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시대에 상수리라는 제도가 있었다. 지방 호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호족 자신이나 자제를 중앙에 인질로 머무르게 하던 제도다. 이와 비슷한 제도가 현대에도 있다는 것을 지난주 삼성 직원으로부터 들었다.

〈시사IN〉 제7호 “나는 삼성과 공범이었다” 기사의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폭로를 본 이 직원은 삼성의 로비 행태에 대해서 제보했다. 검찰 간부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골프 접대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이 직원이 제보한 내용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바로 ‘취직 로비’였다.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제를 삼성 계열사에 취직시켜주는 것으로 로비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세심한 배려는 단순히 취직시켜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계열사 임직원 중 한 명을 그 직원의 ‘멘토’로 붙여줘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삼성계열사에 세 자녀를 취직시킨 한 대법관의 사례를 적나라하게 설명했다. 자식 앞에서는 어떤 부모든 약해진다는 것이다. 상수리 제도보다 한발 앞선 ‘삼수리 제도’라 부를 만했다.

삼성의 지원을 받고 삼성을 음으로 양으로 비호하는 언론인, 정치인, 관료를 통틀어 ‘삼성 장학생’으로 불렀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로비의 백태를 밝히면서 이들을 장학생이 아닌 다른 말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삼빠’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격하해서 불렀던 ‘노빠’처럼 이들을 ‘삼빠’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이 부탁한 것인지, 아니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챙기는 것인지, 요즘 ‘삼빠’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특히 경제지의 ‘삼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 경제지에서는 “자기 침실과 욕실에 CCTV를 설치할 용기가 없다면 진실을 모조리 다 밝히라고 떠벌리길 삼가야 한다”라고 비난했다. 같은 날 다른 경제지에서는 “신뢰와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인 배신은 본인에게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한 경제지 편집국장은 “그의 얼굴 위로 헤어지자마자 과거 사랑한 남자들의 치부를 온 세상에 까발리고 있는 어느 여자 연예인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왜 그럴까요”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삼빠’가 국회에도 많은 모양이다. 신임 임채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김 변호사를 증인으로 부르는 것이 무산되었다. 증인 신청을 주장했던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교섭단체인 한나라당과 민주신당 양당 간사와 의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저쪽에서 하면 우리가 거부할 리 없다’는 식으로 핑퐁 게임을 하다 결국 증인 채택을 뭉개버렸다”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삼성 비자금 로비에 대한 특검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