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카산비야 마을 사람 대다수는 기독교 신자이다. 집집마다 벽에 십자가를 걸어둔다.
달빛이 3m가 넘는 바나나 나무들을 비춘다. 우간다 카산비야 마을 특유의 은은한 풍경이다. 이 바나나 나무뿌리 아래에는 슬픈 이야기가 묻혀 있다. 세계 최대의 전염병 말라리아와 에이즈 감염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잠든 곳이다.

흔히 우간다는, 에이즈 감염자를 줄이는 데 성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1986년 독재자 이디 아민을 무력으로 몰아낸 무세베니 현 대통령은, 내전과 에이즈로 무너진 나라를 부흥하려고 애썼다. 보건성은 국제보건기구(WHO)와 함께 에이즈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990년대 전반 20%를 넘었던 에이즈 감염률은 2003년 말 4%로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국제기구 전문가들은 이 통계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우간다의 (에이즈 바이러스)HIV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런던 대학 저스틴 파쿠스트(열대병 및 공중위생학)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HIV 감염률 수치는 특정 지역만 조사하거나 편협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어서 과학적 신빙성이 지극히 떨어진다”라고 비판했다. 아프리카 정부가,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선진국으로부터의 원조금을 받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통계를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9월17일, 세계은행총재 로버트 졸릭과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이 ‘동아프리카 정치인들이 선진국 원조금의 약 40%를 임의로 남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비리가 일상화돼 에이즈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개발 프로젝트의 예산은 효과적으로 운용되지 않는다. 우간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HIV 감염률이 4%라는 정부 통계가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벤데 마을에서 에이즈에 걸린 고아를 지원하고 있는 교회의 잭슨 씨(49)는 “감염률은 최저 20%다. 정부의 통계 속에는 잠재적 감염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의료기관에 그 사실을 알리거나 검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이즈 환자인 하스틴 씨(맨 오른쪽)가족. 짤 아엣(오른쪽 두번째)은 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한다.
수도 캄팔라로부터, 서쪽 이웃 나라 콩고 공화국으로 향하는 간선도로를 차로 3시간 정도 달리면, 카산비야라는 인구 3만명의 작은 농촌에 이른다. 카산비야는 우간다어로 ‘큰 나무’라는 뜻이다. 마을의 초록이 비가 내리면 요염한 물방울에 젖고 해가 지면 다홍색 석양에 물드는, 풍광이 수려한 마을이다. 올해 8월부터 필자는 카산비야 마을에서 2개월간 조사 취재를 했는데, 정부의 수치만 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말라리아 와 에이즈 환자를 만났다.

“더 이상 교회에 걸어갈 수도 없다라고 말하는” 2005년 에이즈가 발병한 하스틴 씨(35). HIV 바이러스에 남편이 2000년에 저세상으로 떠났고 지금은 그녀의 몸을 침범해오고 있다. 손발은 가늘어지기 시작해 장시간 걷거나 식사를 준비하기도 곤란하다. “콘돔이라는 물건이 있는 줄도 몰랐다. 제대로 예방을 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마치 독백 같았다. 병원이 마을에서 너무 먼 곳에 있어 하스틴 씨는 딱히 치료를 받지도 못한다.

아들 이노센트(12)는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 어머니가 에이즈에 걸린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하스틴 씨의 딸 아넷(13)은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병원에 보내고 싶다. 하루 종일 일하면 1000우간다 실링(약 500원)을 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돈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학교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HIV 환자를 괴롭히는 것은, 바이러스나 정치가의 비리만이 아니다. 사회의 편견이나 차별 때문에 그녀는 많은 친구를 잃었다. 하스틴씨의 부근에 사는 그녀의 언니 안나 씨(30)는,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다. 감염자와는 함께 밥을 먹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에이즈에 관한 지식이 없고, 그것이 어떤 병인지, 감염 경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실 안나 씨 역시 에이즈 환자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적도 없고, 앞으로 검사를 받을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우간다 오지 농촌에는 병원이 없어 에이즈 환자들이 방치되고 있다. 주민들은 에이즈 검사를 받을 기회조차 없다. 신문도 없고 방송도 들을 수 없어 농민들은 건강에 관한 지식을 얻을 방법이 없다.
병원이 없는 마을이 많고 초등학교를 중퇴해 버린 안나 씨 같은 농민이 건강에 관한 지식을 얻을 기회와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신문 방송 등으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마을에 사는 주부 마리안 씨는 자녀가 여덟 명이 있지만 이들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나이도 모른다. 마리안 씨의 남매들은 모두 말라리아로 죽었다. 남편도 멀리 떠나고 없다. 이것이 우간다 농촌의 현실이다.

카산비야 마을 주민 대다수는 기독교 신자다. 집집마다 벽에는 마치 부적처럼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다. 사회적 편견과 의료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는 가운데 엄청난 수의 에이즈 환자가 집 방구석에서 혼자 숨을 거두고 적막한 바나나 밭에 매장된다.
카산비야 마을에 바람이 불면  바나나 나무는 ‘사와사와’라는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그것은 마치 지하 세계 거주자들이 ‘잊지 마’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기자명 우간다 카산비야=에리코 와가(사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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