 한 손을 들고 선창을 하면 두 사람이 “안 본다”를 따라 하기로 했다(세 명이 “안 본다”를 외치자 아들이 외쳤다. “나는 본다.” 그래, 아들은 깍두기다. 교육용 DVD는 시간을 정해놓고 보여주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가족은 TV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TV여, 안녕. 멍하니 흘려보냈던 그 수많은 시간이여, 안녕.’ 각자 서명을 하고 TV 브라운관에 선언서를 붙였다.TV를 끊으니 주말이 확 달라지다TV를 끊으니 주말이 바뀐다. 통상 주말이면 늦잠을 자고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당장 토요일 아침에 ‘TV 이별식’을 하고 나니 시간이 남아도는 느낌이었다. 아, 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진공청소기를 잡았다. 예전에는 일요일이 되어서야 점심때쯤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고 느지막이 청소를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다른 프로그램을 하나 더 보고 청소를 하겠다고 우기다가 아내와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는데, 토요일 오전부터 자발적으로 청소에 나서다니. TV를 끊은 덕분이다.
토요일 오전 11시에 청소를 끝내고 책을 꺼내들었다. 언젠가 한 번 더 읽어야겠다 싶었던 임철우의 〈봄날〉(전 5권). 정태춘과 마리아 파란두리의 CD를 켜고,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갑자기 집이 고상한 ‘문화의 전당’이 된 느낌이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집에 놀러온 누나네 식구들과 동네 청소년 수련관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토요일을 청소-독서-음악-수영으로 보냈다. 일요일에는 용인에서 열린, 이주노동자를 돕기 위한 일일 바자회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용인에 있는 재래시장을 기웃거렸다. TV 앞을 떠나니 주말이 바뀌었다. 오, 이날이 과연 내가 보낸 토요일, 일요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