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이회창씨(맨 왼쪽)와이명박 후보(왼쪽)가 박근혜 전 대표(가운데)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지만, 박 전 대표는 당분간 중립을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회창씨의 출마는 이명박 후보에게 대선 최대의 복병이었다. 출마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단숨에 지지율 20%를 넘긴 이씨의 존재는 이 후보에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 참혹한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이 후보의 유일한 열쇠는 박근혜 전 대표다. 박 전 대표의 지지 여부가 대선 향배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되어버린 박 전 대표를 붙들기 위해 이 후보는 최선을 다했다. 걸림돌이 되는 이재오 최고위원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사퇴시켰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의 사퇴는 상황을 호전시키는데 전혀 지렛대가 되지 못했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당 분열의 원흉이라며 이방호 사무총장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둘의 사퇴는 단지 협상 테이블에 앉는 전제조건일 뿐이었다.

당권과 대권의 분리, 그래서 궁극적으로 차차기 주자의 고지를 선점하는 것, 그것이 박 전 대표 측의 목표였다. 들어주기에는 너무나 무리한 요구였다. 캠프 안에서도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한 캠프 관계자는 “박 전 대표 측에서 화합형 선대위를 재구성하라고 한다. 선거 치르지 말자는 얘기 아닌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명박 캠프는 흔들렸다. 페이스가 흔들리면서 악수(惡手)도 계속되었다. 박 전 대표 참모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참모였던 유승민 의원은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퇴하며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다른 조건을 제시하지 말고 협력하길 바란다’고 주장한 것을 걸고 넘어졌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는 이재오 의원의 사퇴를 무슨 조건으로 내세운 적이 없으니 또 다른 조건을 제시할 이유도 없다”라며 그의 사퇴가 진정성이 없다고 공격했다.

"박근혜 중립 지켜야" 46.8%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서 중재를 하곤 했던 강재섭 대표도 악수를 두었다. 강 대표는 11월9일 대전시당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장과 당협운영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당원들도 이제 이명박 후보만 욕하지 말고 박 전 대표를 나무라야 한다. 박 전 대표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똑바로 하도록 건의하는 시도당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해 박 전 대표를 향한 포문을 열었다.

이명박 후보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다. ‘만약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고 범여권 단일 후보로 정동영, 한나라당 후보로 이명박, 민주노동당 후보로 권영길, 무소속으로 이회창씨가 출마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나’라는 물음에 37.5%가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32.5%가 이회창 후보를 선택했다.

둘의 차이는 고작 5%포인트, 오차범위 이내였다. 박근혜 변수가 없을 때 차이가 16.9%(이명박 39.9%, 이회창 23%)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5% 포인트 차이는 다른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로 이번 대선에서 박 전 대표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하나의 시뮬레이션을 더하면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김경준씨의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이명박 후보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에도 이명박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나? 아니면 지지 후보를 다른 후보로 바꾸겠나? 바꾼다면 어떤 후보를 지지하겠나?’라는 질문에 27.4%가 지지 후보를 바꾸고 그 중 54%가 이회창 지지로 돌아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환산하면 이명박 후보는 이전 지지율(37.5%)에서 10.2%가 빠진 27.3%를 기록하게 된다. 이회창 후보는 5.5%를 더 얻어 38%를 기록하게 된다. 10% 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이회창 후보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이명박 후보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후보는 10.9% 빠진 28.8%를 기록하고 이회창 후보는 5.9% 증가한 28.9%를 기록하게 된다.

BBK 주가 조작은 검찰 수사 결과에 달린 것이고, 결국 관건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 여부다. 다행히 여론은 이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31.4%가 ‘이명박 후보를 도와야 한다’고 답한 반면 14.6%만이 ‘이회창 후보를 도와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응답이 46.8%나 나왔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이명박 후보를 돕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이재오 최고위원 사퇴 후에도 박 전 대표가 명확한 견해 표명을 하지 않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지 여부와 관련해서 주목할 곳은 충청권의 표심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를 지지할 경우 대전·충남·충북 지역의 지지율이 47.3%까지 수직 상승한다. 충청권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이명박 후보의 개입이 확인될 경우 40.0%가 지지 후보를 바꾸겠다고 응답한 곳으로 이 후보의 지지세가 허약하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대전·충남·북 지역에서 위험신호가 나오고 있다. 대전일보를 비롯한 전국 9개 지역 대표 일간지로 구성된 한국지방신문협회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R&R)가 11월7일 이회창 전 총재 출마 회견 직후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도 대전·충청 지역에서 이 전 총재가 31.8%로 이 후보(31.3%)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회창씨가 대전·충청의 맹주가 되는 것은 이명박 후보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황이다. 이미 이 후보는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선출된 이후 호남 지지세가 10% 안팎으로 빠진 뼈아픈 경험을 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이 후보 측은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심 대표는 이회창 후보에게 4자 연대(고건·박근혜 포함)를 제안한 상황이지만 이 후보에게도 여지를 남겨 놓았었다. 심 대표의 측근은 “내년 총선을 앞둔 현역 의원들 처지에서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이명박 후보 측과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2월19일 대선까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남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이회창씨의 출마로 모든 것이 엉켜 있다. 정책은 뒷전이고, 이제 더 이상 경제도 통일도 이슈가 아니다. 문제는 박근혜다. 누가 그녀의 마음을 빼앗을까. 이것이 최대의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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