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베이젼〉(위 왼쪽)은 극소수를 제외한 인류가 감정을 잃은 세상을, 〈나는 전설이가〉(위 오른쪽)는 인류가 흡혈귀로 변한 세상을 다뤘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전부 이상하게 변하고 나 혼자만 제정신이라면? 그들이 나를 죽이고(먹고 / 뜯어고치고 / 감염시키고) 싶어한다면?

미국인들에게, 특히 과거 미·소 냉전 시대에, 이런 문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핵전쟁이나 세균 감염으로 인류가 멸종하고 혼자 살아남았다거나,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전부 돌연변이로 변해버렸다거나 하는 상상이다. 굉장히 많은 소설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고, 그 소설들을 원작으로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과 오는 12월 개봉 예정인 〈나는 전설이다〉. 둘 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두 영화는 여러 모로 닮았다. 우선 둘 다 1950년대의 유명한 SF소설(과학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지금까지 서너 차례씩 동명의 영화가 리메이크되었다. 〈인베이젼〉은 같은 작품의 네 번째 영화이며 〈나는 전설이다〉는 세 번째이다. 게다가 주제도 비슷하다. 원제가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인 〈인베이젼〉은 외계 생물체의 침입으로 인류의 감정이 사라진 세상을 다룬다. 아직 ‘정상인’인 극소수 사람들은 자칫 감정을 드러냈다가는 수많은 군중에게 봉변을 당하므로 절대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나는 전설이다〉에서는 전 인류가 흡혈귀로 변한다. 주인공은 혼자 남아 끝까지 저항하지만 역부족이다.

소설과 영화에서 이 작품들이 주는 공포는 대단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른 존재이며, 그들은 자신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 나는 이른바 ‘왕따’이며 공격 대상이 된다.

나를 공격하는 대상이 동물이거나 세균이거나 귀신이면 차라리 낫다. 혹은 전 인류가 죽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설정이 덜 공포스럽다. 왜냐하면 사회 속에서 고립되는 것에 누구나 근원적인 공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50년대의 억압 사회에서 이런 원작들이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정상적인 것과 구분되는 타자(他者)를 만들어내고 처벌을 가하는 것은 보수적이고 억압 사회에서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러한 타자들, 혹은 왕따들에게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덧씌워지기 마련이다. “쟤는 더러운 애라서 머리도 안 감고 옷에서 냄새가 난다.” “저 여자는 남자들한테 몸을 함부로 굴리는 더러운 여자다.” “어디 출신 사람들은 교활하고 뒤통수를 잘 친다.” “못배운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심해서 남 잘되는 꼴을 못 본다.”

그렇게 특정인 혹은 특정 집단에게 낙인을 찍는다. ‘우리’라는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외된 사람은 ‘우리’와 동화되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된다. 그런데 그러한 낙인은 상대방을 규정지을 뿐 아니라 동시에 나를 규정짓는 구실도 한다. 가령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다른 여자를 욕하는 어떤 여자가 있다면, 자신은 함부로 성적 접촉을 하지 않는 여자라는 자아 정체성을 표명하는 셈이 된다. 좌익 사상에 물들면 생각이 삐딱해지고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고 성토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사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사회에 적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억압된 사회가 ‘왕따’ 만들어 내는 까닭

억압적 사회는 ‘왕따’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일컬어지는 가치’를 확산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가령 과거 ‘빨갱이’에게 덧씌워지던 낙인이 단적으로 그러하다. 빨갱이들은 말은 잘하는데 신뢰가 없어서 뒤를 치고, 인정이 없어서 부모 형제도 미워하고, 생산적인 일은 할 줄 몰라서 싸움만 일으키고…. 행색이 지저분하거나 직업 없이 놀거나 밤에 나다니거나 산 속을 돌아다니면 신고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질서 유지에 바람직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소설들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억압적 분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독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람직한 규범이 뚜렷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뒤집어서 생각하면 왕따가 되었을 때의 공포감 또한 대단할 것이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나 〈나는 전설이다〉는 그러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제 과거 소련 혹은 공산주의라는 주적이 사라진 지금, 리메이크된 〈신체 강탈자의 침입(인베이젼)〉이 거물급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혹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변화한 시대에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영화는 스토리의 부자연스러운 변형을 가했고 그것이 역시 대중의 공감을 받지 못했다. 12월에 개봉하는 〈나는 전설이다〉는 변화된 사회에서 어떠한 작품이 되어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자명 최내현 (드라마틱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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