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최명윤 교수(위 가운데)는 2005년 3월 ‘물고기와 아이’가 가짜 이중섭 그림이라는 감정 결과를 최초로 발표했다.
모두들 그 양에 놀랐다. 2800여 점이 전부 위작이었다니.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중섭, 박수근 위작 논란’은, 검찰이 지난 2007년 10월16일에 2800여 점이 전부 가짜라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2005년 3월,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물고기와 아이’를 ‘가짜 이중섭 그림’이라고 발표한 지 32개월 만이다. 그 그림이 ‘위작’이라고 감정 결과를 최초로 발표했던 최명윤 교수(60·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재보존관리학)에게도 기나긴 날들이었다. 무혐의로 끝났지만 감정 결과를 놓고 고소까지 당했으니.

최 교수는 위작임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미술 과학’에 세 종류가 있다고 본다. 그림을 보는 안목(경험과학), 미술사와 작가에 대한 자료 수집과 이해(인문과학), 자연과학적 분석 방법. 그 중에서도 경험과학과 인문과학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연과학이 그림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그림(물고기와 아이)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다. 자신의 오랜 공부 경험으로 볼 때, 그 그림의 표현 수준은 이중섭의 그것이 아니었다. “저 정도 그림을 이중섭 선생의 그림이라고 하다니. 선생에 대한 모욕 같았다.” 하지만 법정에서 진실을 가려야 한다니,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방법’을 최대한 동원해 입증에 나섰다.

2800여 장을 전부 디지털과 필름으로 데이터화했다. 그리고 그림에 사용된 물감별로, 종이 재질 별로 그림을 분류했다. 그 다음에 도상 분석과 기기 분석을 했다. 서명을 일일이 확인해 비교했다. 그림을 그린 연도는 10여 년 차이가 나는데도, 서명이 너무나 정확히 겹쳤다. “마치 서명종이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다가 그림 그릴 때마다 그대로 베낀 것처럼.” 그 다음 ‘실체 현미경’으로 서명을 접사해 20배로 확대했다. 그렇게 하면 펜 하나로 쓴 것인지, 이중으로 쓴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측사광을 글씨에 비춘다. 위작은 먹지와 연필로 서명을 덧쓰는 경우가 많다. 먹지와 흑연(연필)은 빛 반사를 달리 하기 때문에 꺼멓거나 희게 나온다. 이런 방법을 통해 이중으로 글씨를 쓴 것이 드러났다.

결정적 증거는 물감이었다. X선 형광분석기를 이용해(기기 분석적 방법) 물감에 ‘산화티탄피복운모’(안료명)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안료는 1980년대 이후에나 개발된 것이다. 이중섭 화백은 1956년에 사망했는데, 그의 그림에 사용된 물감은 1980년대 이후에나 볼 수 있는 물감이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평생 미술 재료와 복원, 보존에 힘써온 열정과 노하우가 빛을 발한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 드문 보존과학 전문가이다. 어려서부터 미술 재료를 장난감 삼아 놀았다. 그의 부친 고 최영소씨가 광복 후 처음으로 명동에서 미술재료상(명미당)을 열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스케치북을 써도 아버지의 재료상을 통해 판매된 것이라고 할 정도로” 미술계에서 유명한 곳이었다. 영어를 전혀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최 교수는 가게에서 심부름을 했다. 그러고서 홍익대 미대에 들어갔더니, 학교에서 색깔 원명을 제일 잘 알 정도가 되었다.

프랑스 유학하고, 생물학·화학 ‘과외’받아

그의 말대로라면, “미대에 입학해서는 옆길로 빠졌다”. 미술재료상에서 화가들의 그림이 찢어지거나 훼손되면 고쳐준 경험이 쌓여 수준급이 되었는데, 그래서 아예 복원 전문가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983년 프랑스로 복원 기술을 배우러 유학갔다. 3년 동안 복원 기술을 배우고 와서 국내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국적 보존 과학’을 연구했다. 사정이 많이 달랐다. 외국에서는 미술대학에서 재료학을 비중 있게 공부하고, 물감 등을 변형하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굳는 속도를 빨리 하게 하기 위해 유화 물감의 기름 양을 조절했다. 또 캔버스 구조도 각국의 기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복원 방법을 적절하게 조정해줘야 한다.

미술품이 훼손되었다면 그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고칠 수 있으니까. 그러자니 ‘미대 출신’인 그가 생물학, 화학을 공부해야 했다. 곰팡이, 진, 균의 성질을 알아야 오랫동안 보존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니까. 화학을 배우기 위해 화학 박사를 가정교사로 두기도 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화학을 공부했다. 이제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들이 찾아와 분석방법을 자문해줄 정도가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1세대 보존과학 전문가이다. 특별한 교육과정도 없고, 교과서도 없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배울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자료 싸움”이라고 했다. “색소 만드는 회사의 카탈로그만 모아놓고 공부해도 언제부터 물감 재질을 생산했는지 알 수 있다. ‘산화티탄피복운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장을 다루는 드라마 〈옥션하우스〉 제작진도 그에게 미술품 복원에 대한 방법을 자문했다. 벽화를 떼는 방법, 물감에 대한 자세한 설명. 조언은 드라마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중섭 위작 파문과 관련해 한 가지 궁금증이 있다. 만약 요즘 물감 말고, ‘산화티탄피복운모’가 없는 옛날 물감을 구해 위작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위작임을 밝혀낼까. “IR기기 분석이라고 있다. 물감은 색소와 반죽 접착제(유기물)로 이루어지는데, 그 접착제의 굳기를 측정하면 된다. 70살 먹은 노인이 20대 피부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옛날 그린 그림의 굳기는 분명히 다르다.” 설명이 줄줄 이어졌다. 검찰이 왜 그에게 수사 협조를 부탁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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