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운(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법학부 교수)‘명예도 자존심도 버리고’ 대선 3수를 선언한 이회창씨는 맨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그는 한편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씨를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론 쿠데타를 용인했던 국민의 너그러움에 기대려 한다.
2003년 검찰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가 한창일 때, 이회창씨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기세로 대검찰청에 출두했다. ‘모두 내가 시켜서 한 일이니 나를 처벌하라!’고 가슴을 들이대는 그를 검찰은 극구 증거가 없다며 돌려보냈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옮아갈 것 같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는 이 해프닝을 고비로 마무리되었다.

이회창씨의 정치 인생에서 이 사건은 사실상 첫 번째 실질적 정치 학습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튿날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이 남긴 짧은 코멘트도 그런 느낌을 담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이제야 정치를 좀 아는 것 같다.”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두 번이나 지낸 사람이 대검찰청 현관에서 비로소 ‘정치’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처럼 우스운 코미디가 또 있을까? 문제는 이 우스운 코미디의 의미를 너무도 처절하게 가슴을 치며 곱씹어야 했던 사람이 바로 이회창씨 자신이라는 점이다. 이때 비로소 그는 이길 줄 알았던 두 번의 대선에서 자신이 패배한 이유를 알게 되었으리라. 특히 배운 것이나 가진 것이나 겪은 것에서 결코 상대가 될 수 없었던 노무현씨에게 패한 까닭을 그는 골수에 사무치도록 깨달았을 것이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사즉생(死卽生)의 게임이라는 사실, 죽기를 각오하고 몸을 던져야만 이길 수 있는 투쟁이라는 사실.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명제를 이회창씨는 그제야 알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의 화신인 양 고상한 척했지만, 실상 이회창씨는 삶 전체를 법 뒤에 숨는 방식으로 지내온 사람이다. 그의 ‘대쪽 판사’ 이미지나 국무총리로서 ‘원칙주의자’라는 평판 역시 기본적으로는 법의 권위를 앞세우고 그 뒤에 몸을 숨기는 이른바 ‘법치주의자의 처세술’이었을 뿐이다.

ⓒ시사IN 안희태대선출마를 결심한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7일 오후 개인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에서 제17대 대선 출마선언을 하고있다.
‘대쪽’ 이미지는 ‘법치주의 처세술’의 결과물

‘아름다운 원칙’으로 포장되었던 그 관성이 결국 패배 원인이었음을 깨달은 뒤, 지난 4년 동안 이회창씨는 아마도 수없이 부끄러움에 떨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죽기를 각오하고 몸을 던지는 마지막 승부의 기회를 염원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통령 3수를 선언한 11월7일 기자회견문에는 이런 심정이 곳곳에 배어 있다. 오죽하면 그 스스로 ‘평생을 지켜온 개인적 명예와 자존심조차 다 버렸다’고 말했을까?
뒤늦게나마 법치의 오만을 벗고 정치의 본령에 도달한 것은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이제라도 몸을 던져 제대로 승부를 해보겠다면, 그 또한 이회창씨의 자유요 권리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이회창씨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과연 올바른 정치(正治)인가? 아니면 그저 권력 투쟁으로서의 정치(政治)일 뿐인가?

보도에 따르면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회창씨는 국립 현충원을 찾아가 무명용사탑에 헌화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고 한다. 이로써 앞서의 물음에 그는 이미 온몸으로 답한 셈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몸을 던져 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씨를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못해 그것을 용인해준 대한민국 국민의 너그러움에 기대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회창씨는 이렇게 해서 그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냉혹한 권력 정치의 논리로 치르게 되었다. 대쪽이 쿠데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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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이국운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법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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