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나 그림

언론의 출판 기사와 입에 발린 서평에 별 감흥이 없다면, 알라딘으로 오라. 책을 읽었는데 정말 좋더라는 지인의 추천만큼 강력한 유인은 없다. 책이 범람하는 시대, ‘확률 높은’ 독서를 원한다면 이곳의 독후감을 커닝하자. 

“직원들에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책 파는 사람이다.” 알라딘 웹기획팀 김성동 팀장의 말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알라딘이 책을 파는 온라인 서점인 걸 누구나 안다. 왜 당연한 말을 하는가. ‘품평하지 말고 팔기나 해!’쯤으로 요약될 수 있는 알라딘의 자성 멘트는, 거꾸로 알라딘이 다른 지향에 살짝 경도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멋쩍은지 그는 덧붙인다. “뭐 우리가 책장사가 하는 걸 안 한다는 건 아니다. 1+1 행사도 하고 경품도 준다.”

혹 ‘알라디너’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알라딘의 사람들’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알라디너라는 말은 알라딘 공간의 특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파리지앵, 뉴요커처럼 고유의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인 것이다. 알라딘에서는 파는 자와 사는 자가 모두, 책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공유한다. 그 정점에 알라딘 서재가 있다. 알라딘 서재라는 이름으로 서평  블로그 수천 개가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다.  

ⓒ시사IN 한향란
알라딘 서재를 관리하는 웹기획팀과 편집팀 직원들. 그들도 서재를 꾸려 책을 추천한다.

알라딘 서재가 선을 보인 것은 200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서재’라는 이름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출발했다. 2004년 11월 커뮤니티 활동 보상 시스템인 ‘탱스 투(Thanks to)’ 서비스를 시작했다. 상품을 구입할 때 다른 고객이 남긴 마이 리뷰나 페이퍼의 추천, 서평의 도움을 받은 경우 고마움의 표시로 ‘탱쓰 투’를 클릭하면 글 작성자와 구매자에게 구매 금액의 1%를 적립금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지난해에는 외부 블로거들에게도 문을 열어 해당 블로거와 구매자에게 각각 3%와 1%를 적립금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6월, 드디어 ‘알라딘 서재2.0’을 열었다.

알라딘 서재2.0을 준비하는 데 웹기획팀 직원 6명이 꼬박 1년 동안 매달렸다니, 온라인 서점치고는 투자 규모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요즘 마이 리뷰 하루 평균 등록 수는 300여 건에 달한다. 마이 리뷰, 마이 페이퍼 등 다양한 성격의 등록물을 모두 합치면 매일 총 800여 건의 글이 새로 올라온다. 2007년 8월 말 기준 총 누적 콘텐츠는 100만 건을 넘어섰다. 

액티브 유저 6000여 명 ‘와글와글’

이 가운데 최근 6개월 동안 10개 이상의 글을 올린 이른바 ‘액티브 유저’ 숫자는 6086명이다. 알라딘 서재가 신변잡기 위주의 다른 개인 홈피와 성격이 다른 것은, 사용자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아서일 수 있다. 김 팀장은 “이른바 찌질이가 별로 없고, 30대 직장인이 주축을 이룬다”라고 말했다. 액티브 유저 6000여 명 가운데 65%가 여성이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가장 많다. 30대가 40%, 20대가 33%, 40대가 17%를 차지한다. 

아직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다. 사이트 하루 방문자는 평균 4만명.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할 때 목표로 8만명을 세웠다고 하니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전체 방문자 수는 인터넷 서점 1위인 예스24의 절반 수준이다.
아쉬운 말이지만, 알라딘 공간은 폭발적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자정 능력이 뛰어난 청정 커뮤니티로서의 문화가 훨씬 강해서이다. 조금이라도 ‘섹시’한 글이 올라오면, 근엄한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도 보는데….’  널리 알리려는 광고 충동보다는 통하는 사람끼리의 교감을 중시하는 분위기인 것은 좋지만, 다른 블로고스피어에 비해 폐쇄적으로 느껴질 소지도 있다. 글을 포스팅할 때마다 독자를 1000명씩 몰고 다녔다는 30대 초반의 한 알라디너는, 그런 꾸짖음에 지쳐 알라딘 공간을 떠났다. 사람들이 북적이기를 원하는 알라딘 측으로서는 애가 탈 일이다.

책, 특히 인문서를 두루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아서인지 상업적 장치에 대한 거부감도 유별나다. 김 팀장에 따르면 서비스를 개편하면서 메타블로그 사이트인 올블로그에 자동으로 글이 보내지도록 기본 설정을 해놓았더니 비난이 빗발쳐서 애를 먹었다. 그는 “마케팅을 하자면  외연을 확대해야 하는데 서재지기들의 성향이 워낙 완고하다. 알라딘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다기보다, 자신들이 공간을 풍성하게 하는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좋은 일이지만,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라고 말한다.

알라딘 공간이 낳은 스타 가운데 한 명인 필명 ‘마태우스’의 서재.

서재 시스템이 도입된 지 3~4년이 되다 보니 어느덧 세대 구별이 생겼다. 시기마다 스타급 이슈 메이커는 몇 명 되지 않는다. 1세대 알라디너에 대한 추억을 회고하는 글을 보자. 필명 흑백TV의 서재 ‘난 아무도 아니다’(blog.aladdin.co.kr)에서는 1세대 유명 알라디너 열 명을 뽑아 닮은꼴 유명인과 매치시키는 추억의 코너를 선보였다(알라디너 닮은꼴 특집1- 서재 1세대 편). 미미달, 마로, 파란여우, 낡은 구두, 바람구두, 연보랏빛 우주, 가시장미, 아프락사스, 검은비, 모과양.

부산에 거주하는 배혜경씨는 알라딘에 ‘처녀자리의 책방’이라는 서재를 운영하고 있다(http://blog.aladdin.co.kr/sense). 두 딸의 엄마이자 7년째 독서논술 지도사로 활동하며 어린이와 어린이책을 꾸준히 만나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배씨가 서점 알라딘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2000년부터 리뷰를 쓰기 시작해 2004년 알라딘에 개인 서재가 마련되자, 아예 둥지를 틀었다. 

책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은, 그에 따르면 ‘배설의 기쁨’쯤으로 표현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말하고 싶은 것이 꾸역꾸역 밀려 올라온다는 것. 그런 그의 글에 공명해 서재를 즐겨 찾는 이가 대략 560명쯤 된다. 댓글을 통해 교감하는 것이 즐겁다. 초기에는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주로 보았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보고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카불의 책장수〉와 〈이것이 인간인가〉를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순수문학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다. 최근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과 경제 소설 〈애덤 스미스 구하기〉도 의미 있게 읽었다.

“이런 곳도 다 있군요. ‘나의 서재’라지만, 제가 만든 것 아닙니다. 저는 적응하려고 애쓸 따름입니다.”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문패를 달고 서재를 운영하고 있는 로쟈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해놓았다. 어정쩡해 보이는 그의 말투와 달리 그는 필명 물만두, 그리고 필명 마태우스와 함께 알라딘이 낳은 최고의 스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서재 ‘로쟈의 저공비행’은 알라딘의 기네스 항목에서 1~2위를 다툰다(딸린 기사 참조). 

제1회 우수 리뷰대회 대상 수상자인 김지연씨의 서재

‘처음처럼이 있는 서재’를 운영하는 마태우스의 서재는 위트와 정보가 공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http://blog.aladdin.co.kr/747250153). 그는 현재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신분이다. 그러나 블로그에 실린 글은, 여느 인문학도 못지않은 교양서로 넘쳐나고, ‘음주친교’ 스토리 쯤으로 이름붙일 수 있는 재담과 결합되어 높은 인기를 누린다.  

그가 꼽은 추천 도서 목록에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언론개혁에 관한 책’을 소개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 전 분야가 개혁을 필요로 하지만 그 영향력으로 볼 때 개혁 대상 1순위는 바로 언론. 하지만 언론 개혁이 어려운 것은 언론 스스로 제1의 권력이 되어버린 데 있지 않을까’  ‘문학판을 알자!’ 라는 이름의 리스트는 또 어떤가. 그는 ‘문학판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한데, 문학판도 우리 정치판 못지않게 개판이다. 문인들은 좀 다르겠지, 하는 신비감을 갖고 있다면 이 책들을 읽자’라고 발칙한 추천사를 써놓았다. 가장 매서운 리스트는 ‘정말 지겹기 짝이 없는 책’ 항목이다. ‘유난히 본전을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때려치웠을 책들입니다. 어찌나 재미가 없고 지루한지. 내용은 좋지만 꼭 그렇게 썼어야 할까요?’

그렇다고 그가 남 씹는 데 이골이 난 까칠한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필이 꽂힌 책은 온갖 이유로 권하고야 마는, 열혈 서평꾼이다.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인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 창 펴냄)에 대한 글 ‘각 분야 1위는 먹고 살게 해줍시다’라는 제목의 리뷰를 보자. 리뷰 말미에 이런 추천사를 썼다. ‘세상에 어렵지 않은 직업은 없지만, 그래도 각 분야의 최고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자본주의다. 인터뷰 업계의  최고수로, 인터뷰이에게 ‘무슨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지승호가 먹고 살기 어렵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술집에서 술을 시킬 때도 벨이 없으면 쳐다볼 때까지 손을 들고 있다’는 소심한 저자, 그분의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에 대해 씁쓸함을 느껴보자. 우리가 느끼는 씁쓸함이 커질수록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사IN 한향란
2003년 알라딘이 서재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서재 업무를 담당했다는 김성동 팀장.

올해 알라딘은 3회째 리뷰 대회를 열고 있다. 응모 기간은 11월16일까지. ‘좋은 서평이 좋은 책을 살린다’는 모토를 내걸었다. 제1회 리뷰 대상을 수상한 김지연씨(blog.aladdin.co.kr/kimji)는 그 모토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2005년 당시 당선작은 사진작가 최민식의 책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글이었다. 그는 그때 ‘그의 책을 읽으면서 정작 작가가 글로 쓴 어떤 서술도, 어떤 핵심적인 주장도, 그 어떤 아름다운 사상과 경구도 사진 한 장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라며 그의 사진에 감탄했다. 김씨는 2003년 9월에 처음 알라딘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열혈 알라디너가 되었다. 

 누구나 성장기에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비록 의무로 강제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정작 책을 읽고 그것을 곱씹어보는 일은 기묘한 흡인력을 갖는다. 언론의 출판 기사와  입에 발린 서평에 별 감흥이 없다면, 알라딘으로 오라. 누군가 책을 읽었는데 정말 좋더라는 추천만큼 강력한 유인은 없다. 책이 범람하는 시대, 아닌 책에 폭탄 맞지 않는, ‘확률 높은’ 독서를 원한다면 남이 쓴 독후감을 훔쳐보자. 수천 명의 알라디너가, 누구나 좋아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그 이유를 낱낱이 아뢰고 있을 것이다.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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