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1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오늘의 교육 현실은 밤하늘에 보이는 별빛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항성이 오래전 쏘아 올린 과거의 빛이 지금 우리 눈에 도달하는 것처럼, 지금 경험하고 있는 교육 현장의 많은 문제와 모순들은 짧게는 수년 전, 길게는 수십 수백 년 전 기획되고 전개된 여러 교육정책들에 기인한다. 당장 입시에서의 수능 비중을 조정한다고 하루아침에 교육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며, 내일 코딩 교육과 인공지능 교육을 도입한다고 모레 제4차 산업혁명의 미래형 인재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오늘의 교육은 오랜 과거의 유산이고 먼 미래의 교육은 바로 오늘 우리가 만들어낼 결과물이다. 그때그때 바로 정산되지 않는 교육 비용과 투자 결과의 특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일시에 해결하기 힘든 오늘의 문제에 핏대를 세우고 지금 변화해야만 바꿔낼 수 있는 미래의 문제에 둔감하게 반응한다.

별빛과도 같던 교육 현장에 지난해 돌발 변수가 하나 찾아왔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신종 감염병은 다른 변수들과 달리 매우 즉각적으로 오늘의 교육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유은혜 교육부 장관(59)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상 최초, 유례없는, 초유의 ‘신종’ 교육 과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과거의 유산으로 이어져온 고질적인 교육 병폐와도 계속 싸워야 했다. 더불어 코로나19 이전과는 같지 않고 또한 같지 말아야 할 미래 교육의 토대를 쌓을 책무도 맡았다.

코로나19를 맞은 대한민국 교육은 즉각 변화해야 했다. 감염병 시국이 끝난다 하더라도 그 영향은 즉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향후 수십, 수백 년간 미래 세대에게 별빛처럼 남을 것이다. 그 빛을 쏘아 올리는 현장의 한가운데 선 유은혜 장관에게 2020년 교육의 기억을 회고해줄 것을 청했다. ‘교육 대전환’의 해가 될 2021년과 그 이후 나타날 미래 교육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는 1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림판과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진행되었다.

딱 1년 전으로 돌아가볼게요. 대한민국 교육 책임자로서 만난 코로나19의 첫 기억이 궁금합니다.

2020년 1월20일이 기억납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죠. 그날 오후 2시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본부장(현 질병관리청장)이 첫 긴급 브리핑을 했어요. 저도 같은 시간 브리핑을 했어요.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혁신사업이라는, 고등교육 부문 중요한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였어요. 브리핑을 마치고 청사 사무실에 들어와보니, 감염병 위기경보가 ‘관심’에서 ‘주의’로 올라갔더군요. 그때 정부 여러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교육부 안에서도 처음으로 대책단이 꾸려졌어요. 설 연휴를 지나 2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장관들이 직접 대책본부장을 맡아 각 부처를 지휘하게 됐고요. 저는 당장 3월2일 개학이 다가오면서 고민이 시작됐어요. ‘학교가 정상적으로 개학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죠.

세 차례 개학을 연기하던 시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2월23일 첫 번째 개학 연기 브리핑을 했어요.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듣고 상황을 종합해보건대 3월2일 개학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개학 일주일 연기를 발표하면서, 1~2주 연기하면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게 사실이에요. 코로나19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갈지 그때는 잘 몰랐으니까요. 두 번째 개학 연기를 발표하면서는 어느 정도 실감이 났어요. 팬데믹이 선언된 상태였고, 이제 당장 다음 주 학교를 가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이 위기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들이 안전하면서도 배움과 학습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개학 결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3월 초 개학을 연기하면서 온라인 개학이 가능할지 여부를 두고 2주간 의견을 청취했는데 교육 현장에선 반대가 많았어요. 아이들이 배움을 이어가야 한다는 대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있었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온라인 개학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설득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쨌든 IT 강국이라는 점도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토대였어요. 전국적으로 전 학생들에게 원격 수업을 제공할 수 있는 IT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지금 돌아봐도 완벽하지 않았고 현장의 어려움이 있었던 걸 이해하지만, 당시 온라인으로라도 학습을 이어가도록 결정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공백이 장기화되었다면 지금 더 많은 혼란을 겪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시사IN 조남진2020년 6월2일 인천의 한 가정에서 초등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과정들 속에서 욕도 많이 먹었는데요.

네, 많이 먹었죠(웃음). 네가 와서 수업해라, 그게 말만 한다고 되는 거냐…. 실제 선생님들이 고생 많이 하셨어요. 3월31일 온라인 개학 발표를 하고 4월9일 고3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했으니 채 2주가 안 되는 시간이 주어진 거죠. 하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준비할 게 많았어요. 3만명 정도만 접속이 가능한 EBS 서버를 일일 300만명을 감당할 수 있게 확장해야 했어요. 온라인 개학 2주 차까지 비상상황실을 운영했는데, 처음에는 서버가 다운되고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좌불안석이었어요. EBS와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는 물론이고 민간기업이 합류해서 기술적으로 조치를 취해주며 힘을 모았어요. 어떤 학교는 인터넷망이 연결 안 된 곳도 있는 등 천차만별이었는데,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빠르게 와이파이 에그라도 설치했고요. 스마트 기기가 없는 학생들을 조사해서 보급하고, 통계청에서 1만 대를 빌려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팬데믹 상황에서 아이들을 위해 아무 대가 없이 모든 부처, 기관, 민간이 헌신적으로 노력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동했습니다.

교육 현장의 교직원, 학생, 학부모들의 ‘맨땅에 헤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선생님들께 가장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어요. 이미 디지털 교과서, ICT 수업 등을 연구하고 활용해보신 교사들이 계셨지만 사실 소수였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2주를 지나면서 많은 선생님들의 저력이 드러났어요. 직접 교육 콘텐츠를 생산하고 교과협의회를 통해 공유하면서 젊은 선생님과 연배 있는 선생님들 간 수업 운용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고…. 학부모와 학생들도 불편하고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학교와 교사를 믿고 잘 따라와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도전의 연속, 숨찬 하루하루였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등교수업 재개는 또 하나의 난제였습니다.

5월 초 등교수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태원 클럽발 감염이 터지면서 또 일주일 연기가 됐어요. 그때도 제기됐던 문제가, ‘이렇게 확산이 계속되는데 왜 꼭 등교를 해야 하나?’였어요. 등교 재개를 중단해달라는 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서 제가 ‘왜 학교를 보내야 하는지’ 답변하기도 했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원격수업과 등교 공백이 길어지면, 학습도 학습이지만 아이들의 사회성과 심리적·정서적 성장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특히 저학년 같은 경우 그런 성장을 하려면 최소한의 대인관계가 형 성돼야 하는데, 몇 달 동안 그 기회가 원천 차단되고 고립되는 생활이 이어졌잖아요.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근본적 의문을 전 국민이 갖게 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학교에서 일어났던 많은 것들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됐죠.

2학기의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수능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무사히 수능을 치르는 일이 가능하리라 보셨나요?

원래 학사일정상 11월19일이 수능일이었는데 개학이 연기되면서 12월3일로 2주 미뤄야 했어요. 수능이 생긴 이래 12월에 시험을 보는 건 처음이었죠. 감염이 확산될 때마다 수능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는데, 8월부터 담당 부서 직원들과 수능 대책을 준비하며 원칙들을 세웠어요. ‘자가격리자든 확진자든 무조건 시험을 칠 수 있게 똑같이 기회를 제공한다. 수능을 통해 감염이 확산되면 안 된다. 그리고 12월3일에는 반드시 수능을 본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감당하고 책임진다.’ 만약 12월3일 수능을 보지 않으면, 그 상황이 초래할 교육 현장의 위기와 혼란이 더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50만 가까운 아이들의 향후 일정이 다 뒤범벅돼요. 군대 갈 사람도 있고, 취직할 사람도 있고, 사회적 경로들이 다 계획돼 있을 텐데…. 9월 학기제도 부정적으로 봤던 이유가,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리 정책적 변화를 계획했고 예상했던 대로 진행하는 거라면 논의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봐요. 그렇지만 감염병 상황과 같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9월 학기제 같은 변화를 도입하면 현장에 굉장히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수능 역시 예상했던 대로 치르지 못하면 그 불안한 상황 때문에 불러올 파장이 아이들에게 훨씬 더 불안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고요.

ⓒ시사IN 신선영2020년 12월3일 코로나19 확진 수험생을 위한 임시 고사장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고 있다. 사진은 폐쇄회로 화면.

다행히 수능을 무사히 치렀습니다. 쉽지 않은 미션이었는데요.

기도하는 심정으로 수능을 준비했어요. 질병청과 협의하면서 모든 응시자들이 병원에서든 생활치료센터에서든 수능을 치를 수 있게 공간과 인력을 마련했어요. 수능 전날까지 수험생과 감독관이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검사받을 수 있게 저녁 10시까지 보건소를 열어두고, 보건환경연구원으로 검체를 조금이라도 빨리 옮기기 위해 소방청과 협의해 수송 차량도 배치했고요. 12월3일 당일 새벽 5시까지 검체를 확인하고 확진된 수험생을 아침에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해서 시험을 볼 수 있게 했어요. 원래 한 시험실에 28명씩 배치하던 수능시험 인원을 24명 이하로 줄였고, 그에 따라 시험실을 3만 개 넘게 마련했어요. 감독관 수도 늘렸고요. 감염병 전문가들과 몇 차례 회의를 열고 현장을 점검하고, 앞뒤 거리두기가 충분히 안 된다는 지적에 따라 가림막을 설치하기로 하니 또 난리가 났어요. 시험지를 앞뒤로 움직여야 하는데 어떡하냐고요. 그래서 가림막 아래쪽을 뚫고 제가 책상과 가림막을 갖다놓고 직접 샘플 시험지를 넘겨보며 확인해보기도 했어요. 나중에 집계해보니 최종 확진 수험생이 41명, 자가격리 수험생이 456명이었어요. 이후 2주 동안 모니터링을 했어요. 혹시라도 수능을 통한 감염이 발생했는지 역추적을 했죠. 다행히 수능을 통한 감염 확산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았는데, 이런 의문도 듭니다. 왜 그렇게까지 수능을 치러야 할까요? 입시 위주 우리 교육 현실이 사상 초유의 팬데믹 속에서도 여전히 굴러가는 모습이라며 씁쓸해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대입 경쟁교육 시스템을 비판할 수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교육제도에 대한 모색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리 팬데믹 상황일지라도, 이미 약속돼 있고 사회적·제도적으로 정착돼 있는 일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정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학입시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진학이든 다른 진로든 사회에 나가려는 첫발을 내딛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불확실성이 큰 감염병 상황일지라도, 50만명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 수능이라는 절차만은 안전하게 잘 관리해서 예상했던 대로 제공하는 것이 교육부로서도 정부 전체로서도 신뢰받을 수 있는 일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공평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국가의 책임일 텐데요, 원격수업에서 발생하는 교육격차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핵심적 숙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고요. 집이 제2의 교실이 된 상황에서 편안하게 수업받을 수 있는 학생과 편하게 앉아 있을 곳조차 없는 학생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에요. 각 시도교육청에서 지난해 8월 1학기를 보내고 나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교육격차 문제였어요. 우선, 꼭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대면 수업을 최대한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수업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기초학력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학교에 나와서 맞춤형으로 일대일 지도를 받을 수 있게끔 교육청별로 멘토링 사업, 전담교사제 등 대안을 마련했어요. 좋은 사례를 발굴해서 공유해나가려고 합니다. 아직 완전히 만족스럽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지만, 2021년 학기를 시작하면서 훨씬 더 보완하고 추가 지원해나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당장의 교육격차도 걱정이지만 이 시기 학령기를 지난 아이들이 장기적으로 짊어지게 될 학습과 공동체 경험 공백의 비용이 두렵습니다.

등교수업 재개를 결정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에요. 해외 사례를 봐도 그렇고 전문가들도 특히 저학년의 경우 하루빨리 대면 수업을 통해 사회관계와 또래 관계를 맺을 환경을 돌려줘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 삶을 꾸리는 토양을 만들어가는 단계에서 그 경험이 멈추면 길게 겪게 되는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해요. 저학년은 돌봄 문제도 있었지만 사실 그 같은 이유가 컸어요. 고3과 함께 저학년을 먼저 등교시킨다고 하니 반대가 엄청났어요. 그런데 등교시켜보면 또 어린 학생일수록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마스크 쓰기 등 방역 수칙도 잘 지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동시에 학습과 일상이 덜 무너지고 이어가게 해줄 수 있을까가 저에게 계속되는 고민이에요. 무엇 하나 선택해 이게 우선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모범답안이 있으면 그걸 따라가면 쉬울 텐데 그런 것도 없고요. 끊임없이 협의하고 창의적 방법을 찾아내고 공유하면서, ‘교육 현장에 뭘 더 지원해줄 수 있지?’ 하고 물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주 먼 과거 같지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볼게요. 2019년 11월 고교체계 개편,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고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자사고와 특목고들은 애초 설립 취지와 달리 대입 경쟁을 준비하는 곳으로 변질됐어요. 일반계 고등학교는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기 진로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하거나 지원받을 기회를 누리지 못했고요. 지금은 입시 준비를 고등학교 때 시작하는 게 아니라 초등 3~4학년이 되면 어느 외고, 특목고를 갈 거라고 목표를 세워놓고 선행학습을 한다고 하잖아요. 국회 교육위원회에 있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일반계 고등학교의 역량을 높일 수 있을까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을 고교 유형으로 구분 지어 대입 경쟁 과정에서 낙인찍는 고교체계는 반드시 개편이 필요하다 여겼습니다.

ⓒ연합뉴스2020년 1월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주최로 열린 외고, 자사고, 국제고 폐지 반대 정책토론회.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왼쪽)가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고교 하향평준화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나왔는데요.

2025년에 모든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반계고로 전환하겠다고 시기를 적시한 이유가 있어요. 2020년에는 마이스터고, 2022년은 특성화고, 2025년에는 모든 일반계고에 고교학점제 도입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거든요. 그걸 위해 ‘2022 교육과정’ 개정을 준비하고 있고요. 올해 교육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2022 교육과정을 국민과 함께 만드는 거예요. 현장 교사, 외부 전문가는 물론이고 특히 학생들의 의견도 수렴할 예정이에요. 뭘 배우고 싶고 왜 이걸 배우고 싶은지 아이들의 의견을 교육과정 개정에 반영한 적이 이제껏 한 번도 없었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국민과 함께 만든 개정 교육과정을 접목해서 2025년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기초 과목 등 공통 수업이 물론 있지만, 아이들에 따라 자기가 듣고 싶은 걸 선택할 수 있어요. 일정한 지역을 묶어서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하고, 원격수업 같은 방식도 활용할 수 있고요. 거리가 먼 지역, 혹은 해외라도 좋은 강사나 전문가를 연결해서 화상으로 수업을 듣는 거죠. 고교학점제의 우려 중 하나가, 학교마다 거리가 먼 지방의 경우 공동 수업을 개설하는 문제 등에서 도시와 비교해 격차가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거였는데, 이번에 원격수업을 경험하면서 걱정이 많이 사라졌어요. 어느 학교를 방문했는데 원격으로 독일 대사관을 연결해서 쌍방향 대화를 하는 독일어 수업을 하더라고요. 또한 일반계고 학생들 중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특성화고와 연계해 진로교육을 받을 수도 있어요. 진로 선택의 다양성을 넓혀주는 과정을 공교육에서 경험하게 해줘야 해요. 이렇게 2025년 전면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자사고, 특목고가 따로 필요 없어진다고 저는 봐요. 그곳들도 고교학점제 취지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의 한 파트로서 다른 학교들과 다를 바 없이 기능하는 거죠.

그에 따라 대입제도도 바뀌게 되겠네요.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을 반영하는 대입이 돼야 합니다. 이미 수능을 포함해 새로운 대입제도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국가교육회의나 교육감협의회 등을 통해서 교육의 변화와 전환의 의미를 담는 대입제도를 논의해나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갈지 큰 틀에 대해선 올해 말 정도에는 국민에게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입장에서, 교육제도 변화만으로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지는 않나요? 이를테면 서열화된 노동시장 같은 교육 영역 밖 현실이 변화하지 않는 한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꾼들 도돌이표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저는 큰 틀에서 이미 사회가 바뀌고 있다고 봐요. 대한민국 대전환이라고 하는, 일자리를 포함한 전체 산업구조 체계의 변화가 지금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그간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도 이게 뭔지 체감이 어려웠는데, 이번 팬데믹을 겪으면서 훨씬 더 와닿게 된 것 같아요. 언택트라고 하는 지금의 변화가 감염병 상황이 아니었으면 정말 상상도 못하는 거였잖아요. 감염병이 끝난다고 해서 완전히 다 과거로 돌아가진 않을 거예요. 경제 시스템, 산업구조, 일상생활과 문화 모두 다양하게 바뀌고 있어요. 정부에서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대전환을 이야기하는 것도 지금을 과거 산업화 시대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계로 급속하게 전환하는 시기로 보는 거죠. 이 변화의 시기 교육은 또 어떻게 전환해야 할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이고요.

ⓒ연합뉴스공간 혁신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서울용암초등학교의 숲속공방. 목구조 공간으로 목공과 도예 수업이 이루어진다.

한국판 뉴딜의 10대 과제 중 하나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라는 교육사업이 포함됐는데 선뜻 와닿지 않습니다. 그냥 토건사업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공간이 아이를 바꿔요. 아이들이 제일 많은 시간을 머무르는 곳이 학교인데, 모두가 네모반듯한 교실 안에서 칠판만 바라보는 획일적 공간 속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이 키워지길 바라는 건 모순이죠. 편안하고 자유롭고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학교 공간을 바꾸는 것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의 취지예요. 그전처럼 예산을 투입해서 뚝딱 시설공사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 공간을 실제 사용할 구성원들, 학생과 교사가 직접 설계 과정에서부터 참여해요. 화장실을 어떤 모습으로 바꿀 건지부터 벽면 색을 뭘로 칠하냐까지 함께 토론하고 때론 논쟁해서 싸우기도 하는, 이런 과정 속에서 문제 해결력과 협업 능력을 키우는 민주시민교육까지 이뤄낼 수 있는 구상이죠.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날도 적은데 학교 공간 혁신이 무슨 의미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요.

코로나19 이전부터 공간 혁신 사업을 지역 단위로 일부 도입해왔는데, 2020년 팬데믹을 맞아서 보니 유연하고 탄력적인 학사운영 자체가 공간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학교 공간이 유연해지면 여러 규모와 형태의 수업이 가능해지니까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비가 더 잘 돼요. 고교학점제 같은 다양한 미래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라도 학교 공간이 바뀌어야 하고요. 더 나아간다면 학교가 아이들이 머무르는 곳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복합시설이 될 수도 있어요. 물론 내진 보강 등 시설 공사도 포함되겠지만 더 방점을 두는 것은 교육과정과 학습 방식의 다양성을 구현해내는 공간 혁신이에요. 몇 년 뒤면 동네 구석구석 서로 다른 모습을 한 개성 있는 학교들이 생길 거예요. 5년간 18조5000억원 예산을 잡고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러 분들이 교육부 장관을 거쳐갔지만, 이 특별한 시기 그 자리를 맡은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 교육부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모든 장관직이 그러하겠지만, 책임이 크고 어려운 자리예요. 교육은 국민적 관심이 크고 모두의 경험이 다르며 특히 갈등과 이견이 많은 분야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올해는 우리 대한민국 교육이 미래 교육으로 전환하는,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교육의 변화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고 봐요. 그 전환을 완성까지는 못해도, 미래 교육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놓은 장관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그렇게 기억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네요.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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