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방송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 때 헬기를 띄워 생중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위는 봉하마을의 취재진.
“방 안에서 비서와 대화하거나, 마당을 서성이는 모습이 국민의 알 권리에 속하느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항변이다. 이 항변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진을 친’ 기자들을 향한다. 이해한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찰 대상이 되고 있으니 “최소한의 사생활을 돌려달라”는 호소가 나올 법도 하다. 엄밀히 말해 전직 대통령이 방 안에서 대화하고, 혼자서 마당을 서성이는 게 국민의 알 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언론은 전직 대통령 비리 의혹을 ‘파파라치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그런데 이 파파라치 행진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검찰 소환 때 방송사가 헬기를 띄워 생중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김해에서 서울까지 노 전 대통령이 탄 차를 추적해 방송하겠다는 발상이 우습다. 노 전 대통령이 특급 연예인 정도라도 되나. 이번 사안을 방송사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쯤 되면 뉴스가 아니라 ‘뉴스 쇼’다. 언론은 노무현이라는 상품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정치적 혹은 상업적)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비리 의혹 검증과 규명은 뒷전이다.

검찰 수사는 한 편의 코미디에 가깝다. 검찰은 수사 진행 상황을 매일 브리핑하고 언론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한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발 언론 보도’를 확인한 후 자신의 홈페이지와 측근을 통해 반박한다.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면서 권력형 비리 의혹은 막장 드라마로 성격이 바뀐다. 각본 검찰, 연출 언론, 출연 노무현과 참여정부 인사들이다. “매일매일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는 이런 수사 방식은 처음 봤다”라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검찰에 쓴소리를 던질 정도다.

사실 검찰을 향한 쓴소리는 언론이 먼저 제기했어야 했다. 피의사실 유포금지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비정상적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언론은 눈 딱 감고 막장 드라마의 ‘전국방송화’에만 열을 올린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건가. 언론의 관심은 대중적 호기심 언저리에만 머물러 있다.

막장 드라마 각본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박연차 게이트’는 참여정부 인사들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 인사들의 연루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초대형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은 ‘죽은 권력’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은 주연급으로, ‘살아 있는 권력’ 이명박 정부 인사들은 조연 아니면 엑스트라로 등장시켰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비중 있는 출연을 기대하는 시청자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연출을 담당한 언론은 각본 수정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 ‘한물간 줄’ 알았던 노무현과 참여정부 인사들만으로도 흥행이 잘되는데, 굳이 ‘출연료 많이 드는’ 이명박 정부 인사들까지 주연급으로 등장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한상률 전 국세청장 같은 거물급은 이번 드라마에서 카메오로 출연하는 데 그쳤다.

사건의 핵심은 박연차 회장의 전방위 로비

엄밀히 말해 이번 사건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전방위 로비 의혹이 핵심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관계 ‘실세’들의 이름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다. 언론 역시 박연차 로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지나간 권력은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은 권력일 뿐이다. 박연차 로비 의혹과 관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보도는 언론의 이 같은 천박한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기자명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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