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발생한 돼지독감의 감염 속도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위는 마스크를 쓴 채 시위대와 대치하는 멕시코 경찰이고, 왼쪽은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
돼지독감(Swine Influenza·‘인플루엔자 A형’) 전염 속도가 줄지 않고 있다. 이 속도가 지속되면 한국도 꽤 높은 수준의 경계경보를 발동할 가능성이 높다. 돼지독감과 관련해 아직도 많은 의문이 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왜 젊은이의 사망률이 높은가? 최근 멕시코 보건부 장관은 “주로 면역력이 높은 젊은이들이 돼지독감으로 희생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이번 돼지독감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18년 2000만명에서 최대 1억명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다. 이 스페인독감과 돼지독감의 감염원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아형 H1N1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른쪽 표에서 보듯이 스페인독감 사망자의 연령별 분포를 살펴보면 다른 독감에서는 가장 낮은 사망률을 보이는 젊은 층에서 1% 정도의 높은 사망자 발생 빈도를 보인다. 젊은이의 사망률이 높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의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이 된다. 사이토킨 발작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과다하게 외부의 침입자에 대응할 때 발생하는 질환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외부에서 침입자가 들어오면 우리 몸속의 사이토킨은 일종의 척후병이 되어서 ‘후방’의 T 세포나 마크로파지 같은 ‘방어 경찰’을 불러온다. 일단 이렇게 동원된 방어 경찰은 다시 척후병을 더 불러오는 식으로 병균의 침입에 즉각 대응하는 피드백 시스템이 우리 몸속에 있다.

스페인독감도 그렇고 이번 돼지독감도 이들 독감 바이러스가 이 피드백을 조절하는 매커니즘을 교란할 경우 끝도 없이 척후병과 방어 경찰이 동원되고, 결국 이같이 과도한 동원은 해당 조직과 장기를 손상시킨다. 가령 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체액과 마크로파지가 쌓여 결국 기도를 막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면역 시스템이 가장 왕성한 젊은이가 가장 큰 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왜 멕시코에 사망자가 많나?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23개월 된 어린아이가 돼지독감으로 사망했다. 이제 돼지독감 사망자 발생국이 더 이상 멕시코 한 나라만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휴스턴에서 사망한 어린아이는 얼마 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입국했다. 즉, 멕시코에서 텍사스로 여행을 왔다가 갑자기 독감 증세를 보여 4월13일 휴스턴 병원에 입원했고, 4월27일 사망했다. 따라서 휴스턴 어린아이 사망은 멕시코 사망 통계에 넣는 것이 옳다.

멕시코에서는 이미 사망자가 170명을 넘어섰다. 왜 멕시코 사람들만 바이러스의 ‘집중 공격’을 받는 것일까. 돼지독감 발생 초기에 몇 가지 가설이 등장했다. 가령 유럽인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진출했을 당시 가져온 천연두로 아메리카 인디언만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는 점에 착안해서,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돼지독감에 대한 저항력에 뭔가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천연두의 경우 당시 유럽인은 전체 유럽을 휩쓴 천연두 유행을 거치며 면역이 생긴 반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병원균이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현재 미국과 멕시코에는 그런 면역학적 차이를 만들 장벽이 없으니 가능성이 낮은 가설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미국과 멕시코에서 유행하는 돼지독감이 서로 다른 변종(strain)일지 모른다는 설명이다. 돼지독감 발병 초기에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미국과 멕시코를 포함한 전 세계의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 이미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가설 또한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없다.

다음으로는 다른 국가와 달리 현재 멕시코에서는 돼지독감 말고도 또 다른 병균이 공동 감염을 일으켜 더 높은 치사율을 보인다는 가설이다. 실제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가 멕시

코에서 가져온 샘플로 일단 웬만한 병균은 모두 테스트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세상 병균을 모두 검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니 일단 어느 정도 가능성만 남겨두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멕시코 환자 수 10만명?

마지막으로 좀 더 현실적인 가설은 미국과 멕시코가 서로 다른 기준으로 돼지독감을 감시한다는 설이다. 미국은 최초 돼지독감 발생이  국방부의 ‘글로벌 인플루엔자 감시 프로그램’에 의해 포착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 주둔하는 모든 미군 기지에서, 독감 증세로 군의관을 방문하는 환자에게 정기적으로 샘플을 채취해서 해당 독감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정체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은 이 시스템을 통해 초기에 돼지독감 발병 사실을 알아냈다.

전체 인구 중에 4000만명 정도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라지만 이런 능동적인 감시 시스템을 통해 대규모 전염병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일단 돼지독감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에는 전체 의료계에 돼지독감으로 의심되는 경우를 모두 보고하도록 공지하고 있고, 실제 지금도 발병 사례가 즉각 확인된다.

반면에 멕시코 정부는 환자가 16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돼지독감에 노출되고 실제 감염되었다가 저절로 치유되었는지 그 수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돼지독감에 걸린다고 모두 사망하는 게 아니고, 초기에는 여타 감기나 독감 증상과 하등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별다른 치료 없이 저절로 나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BBC 보도에도 나왔지만, 현재 멕시코 의료 당국은 차분히 질병 통계를 집계하고, 지방이나 지역 병원에 치료제를 공급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살 기운이 있다가 집에서 저절로 회복이 된 환자가 통계에 잡힐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멕시코 전체 인구가 1억1000만명인데 보도되었듯이 환자 1600명 중에 사망자가 170여 명 나온 것이 아니라, 환자였던 사람 수가 10만명이라는 가설이 있다.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치사율은 현재의 10%대가 아니라 0.1%대로 뚝 떨어진다. 참고로 일반 독감의 치사율은 0.1%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는 매년 4만1000명이 넘는다. 만약 환자 수 10만명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번 돼지독감 바이러의 치사율은 일반 독감 바이러스와 비슷한 ‘평범한 수준’일 수도 있다.

돼지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것은 ‘사이토킨 발작’ 탓이다. 위는 멕시코 한 병원의 환자.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다. 환자도 많고 실제 사망자도 170여 명 수준이 아니라 뒤에 ‘0’이 하나 더 붙을 정도로 많은데, 그것을 멕시코 방역 당국이 조작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모든 가설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돼지독감 환자가 계속 늘어날 것인가?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지구 북반구가 이제 5월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상대적으로 돼지독감의 위세는 한풀 꺾일 듯하다. 1918년 스페인독감도 최초 환자 발생은 연초에 보고되었지만, 10월이 되어서야 대규모로 확산되었다. 즉, 5월에서 9월에는 비교적 독감의 전염이 미약했다. 물론 지금 당장 돼지독감의 확산 속도가 감소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환자 수나 사망자 수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돼지독감이 9월에 최초 보고되고 확산 일로에 들어서서 바로 독감 유행 시기와 맞물렸다면,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올해 9월까지는 과학자들이 백신 개발이나 각종 방역 시스템을 준비할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가을까지 적절한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오는 가을에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대대적인 돼지독감 창궐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다행히 현재 백신 개발 회사들은 4~6개월 뒤면 돼지독감에 효과가 있는 백신 생산을 자신한다.
이 글에서 돼지독감의 비교 대상으로 스페인독감을 잡았지만, 그 당시와 현재는 단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점이 많다. 가령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였다. 스페인독감에 걸리기 쉬운 젊은이들이 군대라는 집단에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쉽사리 전염과 감염이 되었고, 기나긴 전쟁 수행으로 지친 각국 정부는 스페인독감에 적절한 방역 조처를 강구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현재는 전 세계 정부가 모두 적절한 방역 조처를 취하는 안정된 시기이다. 또한 타미플루나 리렌자 같은 초기 치료제도 갖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조류독감 ‘덕’에 세계 각 나라가 비교적 넉넉한 항바이러스제를 확보해둔 점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초기 치료제 있고 날씨 더워져 다행

미국은 이미 돼지독감 환자가 발생한 학군에 휴교령을 내렸다. 이 또한 과거의 경험에서 학습한 귀중한 교훈이다. 1918년 스페인독감 때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와 세인트루이스라는 두 도시가 상반된 방역 조처를 취했다. 즉, 필라델피아는 최초 환자 발생 뒤 16일이 지나서야 휴교령을 내리거나 시민의 공공장소 운집을 금지했다. 이유는 미리 준비한 퍼레이드를 취소하기 어려워서였다. 반면에 세인트루이스는 최초 환자 발생 이틀 만에 휴교령과 공공장소를 폐쇄하는 조처를 취했다. 결과는 일주일 최고 사망자 발생률에서 8배 이상 차이가 났다.

4월26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 전염병 경보 수준을 3단계로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을 5단계로 격상하는 데 단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단기적으로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은 분명히 과거 최악의 상황보다 여러 모로 유리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초기 치료제가 있고, 계절적으로 독감이 수그러들 시기이고, 현재 인류의 백신 개발 능력은 4~6개월 안에 적절한 백신을 개발·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과거의 경험에서 학습한 귀중한 교훈들도 잊지 않았다.

기자명 황윤엽 (텍사스 주립대학 의대 연구원·병리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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