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반 힐러리’ 동영상이 적지 않다.
인터넷.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 대선 후보들에게 인터넷은 자신이 가진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창이요, 지지자들을 대면하는 창이요, 손쉽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창이다. 후보들이 자신의 창에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타인도 자신의 창에서 해당 후보의 정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

미국 대선에서 인터넷의 정치적 영향력이 검증된 적은 없다. 하워드 딘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인터넷이지만, 그는 대선 막바지에 낙마하고 말았다. 반 부시 전선이 명확하게 형성된 지난 대선에서도 인터넷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독극물 정치〉의 저자 빅터 캠버는 4년 전 대선에서 존 케리의 군 복무 기록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던 텔레비전 광고를 상기시켰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광고만을 게재했지만, 이 광고는 텔레비전이나 케이블 등에서 반복 재생산되어서 존 케리의 발목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웹에는 이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는 유튜브 같은 곳이 없었다. 실제로 2000년 대선에서도 온라인을 통한 네거티브 공격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온라인 네거티브 공격은 단발식 소총 공격이었다. 겨우 한다는 것이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반대하는 홈페이지를 구축해서 가입한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정보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민주주의 인터넷은 시끄러워야 정상

그러나 이제는 수천 발이 동시에 나가는 자동화기로 바뀌었다. 후보 간의 네거티브 공세가 만만치 않다. 가장 많이 공격을 받는 대상은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다. 현재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힐러리는 사탄’과 ‘내가 힐러리를 싫어하는 10가지 이유’라는 동영상은 말 그대로 절찬 상영 중이다. 이 동영상은 반 힐러리 모임에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뒤 각종 블로그에서 내려받았고, 그 뒤 주류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일주일 만이다. 현재까지 대략 380만명이 이 동영상을 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Facebook.com 내에 있는 배럭 오바마의 지지자 모임에는 ‘힐러리를 멈춰라’라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현재 이 모임에는 39만2000명이 가입했다. Facebook.com 안에는 반 힐러리 모임이 결성되어 6만5000명이 가입했고, 다른 모임에는 약 2만명이 등록되어 있다. 가장 격렬하게 힐러리의 출마를 반대하는 드마우라(DeMaura)는 심지어 반 힐러리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현재 드마우라가 운영 중인 사이트는 회원이 54만3000명이다.

상대 진영에서 목적을 가지고 영상물을 제작해서 배포하기도 한다. 필 드 벨리스가 그런 인물이다. 벨리스는 현재 오바마의 웹 디자인을 책임지는 회사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 그가 Vote Different라는 영상물을 제작해서 익명으로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나 익명성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블로거들이 그의 신분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힐러리 지지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오바마는 오사마(Osama)로 바뀌어서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고, 줄리아니는 동성애자의 권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 중이다.

힐러리에 대한 적대감이 온라인에서 다소 과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힐러리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반 힐러리, 찬 힐러리만 있고 중도가 없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 온라인 세상을 남성이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

중요한 것은 힐러리의, 오바마의, 줄리아니의 지지자들이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서 인터넷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열심히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민주주의란 시끄러운 법이다. 다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실상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란스럽고 경망스러우며 귀찮은 것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타인에게 설득해서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려면 시끄러워야 한다.
그런데 이른바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은 조용하다.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행위가 선거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민주주의를 지지하자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

 



기자명 조영신 (미디어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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