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제공11월8일 낮. 파키스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 시민이 무샤라프 독재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다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파키스탄 시민들은 아직 최루가스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 ‘펑, 펑’ 파키스탄 경찰이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가스 농도가 짙지 않아 견딜 만한 수준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파키스탄 시민들은 혼쭐이 났다.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는 연방 재채기를 하며 눈을 뜨지 못한 채 쓰러졌고 뒤편 시민들은 혼비백산 해산하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긴 곤봉을 휘두르며 도망가는 사람들을 마구 때려 군중을 강제 해산시켰다. 중년의 변호사들도 아들뻘 되는 경찰의 매질을 피하지 못했다. 단정히 입은 검은색 양복 어깻 죽지가 찢어졌다.

지난 11월6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국회의사당 앞에서 철조망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시민과 경찰의 대치는 이렇게 잔혹하게 끝났다. 최루가스에 일단 흩어진 시민들은 하루 종일 시내 곳곳을 이동하며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재신임을 반대하는 변호사들이 주동이 되어 시민과 함께 벌인 투쟁이었다. 지난 11월3일 국가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파키스탄은 한 달 전의 미얀마와 비슷하다. 좀더 정확히는 1970년대 한국의 유신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미얀마 정세가 1980년대 전두환 독재 시대와 닮았다면 현재 파키스탄은 박정희 유신 시대와 흡사하다.

군사 정권의 탄압, 박정희 정권과 비슷

ⓒ김영미 제공11월8일 저녁. 파키스탄 국회의사당 앞에서 파키스탄인민당(PPP)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당 지도자의 사진을 흔들어 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선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박정희처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인 대통령으로 두 차례 집권했다. 이번에 3선에 도전하는데 법원이 무사랴프의 대통령 자격 논란을 가리는 헌법 소원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문제가 불거졌다. 무샤라프는 군 병력을 동원해 이프티카르 초드리 대법원장을 강제로 법원 밖으로 끌어냈다. 초드리 대법원장은 다른 판사들, 인권위원회 위원장들과 함께 가택 연금 중이다. 무샤라프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임시헌법령(PCO)을 선포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제정과 같은 절차이다.
이런 헌정(憲政) 정지 사태에 법률가 집단인 파키스탄 변호사협회가 나섰다. 협회 소속 변호사들은 모든 재판 일정을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변호사들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운 사람에다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지식층이 경찰에게 몽둥이질을 당하며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 경력 15년이 넘는 칼리드 씨(45)는 시위 현장에서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원 최고 재판관이 내린 판결을 행정부가 폭력으로 뒤엎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변호사를 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은 최소한 사법부의 판단에 승복할 자질을 지닌 대통령을 원한다.”
파키스탄 지식인층과 국민의 민주화 염원에도 불구하고 무샤라프 정권은 꿋꿋하다. 시위대를 강제 진압한 경찰 고위 책임자인 무샤라드 씨(41)는 “이 시위 군중은 대부분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동조하는 무리이다. 이들의 난동으로 파키스탄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미 〈CNN〉이나 〈BBC〉 방송 수신이 끊겨버렸다. 파키스탄 국민은 국영방송 〈PTV〉만 볼 수 있다. 〈PTV〉 방송에서 무샤라프는 군복을 입은 채 등장해 이번 사태의 책임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판사들에게 있다고 역설했다.

ⓒ김영미 제공11월8일. 파키스탄 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들이 독재 정치를 멈추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민심은 이미 무샤라프를 떠난 지 오래되었다.
방송과 달리 신문사은 아직 발행을 유지하고 있다. 신문을 통해 시위 소식이 지방에까지 퍼지고 있다. 파키스탄의 유력 일간지 더 뉴스 기자 모하마드 씨(34)는 파키스탄 사법부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우리 시민들은 참 행복하다. 독재 정부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법부가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줬다. 사법부의 독립은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앞당길 것이다. 우리 신문들도 사법부를 끝까지 밀어주고 함께 싸울 것이다.”

ⓒ김영미 제공11월8일. 국회의사당에서 전경들이 시위대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 앞으로 돌격하고 있다.
파키스탄 군사 정권의 탄압 양상은 한국의 박정희 정권과 닮았지만 사법부와 신문의 대응은 달랐다. 1970·80년대 한국의 사법부가 군부 독재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민주화 투사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신문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 독재를 정당화했던 상황과 대비된다.

무샤라프, 내년 2월 전에 민주적 총선 약속

법조인과 신문 못지않게 대 무샤라프 투쟁에 나선 세력은 파키스탄 야당이다. 야당 총재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는 이번 사태의 장본인인 무샤라프를 맹렬히 비난했다. 무샤라프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두바이에서 급히 귀국했다. 그러나 그녀는 카라치 공항 비행기 안에서 내리지 못한 채 억류되어 한동안 체포될지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부토 전 총리는 9일 현재 이슬라마바드에서 가택 연금 중이며 대규모 시위를 기획하고 있다.

ⓒ김영미 제공11월8일.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정부 요원들이 철조망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위).
부토뿐만 아니라 ‘모슬렘 리그’라 불리는 이슬람 급진당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동조를 얻어 대통령 재신임에 반발하고 있다. 무샤라프 정권을 제외한 모든 사회 세력이 그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민심은 무샤라프를 떠난 지 오래다. 이슬라마바드 시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카림은 “나도 시위에 동참하려고 한다. 대법원장을 연행한 것은 대통령이 국민들을 무시한 처사다. 지금 시위에 참가한 많은 변호사들이 잡혀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가 모두 잡혀가면 다음에는 대학생들이 모두 잡혀갈 때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답했다.

11월9일 한 가지 희소식이 들렸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내년 2월 이전에 민주적 총선을 치르며 자신은 군참모총장직에서 물라나겠다고 발표했다. 과연 무샤라프가 약속대로 선거를 치를까? 부토가 권력을 되찾을까? 내년 3월에는 민주화의 봄이 올까. 파키스탄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자명 이슬라마바드=김영미 (프리랜서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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