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정희상문철소 박사 측이 최근 부산에서 구입한 캔젠타워 빌딩
부산대학병원장·부산대학 의대 학장을 지낸 뒤 은퇴한 문효중씨(86)는 요즘 비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의 길을 걸어온 자녀 7남매 중 가장 아꼈던 막내아들이 ‘인륜을 저버린 배신’을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막내아들 문철소씨는 현재 아버지와 바로 위 누나를 상대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정 재산 다툼을 벌이고 있다. 문철소씨의 누나 주영씨(45)는 10월16일 〈시사IN〉 취재진과 만나 “집안 부끄럽지만 동생의 패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 사건의 전말이 보도돼 아버지의 공익적인 뜻이 동생 철소 때문에 꺾이는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라고 요청하며 관련 자료 한 묶음을 넘겨줬다.

한때 문효중씨가 7남매 자녀 중 가장 효자라며 아꼈다는 막내아들 철소씨와 법정 싸움에 휘말리게 된 내막은 그가 필생의 업으로 여겼다는 ‘고서화 재단 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의료계 가문을 일군 문효중씨는 일찍이 문익점 선생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에 걸맞은 공익재단 설립을 꿈꿨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는 1960년대부터 귀중한 고서화 매입에 몰두해 병원 일 외에는 모든 개인 활동을 고서화 수집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현재 3만여 책의 고서를 모은 상태로, 부산의대 학장에서 은퇴한 1990년대부터는 재단 설립 꿈을 생전에 이루기 위해 부산시 암남동 일대에 재단 부지를 마련했다. 이어서 그는 부산시청에다 20억원을 출연금으로 하는 재단 설립인가까지 내두었다.

막내 철소에게 재산 가장 많이 주었으나… 그러나 최근 들어 문효중씨의 꿈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고서 재단용으로 매입한 부지 1000여 평을 당초 자기를 포함해 막내 철소씨 및 다른 두 딸까지 4명 앞으로 분할 등기해둔 것이 화근이었다. 명의 신탁을 받은 다른 자녀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었지만 막내아들 철소씨만 ‘자기 땅’이라고 우기며 내놓지 않은 것이다.   결국 지난해 아버지(재단법인 유오기념재단)는 막내아들 앞으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는 법원의 판단을 구했다. 지난 4월 재판부는 모든 전후 맥락과 정황, 자녀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이 땅이 아버지 문효중씨의 고서화 재단 부지라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막내 철소씨는 이에 불복해 김&장 법률사무소를 시켜 즉각 항소해 이 사건은 현재 부산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다.

고서화 재단 설립용 부지 등기부에 이름이 들어간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로부터 ‘이 재산은 훗날 고서화 재단 부지용이다’라는 점을 여러 차례 주지받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생전에 재단을 설립하고 사후에는 아끼는 막내 철소에게 그 관리를 맡길 생각이셨다. 그러나 철소가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리한 사업을 벌이고 다니는 것을 보신 뒤 그런 마음을 거두었던 게 화근인 것 같다”. 철소씨의 누나 주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문철소 박사가 아버지의 공익재단 설립용 재산을 자기 것이라며 내놓지 않자 부자 간에 법정 분쟁이 벌어졌다. 위는 이 사건 소송에서 문철소 박사 아버지의 손을 들어준 부산지법 판결문.
문효중씨가 막내 철소씨의 처사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평소 적잖은 재산을 일구었던 그는 자녀 중 막내 철소씨에게 가장 많은 22건의 부동산을 증여해줬다. 다만 생존 시에는 증여한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료 등을 자신의 활동비로 쓰는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문씨는 막내아들에게 증여한 부동산에서 나오는 월세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막내가 아버지 앞으로 부당이득 반환을 요구하는 취지의 내용증명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행태를 본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고 막내에 대한 애정을 거뒀다는 것이다. 문씨 부자간의 법정 다툼은 재단용 땅이나 증여 부동산을 둘러싼 갈등에서만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두 부자 사이에는 박수근 화백이 그린 고가의 희귀 그림 3점을 놓고도 법적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효중씨는 오래전 재단 소장용 고서화의 하나로 박수근 화백 그림 3점을 구입한 뒤 1995년에는 현대화랑 간행 도록에 이를 올려두었다. 그러다 2000년 초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이 세무사찰을 받게 되자 문효중씨는 당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 근무하던 막내 철소씨를 불러 그림을 잠시 보관해두라고 맡겼다고 한다. 이후 재단 설립이 무르익자 문효중씨는 막내에게 다시 그림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철소씨는 차일피일 미루며 이를 묵살했다. 이때부터 부자 사이에는 왕래와 통신이 두절되기에 이르렀다. 사단이 벌어진 것은 문효중씨가 철소씨에게 맡긴 그림이 최근 옥션에 경매로 나오면서 부터였다. 아버지가 옥션에 확인한 결과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의뢰인이 그림을 30억원에 팔아달라고 맡겼는데, 그 의뢰인은 이 그림을 문철소씨에게 고가에 구입했다고 밝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결국 아들의 행위에 크게 노한 문효중씨는 이 그림을 도난 신고하는 한편, 변제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해둔 상태다.

철소씨의 누나는 “동생이 그림을 몰래 매각한 시기가 부산 캔젠타워 빌딩을 구입한 시기와 겹쳐서 우리는 그림을 팔아 자기 부동산을 산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재산 문제를 둘러싸고 아버지와 여러 건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된 데 대해 문철소씨는 김&장 로펌이 낸 변론 증언을 통해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한 뒤 살고 있는 여자의 조종으로 이런 일을 벌인다고 보기 때문이다”라는 요지로 자기 생각을 밝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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