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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켜면 나온다고 한다. 유재석도 아니고 강호동도 아니고, 이경규나 김용만도 아닌 김구라가. 황봉알과 함께 진행했던 딴지일보의 〈시사대담〉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는 못내 당혹스러운 일이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거침없는 욕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사람이 틀면 나오는 스타의 대열에? “야, 이 씨××아”라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를 낳은 그의 라디오 방송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 일단 ‘까고 보는’ 거침없는 수다였다. 정치적 사안과 연예계 뒷담화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입방아에 올린 토크쇼라는 점에서 발군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인터넷 악플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던 방송이었다.

김구라가 뜨면서 김구라다운 ‘구라빨’은 사실상 사라졌다. 공중파에서 인터넷 방송 때와 같은 분방함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 하지만 수위가 낮아졌다 해도 그의 막말은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그럴듯한 떡밥이 되었다. 가식이 없다 못해 거친 그의 언사에 ‘시원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 사린다’는 사람도 있고, ‘저건 개그가 아니라 그냥 막말’이라는 비판도 들린다.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추기 힘든 상황인 건 맞지만, ‘틀면 나오는’ 정도로 캐스팅이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이돌 팬클럽 무서워서 아이돌에게 말조심하고, 게스트가 ‘뻘소리’ 해도 하하호호 웃어주는 고만고만한 패널 사이에서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해줄 사람이, 시청자 처지에서도 간절했던 셈이다. 스타라기보다는 ‘불만에 찬 시청자 1人’ 같은.

문제는, 김구라의 ‘이빨’이 날카롭게 물어뜯었던 대상들이 지금은 대부분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언론의 보호를 받는 데 있다. 인터넷 방송 때처럼 인기와 명성과 돈을 가진 사람들을 희화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힘들다는 말이다. 연예인들끼리 물고 빠는 것도 지겹지만, 자기들끼리 물어뜯는다고 해도 이젠 별로 새롭지 않다. 공중파까지 힘든 길을 돌아온 그지만, 혹시 공중파에서 내려가는 게, 그래서 그 자신다운 방송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기자명 이다혜 (판타스틱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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