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11월14일 방송위원회가 마련한 ‘지상파 방송 중간 광고 허용범위 확대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모습.
“오늘 공청회 와보니 시민단체 유관 인물이 셋이다. 당황스럽다. 어느 분이 자신에게 중간광고와 관련해 의견을 묻지 않았다고 문제 삼던데, 앞으로 시민단체 결재라도 받아야 하나. 지금 시민단체 역할을 보면, NGO가 아니라 정부기관 같다(박현수 단국대 언론홍보학 전공 교수).”

“방송위 시행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결혼할 의사가 없는 사람보러 혼수는 어떻게 할래,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래 묻는 격이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신문이 이렇게까지 시청자 주권을 걱정하고 있는지 몰랐다. 덕분에 신문 1면에도 등장해봤다(노영란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운영위원장).”

지난 11월14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지상파 방송 중간 광고 허용범위 확대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유례없이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내용에 대한 이견뿐만 아니다. 시민단체 결재라도 받아야 하느냐는 비아냥과 상대방의 의도를 짐작해 반박하는 인신 공격성 비판까지 아슬아슬한 발언이 난무했다.

긴장감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감지되었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케이블TV협회가 김택환 한국신문협회 정책기획자문위원이 공청회 토론자로 참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성명서를 배포하고 있었다. 공청회가 시작된 후에도 참석자들의 동상이몽이 확연했다. 이날 공청회는 11월2일 방송위가 중간 광고를 도입하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허용 범위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방송위 결정이 워낙 전격적이어서 볼멘소리가 만만치 않았는데, 그 불만이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고 만 것이다.

방송위가 내놓은 시행안을 살펴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이들은 모두 중간 광고 찬성론자들뿐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일사불란할 정도였다. 요약하자면, 현행 케이블 텔레비전 수준으로 중간 광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제도를 도입하는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뉴스와 어린이 프로그램만 제외하고 모든 시간대와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에 중간 광고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압축된다. 김상훈 교수(인하대 언론정보학)는 ‘중간 광고라는 말을 굳이 쓸 필요도 없다’고 화끈하게 중간 광고 도입을 지원했다. 박원기 한국방송광고공사 연구위원은 “전 국민의 80%가 이미 케이블TV의 중간 광고에 익숙해져 있다”라고 말했고, 단국대 박현수 교수는 이런 공청회에 이해 당사자인 광고계 인물이 초대되지 못한 것을 꼬집기도 했다. 

도입 찬성론자와 기타 주장의 간극은 멀고 멀어 보였다. 유보 혹은 반대 견해를 가진 이들은, 방송위 결정 과정 자체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결정은 이미 내려놓고, 뭔 말을 하라는 것이냐는 억하심정마저 느껴졌다. 왜 그렇게 일이 진행된 것일까.

일의 경과를 복기해보면, 현행 방송 광고 구조에 모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온 이들조차당황스러워할 정도로 밀어붙이기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2007년 여름 진행된 방송위 연구 용역은 방송광고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포괄 연구였다. 그 안에서 중간 광고는 결코 선순위가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현행 방송광고공사 독점 체제가 아닌 복수 미디어랩에 대한 고려나 광고 총량 규제 등 좀더 큰 틀의 변화를 고민했다.

"무료 보편 서비스인 지상파 역할 고려해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방송위 내부에서 논의는 중간 광고만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외부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보통 민감한 사안의 경우, 방송위 사무국에서 시안을 만들고 공청회 등을 거쳐 안을 다듬은 뒤 방송위원회 위원들이 검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밟는다.

분란은 10월 말부터 감지되었다. 방송위 전체회의에 방송 광고 제도 개선 추진 방안에 관한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신중한 검토를 위해 다음 회의에서 재논의키로 한 것이다. 11월2일에도 위원회 내부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급기야 표결을 통해 도입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조창현 방송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9명이 벌인 표결 결과는 5대4였다. 방송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표가 갈렸다. 보통 의견이 갈리는 경우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기권을 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중립 자세에서 의견을 취합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은, 위원 간 이견의 조율만이 문제가 아니라 일반 시청자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중간 광고에 관한 것이므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긴요했다. 그런데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표가 갈리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연출하면서 날선 표 대결을 벌인 것이다. 

ⓒ시사IN 윤무영최민희 방송위 부위원장은 의견 수렴 절차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11월2일 방송위원회 회의 속기록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더욱 커졌다. 최민희 부위원장이 표결로 마무리 짓자고 독촉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과거 민언련 대표 시절 중간 광고 도입에 반대했던 인물이 이제 와서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게 된 배경을 놓고 추측이 난무한 것이다. 막말로 방송 덕을 많이 본 노무현 정권이 이렇게라도 보은을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현 〈중앙일보〉 기자이기도 한 김택환 한국신문협회 정책기획자문위원은 이번 정권에서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발언 도중 난데없이 ‘신문과 방송의 겸업을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등 중앙일보 기자다운 속내를 드러냈다.

공청회 분위기로만 보면, 지상파는 공공의 적이었다. 신문업계와 케이블업계가 모두 지상파에 볼멘소리를 했다. 자구 노력 없이 손쉽게 재원을 조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방효선 CJ미디어 영업본부장은, 지상파 방송 광고 통계의 허구성을 꼬집었다. 2002년 월드컵 특수기의 광고 수입을 기준으로 이후 수입이 줄었다는 것은 아전인수의 극치라는 것. 현재 공중파의 극심한 광고 끼워팔기 실태도 아울러 고발했다. 그는 “가장 인기 있는 24부작 〈태왕사신기〉에 15초 광고를 사기 위해서는, 공식 단가 6600여 만원 외에 총 7억6000만원가량을 써야 한다. 중간 광고로 인한 효과는 이런 부수입까지 따져야지 겨우 수백 억원이 늘 것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라고 꼬집었다. 

실제 중간 광고 허용으로 인한 매출 증가폭에 관한 추산은 400억원에서 5300억원에 이르기까지 널을 뛴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이게 무슨 통계고 조사냐. 득표 수 예측하면서 200만 표에서 2000만 표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고 꼬집었다. 양 총장은 “조·중·동 및 그 아류와 달리 그나마 한국 사회에서 환경감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공중파이며, 돈없는 사람도 손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무료 보편 서비스인 만큼 그에 맞는 대책이 긴요하다”라고 말해 포괄적인 방송 광고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이번 일은 졸속이었다. 그는 “방송위는 중간 광고가 시청권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안 된다. 그것을 해치면서 도입을 하기 위한 명분을 갖고 설득해야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절차에서도 내용에서도 모두 건너뛰었다”라고 꼬집었다.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중간 광고 도입을 막겠다는 국회의원이 나오기도 했지만, 법안이 상정된 상태가 아닌 이상 방송위가 결정한 사항은 시행되어야 한다.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규제개혁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조정이 되겠지만 특단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번복이 어려운 것이다. 다만 중간 광고의 허용 폭을 놓고 조정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찬성론자들은 한결같이 현행 케이블 수준을 외쳤다. 방송위 관계자는 “이후 협의 단계에서 조정될 것을 염두에 둔 강도 높은 발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무리 국민의 80%가 케이블 중간 광고를 접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시청자들이 지상파 방송을 보면서 현행 케이블 수준의 중간 광고를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