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민단체가 받는 정부 보조금에 대해 아주 말이 많아졌다. 특히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로 많은 단체가 고사 직전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때 아시아 최대 환경단체라던 환경운동연합은 몇 차례 자금 스캔들이 터진 이후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이런 시민단체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정도 되는데, 고용은 전체의 5%가량을 담당한다고 추정된다. 이 얘기를 뒤집으면 그만큼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배고프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 다른 면에서는 고용 창출 기능을 어느 정도 해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다. 조금 넓게 해석하면, 이렇게 시민단체와 관련된 고용을 ‘사회적 고용’ 또는 ‘사회적 경제’라고 보기도 한다.

농업의 사회적 고용 효과 높아

그렇다면 농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각을 가질 수 없을까? 2007년 통계로 농업 인구는 7.1%,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8% 정도 된다. 이 수치만으로 본다면, 농업이 광공업 경제활동에 비해 소득은 적지만, 사회적 고용이라는 면에서 그 효과가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유럽에서 보통 농업을 사회적으로 지지하는 방식은 세 경로가 있다. 첫 번째는 지역 정책으로서의 농업 지원인데, 이런 지원은 WTO에서도 예외로 할 만큼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이다. 두 번째는 유기농업 지원이라는 형태로, 보호종·지역 특성·재래종 따위 다양한 항목으로 농업을 지원한다. 그리고 세 번째 경로는 바로 고용정책이다. 스위스의 경우 비농업 인구가 농업으로 유입될 때 상당한 규모로 인력에 대한 간접 지원을 하고 있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워낙 1990년대 초·중반부터 실업 문제를 겪은 나라들이어서 고용이 정치적 이슈가 된 역사가 깊다. 그래서 대규모 고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농업이 매우 중시된다.

1970년 한국은 인구의 50%가 농업에 종사했다. 이후 계속 줄어 2007년에는 7.1%대이다. 물론 이탈리아 4.8%, 덴마크 3.2%에 비하면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런 통계를 들어서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에서는 아직도 농업 인구가 너무 많다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농업 쪽이 아무리 죽는 소리를 해도 많은 경제관료나 경제 전문가가 귓등으로도 듣는 시늉을 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너무 많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농업 인구가 300만명 조금 넘는데, 이 수가 150만명 정도 되어야 우리나라를 선진국 수준이라 생각할 사람이 이들 경제 관료이다.

그러나 걱정 안 해도 된다. 10년만 지나면 한국 농업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농업 인구가 줄어 선진국 비율인 2%대로 안착하게 되어 있다. 한국 농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흔히 ‘농가 고령화’라 불리는 농민 인구구조 문제이다. 한국은 농민 대신 농가 인구라는 통계를 농업 총조사 항목으로 사용하는데, 약간 문제가 있지만 고령화 추이를 보기에는 그런대로 쓸 만하다. 현재 농가 인구 기준으로 60세 이상이 41%, 여기에 50대를 추가하면 60%에 가깝다. 물론 농업은 정년이 없으므로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기는 하다.

60대 이상 인구가 40%가량인 한국 농업은 인적 재생산에 실패한 셈이다. 위는 경남 산청군 생초면 농부들이 봄을 맞아 감자 파종을 하고 비닐을 덮는 모습.

개발할 때 얼른 농지 처분하라고?

그러나 정부는 가능하면 ‘규모화’를 하느라고 지금까지 이런 고령 농가에 휴경직불금을 지급하거나, 혹은 6만 호 정도의 규모농에게 농지를 팔거나 임대하게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나이 많은 분은 어지간하면 농사를 그만 짓고 6ha 규모농에게 넘기라는 게 노무현 시절의 농업정책이었던 셈이다. 사실 정부가 애지중지하는 이 6만 호, 1만8000평 정도의 규모농 목표가 6만 호인데, 30~40대 가장 기준으로 6만명 정도가 신자유주의 시대 농업정책의 적자인 셈이다. ‘벤처농’이니, 경영 마인드를 갖춘 농업 경영인이니 온갖 화려한 수식어는 기본적으로는 이 6만명 목표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머지는? 주변 개발할 때 얼른얼른 농지를 처분하고 보상금 받아서 농사 그만두라는 게, 슬프지만 한국 농업정책이었다.

농가 인구 기준으로 20~49세 농민은 85만명 정도 된다. 이들이 다 남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실질 농민’은 인구의 2% 정도로 자동 조정된다. 사회과학 용어로 표현하면, 한국 농업은 ‘재생산’에 실패한 셈이다. 물론 외환 위기 시절,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유턴이니 하면서 귀농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지만, 겨우 수천명 수준일 뿐이다. 결국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 농업은 자신들의 2세이든 혹은 사회구성원이든, 어떤 식으로든 농업인을 인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그러다보니, 읍·면 곧 공식적인 농촌 지역에서는 인구 유출 때문에 행정단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고, 주민등록을 옮기기만 해도 지원금을 주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임신부 이주를 위한 읍·면들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임신부가 이사를 오면, 인구가 곧 ‘2명이나’ 늘지만 무엇보다도 고령화 지표에서 획기적으로 평균연령이 낮아진다. 농촌 지역에서 아이 울음소리 들은 지 오래되었다는 얘기가 말해주듯 한국 농업은 늙어가는 중이다. 전국적 이동에 관한 통계를 보면, 어쨌든 수치상으로는 이렇게 농촌 지역에서 빠져나온 사람 대다수가 경기도로 이사했다고 보면 어느 정도 맞는다. 고단한 농민 생활을 접고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서울은 너무 비싸서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하는 셈이다. 물론 수도권 집값은 그동안 엄청나게 뛰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다시 농업을 일종의 고용정책으로 보면 안 될까? 안 될 것은 없는데, 이에도 연령별·계층별로 시각 차이가 생긴다. 노무현 정부는 중반기를 맞으면서 ‘농업’ 대신 ‘농촌’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쳤는데, 수도권에 살면서 주말농장을 할 사람 또는 은퇴한 연금생활자를 중심으로 한 정책이다. 실제로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농촌으로 내려간 전임 대통령의 요즘 정치적 파국을 보면, 마음이 씁쓸하다. 어쨌든 이 정책을 사회과학적으로 해석한다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중산층이 수도권과 농촌 두 곳에 집을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살다가 나중에 은퇴하면 농촌에 정착하라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정책에서도 소외되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농촌 이주를 두고 ‘농업 재생산’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는 점이다. 좋게 얘기하면 ‘낭만적 농정’이고, 정확히 얘기하면 농촌을 ‘거대한 레저 타운’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농촌을 ‘거대 레저 타운’으로 여기나

결국 20대와 도시빈민들을 어떻게 농업 고용 정책과 연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 핵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인기 있는 정책은 아니다. 성공하면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획기적인 고용정책이 될 수 있지만,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원성을 사기에 딱 알맞은 정책이 된다. 그래도 유기농업과 연계하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유기농업이 결국 노동 집중적 농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기농업 종사자를 인구의 3% 선으로 만든다고 목표를 삼으면 ‘녹색 뉴딜’과 ‘녹색 고용’이라고 부를 만하다. 강바닥에 시멘트를 처바르는 데 쓸 돈 수십조원을 유기농업으로 돌린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나?

기자명 우석훈 (경제학 박사·〈88만원 세대〉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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