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밀은 겨울을 견뎌내 영양이 더 풍부하다. 위는 지난 3월 초 전북 군산에서 열린 밀밟기 행사.
독자 한 분께서 “주부의 마음이 담긴 기사 잘 보았다”라며 시골에서 숙모님이 장작불을 때서 만든 무공해 딸기잼을 보내겠다고 연락해오셨다. 거절하지 않았다. 곁들여 전하신 “최근 우리 밀 재배량이 크게 늘어 기쁘다”라는 그분의 마음을 십분 받들어, 보내주시는 딸기잼을 우리 밀 빵에 발라 맛있게 먹는 게 도리겠다.

그리고 농촌진흥청에 확인해봤다. 사실이었다. 우리 밀 재배 면적이 지난해에 비해 3.7배(7100㏊)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밀 자급률 1%대’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데 의미가 컸다. 눈물겨운 진전이다. 수입 밀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정부가 우리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급기야 자급도 0%였던 1989년,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시작되었다. 24개 농가에서 우리 밀 첫 파종식을 가졌던 그때를 떠올려보라.

2017년이면 자급률 10%까지 가능하단다. 이같은 성장은 수입 밀에만 의존하던 국내 제분업체가 곡물가 상승 여파로 우리 밀 시장에 뛰어든 덕분(?)이었다. 통상 서너 배 벌어졌던 수입 밀과 우리 밀의 가격 차가 지금은 환율에 따라 1.5배 안팎의 변동을 보이니 우리 밀과 수입 밀, 한번 붙어볼 만한 조건이 된 것이다.

정부, 우리 밀 연구 좀 하시라

우리 밀 건빵을 사봤다. 제품 겉봉에는 이런 홍보 문구가 있었다. “우리 밀 1㎏ 소비=우리 밀 밭 1평 확대, 산소 2.5㎏ 배출, 이산화탄소 3㎏ 흡수.” 실제 밀 농사로 인한 공기정화 기능은 45년생 소나무를 기르는 것에 이를 정도라는 실험 결과도 있다. 식량주권 확보도 좋고, 생태환경 보전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은 식품 안전성. 과연 우리 밀이 수입 밀보다 나은가. 안타깝게도 우리 밀 관련 운동단체나 학계를 제외하고 정부기관의 공식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인지, 우리 밀은 정책 당국의 관심 밖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검역 과정에서 수입 밀의 농약 허용치를 검사할 뿐이다. 우리 밀의 우수성을 가장 활발하게 연구해온 최면 교수(강원대·식품가공학과)는 “국제 통상 기준이 몸에 이롭다, 아니다를 판별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라고 말한다. 최 교수는 1997년 논문을 통해 우리 밀이 수입 밀에 비해 유해세포를 분해하는 면역 기능이 두 배 이상 우수하고, 노화촉진물질(MDA)의 생성억제력도 두 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제 곧 5월이면 모내기철. 그쯤이면 우리 밀 밭은 황금빛으로 변해 있을 때다. 수입 밀은 봄 파종→가을 수확이지만, 우리 밀은 가을에 씨를 뿌려 초여름(6월)에 수확한다.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다. 여름을 지내는 수입 밀과 달리 우리 밀은 겨울을 나기 때문에 적은 일조량과 추위를 견디면서 더 강인한 영양을 품게 되고, 잡초나 해충 피해가 심한 여름을 피하기 때문에 살충제를 쳐야 할 이유가 없다. 친환경 재배의 조건이 저절로 갖춰진 셈이다. 게다가 수입 밀처럼 고온다습한 기후를 통과해 한 달여를 배 안에서 보내야 하는 운반 과정도 거치지 않으니 또한 약 칠 일이 없다. 신토불이의 경쟁력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허준 선생도 〈동의보감〉에서 그러셨다. 밀가루는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좋게 하지만 ‘묵은’ 밀가루는 열과 독이 있고 풍(風)을 동(動)하게 하느니….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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