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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하는 자가 세상을 바꾼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좌 ⑥ 사교육 걱정 없는 학교를 그린다-이수광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2009년 05월 19일 화요일 제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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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학교 교사인 이수광씨(전 교감)가 5월12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단에 섰다.
너도나도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말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초·중·고교 400곳을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해 오는 7월부터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민감한 시기, 대안학교이자 사교육 없는 학교로 유명한 이우학교(경기 분당)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수광 전 교감이 2시간 동안 전한 사교육 없는 학교의 진상은 세간이 기대하는 것과 달라도 크게 달랐다.

내게 본래 주어진 강의 제목이 ‘사교육 걱정 없는 학교를 그린다’였는데, ‘학교에 대한 상상력과 현실화 가능성’으로 바꿨다. 언론이나 관료나 ‘사교육 없는 학교’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보다는 학교라는 게 도대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다.

‘사교육 없는 학교’라 할 때 다수가 생각하는 프레임은 이런 것 같다. 첫째, 사교육 욕망을 실현하는 학교. 그러니까 학원 구실을 대신 해주는 학교다. 시골에 가면 이런 학교 많다. 내가 요즘 컨설팅해주는 강원도 한 학교의 경우 정규 수업 외에 특기적성 따위 이름으로 벌이는 보충수업이 한 해 780시간에 이른다. 둘째는 입시 성공의 비법이 있는 학교다. 많은 학부모가 이런 걸 바라는 듯한데 내가 보기에 이런 비법은 없다. 셋째는 자기 주도적 학습기법을 개발·적용하는 학교다. 이건 부분적으로 타당한 얘기라고 본다. 새로운 학습태도를 키워서 사교육을 줄이는 학교는 가능하고 또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교육의 본령과 거리가 있다. 나는 ‘삶’과 ‘배움’의 형식을 전환시키려고 시도하는 학교야말로 사교육 없는 학교의 궁극적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삶을 배우는 것은 관계를 구성하는 일이고, 관계를 구성하는 건 각종 아픔을 견뎌내는 일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관계도 깊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는 자녀가 고통 없이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배움의 퇴행’ 일어나는 학교

오늘날 학교가 처한 위기를 보려면 우리 교육이 놓인 위기부터 살펴볼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의 성공과 출세만을 욕망하는 ‘모유 이데올로기’가 교육 위기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언어’만이 판치는 사회 또한 위기를 부추긴다. 오늘날 교육의 언어는 다 죽어 있다. 입시 경쟁력, 시험, 등수 따위 시장의 언어만 살아 있다. 시장의 언어가 판을 치게 되면 교육이 이상해진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가 쓴 <상식 밖의 경제학>을 보면 의미심장한 실험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는 것은 사회규범과 경제원칙 두 가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사회규범에 따라 작동하던 영역이 경제원칙에 노출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사회규범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해진 퇴원 시간보다 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엄마들에게 벌금을 매기기 시작한 이스라엘 유치원의 예를 보자. 벌금 부과 이후 지각하는 엄마가 더 많아진다.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돈으로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늑장을 부리는 거다. 결국 유치원은 벌금을 없애고 원래 방식대로 회귀한다. 결과는? 지각생 엄마가 더 많아졌다. 이제는 벌금도 없어졌으니까.

댄 애리얼리가 책을 낸 것은 미국 정부가 한창 교육개혁 드라이브를 걸던 시기였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이 한번 시장원리에 노출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 교육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채 ‘일상생활의 입시화’ 과정이 전개되는 중이다. 입시에 대한 관심이 여타 관심을 압도하거나 지배하면서 입시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삶이 재구성되는 현상이 고착되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는 그 단면이다.

이 속에서 학교는 활력 소실, 관계 약화, 신뢰 위기라는 3중 모순에 빠져 있다. 교사와 학생은 더 이상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지 않다. 텍스트를 매개로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이런 체계로 굴러가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퇴행’이 일어난다.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지만 정작 아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내용들은 등한시한 나머지 아이들이 성장 동기를 잃어버리는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학교는 실적주의·물량주의·형식주의·일방주의라는 4가지 작동 원리로 굴러가고 있다. 그 결과 학교 출입구에 명문대·in 서울대(서울에 있는 대학)·지방대 순서로 대학 합격자 명단이 나붙는 ‘야만’이 벌어져도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이 속에서 아이들은 ‘돈 밝히는 아이들’로 자라난다. 2007년 일본의 한 연구소가 한국·미국·일본·중국 4개국 청소년에게 ‘젊었을 때 꼭 해두고 싶은 일’을 물었는데 한국 청소년이 가장 많이 한 대답이 ‘돈을 벌고 싶다’였다. ‘어떤 일에도 낙담하지 않는 근성을 키우고 싶다’는 중국, ‘남과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미국 청소년과 너무 달랐다. 노쇠해도 이런 노쇠함이 없다.

나는 요즘 아이들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눈다(62쪽 그림 참조). 지적 호기심을 x축, 제도적 학습능력(시험능력)을 y축으로 놓고 분류해본 건데 첫 번째가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유형이다. 지적 호기심도 많고 시험문제도 잘 풀어서 모두가 부러워한다. 두 번째는 똑똑이 유형이다. 지적 호기심은 낮지만 문제는 잘 푼다. 많은 학생이 이 영역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이게 공부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제일 안된 것이 세 번째 잠돌이 유형이다. 지적 호기심도 낮고 문제도 못 풀고 그저 허리만 아프다. 엎드려 자느라(웃음). 이들 세 가지 유형은 현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똑똑이는 순응하고 잠돌이는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예 관심이 없다. 엄친아는 체제에 이미 동의를 한 상태다. 반면 네 번째 유형인 탈선아는 시험은 못 보지만 지적 호기심이 높아 현 체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런 친구들이 우리 사회의 기둥이 돼야 그나마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키팅 선생님이 “시는 마음으로 읽는 거야. 책을 찢어버려” 하고 말하니까 자를 댄 채 책을 찢는 아이가 나온다. 그런 아이가 똑똑이다. 엄친아는 영악하니까 아마도 내용을 암기한 다음 책을 찢을 거고, 잠돌이는 책이 없거나 베고 자고 있겠지(웃음). 그렇지만 탈선아는 책을 통째로 버릴 거다. 이런 아이가 많아져야 하는데 자 대고 책 찢는 아이가 많은 게 한국 교육의 비극이다.

자기 자녀를 미래형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정말로 중요한 게 성장 동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방식대로 정리하자면, 성장은 세상에 내가 홀로인 존재, 고독한 존재임을 깨닫는 거다. 누구로부터도 도망갈 수 있지만 정작 나의 실존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고, 따라서 내가 책임져야 할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것이 성장이다. 세상에 맞서 이런 성장 동기를 배워갈 의지와 지적 호기심이 있는 아이들은 어디를 가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부모들 생각은? 최근 한겨레신문에 실린 ‘강남 엄마들의 생생토크’를 보니 이 엄마들이 생각하는 핵심은 이거였다. ‘머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학교 믿지 마라. 제대로 된 사교육을 받으면 대학 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보면 결정적 결함이 생긴다. 아이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여러 변수가 있는데 그중 사교육과 입시 변수만 보게 되면서 의사결정에 환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환각이 자칫하면 아이 삶이나 사회에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나는 미래 시대를 살아갈 성장 세대에 필요한 핵심 능력은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먼저 질문 능력. 질문 능력이 있는 아이는 하나를 알게 되면 차원을 뛰어넘는다. 물리에서 배운 걸로 철학에서 질문을 한다. 두 번째는 관계 능력이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일상의 대상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이다. 질문 능력과 관계 능력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질문 능력이 출중하면 관계 능력이 뛰어나고, 관계 능력이 있으면 질문이 솟아난다. 최초 우주인을 선발할 때 후보였던 유리 가가린은 우주선에 오르면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탑승했다고 한다. “우주인이 되려는 사람으로서 이걸 만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라면서. 이런 관계 능력이 있었기에 가가린이 최초 우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거다.

세 번째는 기획 능력이다. 뭔가를 기획하고 실행한 경험이 많은 아이일수록 실패 경험도 많다. IBM은 사원 뽑을 때 실패 경험이 많은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실패가 자산임을 아는 거다. 네 번째는 공공(公共)하는 능력, 다시 말해서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능력이다. 교육의 공공성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는데, 공공하는 과정 없이는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곧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고 노력해야만 교육의 공공성이 살아날 수 있다. 이우학교가 꿈꾸는 것도 ‘공공하는 학교’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학교를 운영하는 데 나라가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렇게 길러낸 아이들이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은 희박하다. 비용은 사회화되어 있는데 이익은 사사화되어 있는 셈이다.

성장 동기 키워주는 게 훌륭한 부모

자녀를 성장동기를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아이 만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부모가 지닌 자본이 세 가지라고 한다. 먼저 경제적 자본. 이것만으로는 공부를 잘 시킬 수 없다. 두 번째가 인간 자본이다. 부모가 평소 사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신문 읽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책을 읽느냐 따위 부모의 인지 형식이나 인지 환경을 인간 자본이라 하는데, 인간 자본은 부모의 경제력보다 아이에게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세 번째가 사회적 자본이다. 부모의 가치관, 아이와의 친밀도 등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무조건 곁에 붙어 있다고 친밀한 게 아니다. 내가 너를 믿고 지지한다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자녀를 미래형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이처럼 부모가 건강한 인지 환경과 가치 체계를 갖는 것, 아이가 지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우학교의 교육 신념이 “탈선하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라는 것이다. 주류적 삶의 형식에 도전할 수 있는 탈선아가 세상을 바꾼다. 이우학교가 정답이라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성장동기를 자극하는 학교가 진짜 학교이고, 성장동기를 키워주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이다. 남들 가는 길을 거꾸로 가려는 안목과 용기가 부모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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