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에 봉하마을에서 쫓겨나 주변 논두렁에서 방송을 내보냈다(위).


“로고를 가리고 다니는 요즘 참 ….” 최근 만난 KBS 프로듀서가 한숨 쉬며 내뱉은 말이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쫓겨나고,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에서 시민들에게 취재 거부당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푸념이다. 지난 5월29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를 지켜본 한 지인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KBS 기자들에 대한 시민의 반응이 적대적이었다”라고 전했다. 봉하마을에서 가장 수난을 당한 건 조·중·동 기자이지만, 서울광장 부근에서 조·중·동보다 더한 수모를 겪은 언론사는 KBS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KBS 기자와 프로듀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KBS 노동조합·PD협회·기자협회가 성명을 냈다. 이들은 KBS의 신뢰도 추락을 걱정했고, 조문객 인터뷰 누락 따위 사례를 언급하며 보도·편성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특히 KBS PD협회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병순 사장 퇴진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늦게나마 ‘KBS 보도정상화’ 작업에 나선 이들에게 격려를 해주는 게 도리이지만 온전히 지지를 보낼 수는 없다. 시민으로부터 ‘돌을 맞는’ 현재 KBS 상황이 일부 간부와 경영진만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까지 일선 기자·프로듀서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해오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문제의 원인을 간부들에게 돌리는 건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정권이 바뀌고 보수 인사로 간부들이 구성됐다고 해서 KBS 문제가 모두 그들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니다.

기자와 프로듀서 먼저 문제의식 느껴야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부터 책임이 자유로운 언론은 없다. 검찰과 함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방향을 사실상 이끌었던 조·중·동부터 경향·한겨레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책임론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KBS가 수난을 당하지만, MBC 역시 노 전 대통령 보도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검찰이 찔끔찔끔 흘리는 수사 내용을 덥석 받아 보도했고, 본질과 상관없는 ‘파파라치 보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성이나 자성이 없었던 것도 KBS만의 행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유독 시민의 비난은 KBS로 집중될까. 이 질문에 대한 언론계 인사들의 반응은 대략 이렇다. “KBS가 이렇게 빠르게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보했던 KBS가, 정권이 바뀐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KBS 구성원들도 할 말이 많은 듯하다. KBS의 한 기자는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많은 시민을 보며 ‘노빠들’이 준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KBS 간부들의 시각이다”라고 말했다. 일선 기자·프로듀서와의 간극이 너무 크고 이것을 좁히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 간극을 좁히는 건 ‘당신들’의 몫이지 우리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KBS 기자·PD의 투쟁을 온전히 지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이 교체 대상으로 언급한 간부들이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명심하자. KBS의 변화는 사장과 간부들이 아니라 일선 기자와 프로듀서의 문제의식과 ‘조그만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어찌되었건 문제는 바로 ‘당신들’이라는 얘기다.

기자명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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