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소설가)개발 독재 시대의 종언과 함께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도 끝냈어야 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대선 후보들은 ‘재벌을 해체하라’고까지는 못할망정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소리쯤이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바야흐로 ‘대선 국면’이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한 뒤 벌써 다섯 번째 대통령 뽑기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정 사람들은 총선 때보다도 시큰둥하고 술자리에서도 정치권 이야기는 5분을 가지 못한다. 어정쩡하게 사이비 군사정부가 던져준 직선제와 타협할 때에도 87 체제가 혁명이 아니라 개혁인 바에야 우리 사회가 점진적으로 나아진다는 데 절망할 사람은 별로 없는 듯 보였다.

신자유주의가 제국주의 시대에 자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빌려 식민주의를 합리화했던 것처럼, 고전적 자유주의의 변형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는 올림픽을 치르면서 본격 소비 시대에 들어섰고 1990년대 전반에 풍요를 구가했다. 그 시기는 미국이 해체된 소련과 동유럽권에 자본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리 재편성에 여념이 없던 기간이었고, 곧 뒤이어서 아시아의 차례가 다가왔다. 

신자유주의가 수십 년 민주화 투쟁 열매 삼켜

외환위기로 한국 사회는 드디어 신자유주의를 경제 원리로 하는 IMF의 관리 아래 들어갔고 세계화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이는 시장에 대한 숭배와 시장의 요구에 정부와 개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경제 행위자들이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사유화, 사회비용의 축소, 노조 해체, 토지 분할, 저임금 고이윤, 자유무역, 무제한적 자본의 이동과 자연의 가속적인 상품화 등이다.

국가 간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초국적 금융자본과 기업은 우리가 피땀으로 일구어놓은 부를 멋대로 요리했고 이는 마치 개미굴을 드러낸 것처럼 남한 민중의 생활을 파괴했다. 가계 부도, 가족 해체와 중산층 몰락, 대량 실업과 노숙자, 빈부의 양극화, 기업의 도산과 합병, 외국 자본의 국내 기업 사냥, 종속성 심화,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 주권의 위축이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모처럼 민주화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민간정부로 들어서자마자 신자유주의가 수십 년의 민주화 투쟁의 열매를 삼켜버린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북한 인질 잡기를 통한 ‘대남북한 프로젝트’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했으며,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신자유주의 질서에 오히려 적극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저잣거리의 속언대로 ‘먹고사니즘’이 모든 가치를 삼켜버린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시끄럽기로는 대선보다도 삼성 스캔들이 더하다. 그런데도 대선 입후보자들은 예전처럼 하나같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만 되풀이하고 있다. ‘재벌’이라 하지 않고 요새는 점잖게 ‘대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내놓은 일자리는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시 90%의 일자리가 중소기업에 의하여 마련된다고 한다. 경제가 어렵다고 실감되는 것은 바로 중소기업이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 구조가 첫째 원인이라는데.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대대로 재벌을 위한 나라였으며 그들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살기 어렵다는 서민 대중은 언제나 구경꾼일 뿐이다. 북유럽 식으로 서로 간에 조금씩 욕망을 참는 ‘근검절약형’의, 어딘가 쓸쓸하지만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은 신자유주의에 전력투구하지 않고도 우리 삶의 방식대로 현재의 우리네 능력으로 이룰 수 있다.

개발 독재 시대의 ‘너 죽고 나 잘살기’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그 무렵에 이미 끝장났다. 그러니까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도 함께 끝냈어야 한다. 이제 와서 ‘재벌을 해체하라’고 하면 좀 과격하니까,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소리쯤이야 대선 후보자들이 먼저 입을 좀 떼어보면 말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공약들 때문에 아직도 시큰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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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석영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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