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왁스먼 의원(위)은 조사하고 추궁할 부시 행정부의 비리 의혹 사건이 수두룩하다고 본다.
미국 내 금주령이 맹위를 떨치던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시카고를 거점으로 최대의 악명을 떨친 마피아 두목은 단연 알 카포네다. 이 시절 밀주와 밀수, 매음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음성 소득을 거두던 그를 잡아넣기 위해 미국 재무부 특별단속팀을 이끈 사람은 엘리엇 네스였다. 네스가 이끄는 10명의 특별팀은 알 카포네 측의 회유와 협박, 살인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를 추적해 마침내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회유도 통하지 않던 네스 팀은 당시 많은 언론으로부터 ‘The Untouchables’(불가침의 사람들)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는데, 훗날 당시 상황을 소재로 한 같은 제목의 영화나 TV 시리즈가 여러편 나올 만큼 톡톡히 유명세를 탔다. 특히 이 팀을 이끈 네스는 훗날 금주령이 풀린 뒤에도 클리블랜드 주 정부에 들어가 부패한 경찰을 잡아넣고 불법 도박을 근절하는 데 앞장서면서 그가 가는 곳이면 구린내 나는 공무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

요즘 미국 의회에 ‘엘리엇 네스’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 16선의 베테랑 의원으로 하원 정부감사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헨리 왁스먼 의원(68)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가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이후 올해 초 의회 개원과 함께 정부감사개혁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왁스먼 의원은 부시 행정부 인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일단 왁스먼 위원장이 소환장을 발부하면 행정부 인사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의회 청문회장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이라크 내 사설 경비업체 블랙워터 사의 비리 건으로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청문회에 섰고, 한때 부시 대통령 부럽지 않게 막강한 권한을 떨치던 도널드 럼스펠드 전 장관, 그리고 이라크 초대 행정관을 지낸 폴 브레먼도 왁스먼 위원장이 발부한 소환장에 굴복해 청문회에 서야 했다.

왁스먼 의원이 이끄는 정부감사개혁위원회가 지난 1월 이후 개최한 청문회는 지금껏 30회가 넘는다. 한 달 평균 3회꼴이다. 청문회 하나 여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준비작업을 감안할 때 한 달에 3회를 열 수 있다는 것은 가히 기록이다. 이 위원회가 다루는 청문회 대상도 공무원의 직권남용에서 이라크 재건 계약 비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한마디로 연방정부가 관여하는 모든 부문에 대해 속속들이 단속과 감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청문회를 열 기미를 보이기만 해도 관련 부처는 난리법석을 떨고, 미리 대책을 내놓아 왁스먼 위원장의 예봉을 피하고자 애쓴다. 그렇다고 그가 청문회 개최에만 신경을쓰고 의원 본연의 임무인 입법 활동을 소홀히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의회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많은 법안들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이를테면 청정공기법이나 모든 식품에 영양소를 표시하도록 한 식품안전법, 의료재해보호법 등 굵직한 법들이 그가 발의한 것이다.

왁스먼 위원장이 ‘엘리엇 네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의회 내 최고의 대정부 감찰관 노릇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동료들은 한번 물었다 하면 끝까지 놓지 않는, 일에 대한 그의 끈기와 폭넓은 경험, 그리고 열정을 꼽는다. 특히 그가 하원 보건환경소위원장으로 있던 지난 1994년 미국 내 9대 담배회사 회장들을 줄줄이 청문회에 소환해 결국 이들로 하여금 흡연 피해자들과 무려 2460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에 합의하도록 한 것은 지금도 유명하다.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데이비드 오베이 위원장은 “왁스먼 위원장은 의회 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다년간의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법대를 졸업한 왁스먼은 한때 변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지난 1969년 주의원 생활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닉슨 전 대통령이 연루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한창이던 1975년 연방 하원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올해로 31년째 의정생활을 하고 있다.

‘왁스먼 위원회’ 조사 능력, FBI 능가?

왁스먼 위원장에겐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단단한 실력파 전문요원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지난 1982년부터 브레인 노릇을 해온 전략통 비서실장 필립 실리로를 포함해 1989년부터 몸담아온 참모실장 필 바넷, 그리고 1978년부터 동고동락한 보건정책국장 케런 넬슨은 한 번도 왁스먼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실력파 참모들이다. 여기에 그의 입법 활동을 전문으로 돕고 있는 조사 요원이 25명이나 된다. 부시 행정부 내부의 수상쩍은 활동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는 왁스먼 위원장과 언제든 그의 입법·조사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막강 조사요원이 합치면 안되는 일이 없다.

ⓒReuters=Newsis라이스 국무장관(위)은 이라크 내 사설 경비업체 문제로 ‘왁스먼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단적인 예가 최근 이라크 파견 미국 외교관들의 경호를 전담한 사설 경호업체 블랙워터 사의 비리 건을 속속들이 파헤친 일이다. 지난 9월 이 회사 직원들이 무고한 이라크 시민들에게 발포해 1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커다란 충격을 준 일이 있다 〈시사IN〉 제4호 참조). 이 일이 알려진 직후 왁스먼이 이끄는 하원 정부감사개혁위원회는 블랙워터 사의 비행과 비리를 적나라하게 지적한 수백 쪽에 이르는 조사보고서를 펴내 부시 행정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연방 수사국이 달라붙어도 1년 넘게 걸리는 조사 작업을 이 위원회가 너끈히 해낸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 위원회가 신속히 조사보고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지난 2004년부터 블랙워터 사의 비리를 주시하고 조사한 덕분이었다. 또한 왁스먼이 이끄는 이 위원회는 블랙워터 사를 포함해 이라크 내 사설 경호업체에 대한 비리 조사를 지난 2월부터 공식적으로 개시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왁스먼과 그의 보좌진은 일찌감치 사안의 핵심을 꿰뚫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셈이다. 결국 이 일로 인해 라이스 국무장관이 마지못해 청문회에 끌려나오고, 국무부 감찰관이 블랙워터 사 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했다.

왁스먼 위원장이 이처럼 대정부 감사에 적극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6년 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가을 중간선거 전까지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측이 제대로 대정부 감시 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단적인 예로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청문회를 통해 과거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리를 캐는 데는 무려 140시간을 할애하면서도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이라크 아부그라부 교도소에서의 미군 만행과 관련한 청문회엔 고작 12시간밖에 할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꼽았다. 그만큼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우군인 부시 행정부에 대해 감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 왁스먼 위원장의 소신이다. 따라서 이제 자신이 정부감사개혁위원장을 맡은 만큼 대정부 감시업무를 철저히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극단적인 공화당 인사들은 이처럼 물불안 가리고 부시 행정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왁스먼 위원장을 가리켜 ‘당파적인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수의 공화당 의원들마저 사심없고 철두철미한 그의 의정활동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나 왁스먼 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행정부를 들여다보면 아직도 주렁주렁 낮게 걸려 있는 사과들이 수두룩하다”라면서 앞으로도 부시 행정부의 비리 사건들을 의회 차원에서 추궁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래저래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앞으로 남은 임기 1년 내내 악몽에 시달리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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