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갖가지 방명록이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서울역 분향소에도 뜨거운 추모글이 방명록을 가득 채웠다(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영철씨(38)는 5월26일 새벽 3시30분, 느닷없이 몇 년째 연락이 끊긴 대학 동기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넣었다. “내가 술에 취했다. 그가 그랬다. 너희는 어떠냐? 통하냐? 우리 어찌해야 하냐?” 이튿날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문자 메시지를 넣었다. “일상의 굳은살이 벗겨져 나가는 감각의 각성이 아픔으로 느껴진다. 그로 인해 정치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가 죽고서야 내 지난 시시했던 삶을 반성한다.” 김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다녀왔다가 진탕 술을 먹었고 또 진탕 울어제쳤다. 정치적 첫사랑의 죽음을 애도하다가 옛 동지에게 취중 안부를 묻게 되었던 것이다.

그랬다. 죽고서야 통했다. 노무현이 그토록 바라던 ‘국민과의 소통’이 지난 일주일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301개 분향소에 다녀간 추모 인원은 500여 만명. 그것도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었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도 물결에는 슬픔과 각성이 공존했다.

사람들은 목놓아 슬퍼했다. ‘대통령 노무현’이기 때문이었다. 유교 문화가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은 ‘가장’ ‘아버지’의 상징성을 띠고 있는 데다 서민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보여준 정서적 친밀감은 가족의 죽음만큼이나 강한 심리적 충격과 상실감을 안겨줬다. 심영섭 교수(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는 “노무현보다 과가 많은 사람도 살아 있는데 공과를 채 논하기도 전에 죽어버렸으니 억울함,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탄핵당했을 때 직접 구해줬는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서적 쏠림이 더 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과 다름없는 정서적 유대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벼랑 투신이라는 자살 방법도 적잖은 심리적 충격을 가했다. 문요한 원장(더 나은 삶 정신과)은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려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절박감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하면’ 하는 안타까움을 전달한 것 같다. 또한 몸을 내던짐으로써 명예와 가치를 지키려 했다는 결연함이 느껴져서 고민의 심정이 더 강렬하게 전달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제 7일간의 장례는 끝났다. 앞으로 노무현의 죽음은 어떤 수용 과정을 거치게 될까? 심영섭 교수는 “충분히 애도하게 놔둬야 한다”라고 말한다. “사회 전반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총생산을 늘리려고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의 스트레스 총량을 줄여야 한다. 장자연, 용산 참사, 박종태 등 눈 뜨면 죽음이다. 스트레스를 가장 쉽게 푸는 방식은 우는 것이다. 슬픔을 막으면 역효과가 난다.”

애도 공동체의 긍정적 에너지

대한민국에 슬픔이 꽉 차 있다. 이른바 ‘애도 공동체’라 할 만하다. 문요한 원장은 “추모 열기에는 비탄과 상실감이 주는 우울한 분위기도 있지만 우리 시대와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을 다져가는 성찰과 자성의 긍정적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노무현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현 정권이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추모 행사조차 정권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과도한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퇴진 노태우’ 띠를 두르고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 노무현. 그는 원칙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이번 추모의 특징은 사람들이 기어이 한마디씩을 남긴다는 점이다. 덕수궁 거리 분향소에 준비한 방명록은 일찌감치 동이 났고, 추모객들은 수첩을 뜯어서라도 할 말을 적었다. 그렇게 만장, 노란 리본, 벽보에 새겨진 그들의 애도사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더 이상 방관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편히 쉬소서.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두 눈 부릅뜨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의 삶을 이어가겠습니다.”

노무현의 ‘가치’가 그들을 움직였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개설한 개인 인터넷 사이트 ‘사람 사는 세상’에는 ‘노무현과 함께 꾸는 꿈’이라는 게시판이 마련되었다. 5월25일부터 국민장의 마지막 날인 5월29일 자정까지 1000건에 가까운 ‘우리들의 꿈’이 기록되었다. 진실이 통하는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소수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사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사람들의 꿈은 하나로 수렴되었다. 사람 사는 세상. 1989년 노무현이 초선 의원이던 시절 펴낸 책의 제목에서 비롯된 이 문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관되게 노무현의 표상이 되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말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홈페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 가슴에 다르게 다가오는군요. 사람 사는 세상은 노무현이 꿈꾸는 세상이었고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이지요. … 결과가 이리 되어 가슴은 아프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바라던 세상을 우리들이 조금씩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봐요.”(5월25일 ‘변신녀’)

합리적 보수로 꼽히는 윤여준 전 국회의원은 “사람들은 노무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같다. 노무현은 서민 비주류의 상징이었다. 이들은 같은 계층의식을 느끼면서 노무현은 나 자신이고 나의 대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이 내세운 평등의 가치로 승화되면서 강한 연대감과 결속감을 형성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서민 대중이 나라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노무현은 죽었지만 노무현의 정신은 더 팔팔하게 살아 수많은 노무현을 탄생시키고 있다. 이 정권이 상대할 대상은 무형의 노무현이었다. 검찰 수사나 경찰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강적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꿈, 사람 사는 세상이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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