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우리 사회에 적잖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집행유예가 적절했는지를 놓고 다투는 이가 있는가 하면, 법관이 범죄 사실과 법리를 넘어 현실까지 고려한 판결을 할 수 있는지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한다.

적잖은 의문도 던졌다. 재판관이 대기업 오너를 구속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인식 아래 ‘장기적으로 실형 선고가 국가에 도움이 되겠지만,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관의 말대로 대기업 오너를 구속하면 실제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또 재판관은 법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제3의 길을 고민한 결과로 강연·기고 형태의 사회봉사 명령을 제시했는데 이는 적절한 것일까.

판결을 두고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이 분야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법학자 4명, 경제학자 3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시사IN 윤무영
조국 교수 (서울대 법대)

사법부 불신은 ‘강화’ 준법의식은 ‘약화’

 

기업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온정적 태도가 반복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기업인들의 준법의식을 약화시키고, 일반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킬 것이다.

기업 범죄에 대한 온정적 판결은 중·장기적으로 기업인의 준법의식을 저하시키고 시장 자체를 왜곡하며 기업의 대외신인도를 저하시킴으로써 경제의 근간을 약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강연·기고가 적절한 사회 봉사에 해당하는지, 이번 판결에서 양형 재량이 타당하게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영·미권처럼 양형기준표가 만들어져 법관의 재량을 일정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 기업 총수 개인에 대한 처벌 외에, 해당 법인을 처벌하는 형벌 또는 보안 처분도 필요하다. 프랑스 형법이나 미국 양형기준표에서는 법인 해산, 법인에 대한 보호관찰, 법인 영업소의 폐쇄, 범죄에 제공되었거나 제공하려고 한 물건 또는 범죄로 인해 획득한 물건의 몰수 등을 법인용 형사 제재로 도입하고 있다. 이런 제재가 활용될 때 기업 범죄는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내가 재판관이었다면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시사IN 윤무영
이지순 교수 (서울대 경제학)

1조원 사회 환원은 ‘좋은 징벌’이다

 

한국의 기업 운영 관행을 고려해볼 때 집행유예와 벌금은 그런대로 괜찮은 판결이다. 판결에서 국익을 고려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죄인에게 실형을 주었을 때 관련 당사자(주주·종업원·고객 등)가 입을 수 있는 손실이 반대의 경우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 집행유예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대기업 오너를 구속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있다.

또 체형을 가하는 일만이 징벌의 방법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벌금형도 징벌 효과가 크다. 다만 벌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는데 전액 사재로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좋은 징벌이 될 수 있다. 사회봉사 명령은 ‘봉사’의 정의가 불확실해 징벌로써 불완전하다. 내가 재판관이었다면 사재 출연을 권고하기보다 실제로 국가가 1조원을 징수하게 했을 것이다. 재산가에게는 재산을 빼앗는 방법이 더 확실한 처벌이 될 수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죄와 비교해본다면 정 회장의 죄가 더 크다. 정 회장의 경우 공적인 문제이고 김승연 회장은 사적인 문제다.

 

ⓒ시사IN 한향란
박상기 교수 (연세대 법대)

집행유예·사회봉사 매우 적절한 판결

유죄 판결을 인정한 점에서 이번 판결은 적절하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상 대기업 오너를 구속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 판사가 고심 끝에 집행유예 선고를 내렸을 것이다. 판사가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채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육체적 노동보다는 제3의 길로 제시한 사회봉사 명령도 적절했다고 본다. 위법한 행위를 한 본인으로 하여금 준법 관련 강연과 투고를 하게끔 하면 그 내용이 일종의 반성적 형태로 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을 한 교수에게 음주운전의 폐해를 주제로 강연을 하게 한 미국 판례가 있다. 자기가 잘못한 일을 가지고 강연이나 투고를 하게 하는 것은 일종의 반성문과 같은 것이므로 본인에게는 어려운 형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법부가 화이트칼라형 범죄에 너그러운 것은 사실이다. 화이트칼라형 범죄가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이트칼라형 범죄자의 경우 고가의 변호사를 선임해서 수사와 재판을 받기 때문에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가 쉽다.

 

 
김기원 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제학)

국익 위해서라도
단죄해야 마땅

재판에서 형벌을 내리는 기본 원칙은 유사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한국에서 집행유예 당사자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무죄와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부적절한 판결이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때 재벌 총수들에게 모두 집행유예를 내려 법 질서가 무너지고 재벌식 황제 경영을 근절하지 못했다. 이것이 외환위기를 불러온 한 요인이었는데, 판사가 그런 역사적 경험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오너를 구속하면 일시적으로 해당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업 경영이 투명화·선진화하는 계기가 되어 좋은 영향을 미친다. 사법부는 ‘경제적 영향’이라는 잘 모르는 영역을 살필 게 아니라 확실하게 아는 ‘법리적 고려’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 법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정상 참작을 할 수는 있으나, 국익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정몽구 회장을 단죄했어야 했다.

법은 마지막 양심이고, 사법부는 이 마지막 양심을 지키는 보루인데, 이번 판결은 법을 제멋대로 적용해 사회 질서를 어지럽혔다.

 
 

ⓒ시사IN 한향란
김성태 교수 (연세대 법대)

돈 많은 자는 돈으로 때우라니…

재벌의 처지를 지나치게 고려한 문제 있는 판결이다. 사법부가 블루칼라형 범죄보다 화이트칼라형 범죄에 더 관대함을 드러낸 또 하나의 사례이다. 정몽구 회장과 김승연 회장은 둘 다 경제 권력을 동원해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파급 효과나 경제 효과를 놓고 보면 정몽구 회장 사건이 훨씬 상징적이다.

이번에야말로 큰 의미의 국익을 위해 정경 유착의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 외국에서는 중대한 경제사범에게 더 엄한 벌을 준다. 대기업 오너를 구속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재판관의 논리는 너무 군색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도 사는 법인데, 오너 1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인정하고 말았다.

이번 판결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형벌을 치르는 것은 징벌 효과가 없다고 본다. 형벌도 공평해야 한다.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다른 사람에게는 실형 선고를 하면서 재벌에게만 예외를 두는 것은 옳지 않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때마다 ‘돈 있는 자는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공식이 정착될까 봐 걱정된다.

 

ⓒ시사IN 백승기
전성인 교수 (홍익대 경제학)

법치주의 깨는 판결 본말이 전도된 명령

유죄를 인정했음에도 통상적인 양형 원칙에 부합하지 않은 판결을 내려 검찰의 상고까지 어렵게 만들었다. 판사는 법리적 고려를 원칙으로 하면서 현실을 일부 반영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정당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번 판결은 형평성을 잃은 판결로 블루칼라형 범죄보다 화이트칼라형 범죄에 더 관대한 사법부, 평등하지 않은 법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대기업은 1인 회사가 아니므로 대기업 오너를 구속한다고 기업이나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주주의 돈을 훔친 오너의 경우 경영 일선에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더 회사 가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사회봉사 명령은 관행에서 벗어난 것이다. 주주 돈을 훔치면 안 된다는 내용의 강의를 수강한다면 몰라도 그런 강의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은 본말의 전도다. 이번 판결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어 법치주의 정착이 저해될까 걱정된다. 법의 지배가 정착할 수 없다면 선진 사회로 도약하기 어렵다. 또 이번 판결로 인해 재벌 오너들의 치외법권적 행동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금융시장의 투명성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한향란
한상희 교수 (건국대 법학)

판사의 직권남용 해도 너무했다

경제범죄특별가중처벌법상 무기징역까지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인데 매우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더구나 이 사건은 지난 외환위기 이후 경영의 투명성에 대한 전사회적 약속을 정면에서 위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죄질이 더 나쁘다. 그런데도 ‘투명 경영으로 나아가는 과도기’ 운운하면서 이 사건을 비호한 판결은 법관의 직권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판결을 내린 법관은 징계를 받거나 탄핵 대상이 되어야 한다.

대기업 오너가 구속되면 그 기업은 대외신인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신용 저하를 극복하려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오너를 구속해서 그 기업의 명운이 좌우될 정도라면 그 기업은 이 경쟁 사회에서 생존할 기본적 구조조차 갖추지 못한 기업이다. 당해 기업이 그렇다면 국가 전체의 경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판단은 경제나 경영에서 비전문가인 법관이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행정부에서 내리면 된다. 만약 어떤 오너가 실형을 살게 됨으로써 기업이 무너지고 그 결과 국가 경제가 심각해진다면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면 된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