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여야는 미디어법안과 관련해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 후 표결 처리”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합의에 대한 반응과 평가는 엇갈렸다. 당시 총파업을 이끌었던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향후 100일 동안 모든 방송·신문사가 매일 현 정부의 실정을 폭로하고, 언론법의 문제점을 지적해 6월 국회 상정을 엄두조차 못 내게 해달라”라고 역설했다. 이른바 ‘보도투쟁 100일’의 시작이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보도투쟁 100일’ 성적표는 어떨까. 초라하다. 속된 말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미디어법안 관련 보도만 문제가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 파문, 장자연 리스트, 청와대·방송통신위원회 성 접대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 만한 대형 사건이 이 기간에 줄줄이 터졌다. 언론인 체포와 같은,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언론은 무관심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언론이 관심을 보였던 장자연 리스트는 연예 저널리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YTN 노종면 위원장 구속과 MBC 〈PD수첩〉 이춘근 PD 체포 등은 최소한의 ‘의무방어전’에 머물렀다. 언론 자유를 위한 언론인의 연대? 그들은 철저한 방관자였다.

언론의 관심은 ‘다른 쪽’에 집중됐다. 주요 현안을 뒤로 미루면서 올인한 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김연아였다. 여기에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앞장섰다. WBC 결승전이 열린 지난 3월24일, 방송 3사는 메인 뉴스의 절반을 WBC로 채웠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3월29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WBC나 김연아 선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WBC·김연아 보도를 메인 뉴스의 절반 이상으로 도배하는 게 온당한지는 의문이다. 그 ‘도배질’에 언론인 체포와 구속이 뒤로 밀리거나 가려졌다면 더욱 그렇다.

방송 3사가 주요 현안을 뒤로 미루면서 ‘올인’한 것은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었다. 위는 야구대표팀.

현재 언론 상황이 MB 정권만의 문제인가

YTN 노종면 위원장과 MBC 〈PD수첩〉 이춘근 PD가 체포·구속되고 풀려나는 과정에서 많은 언론인이 ‘MB 정부의 비이성적 언론 탄압’을 질타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들의 비판은 개인 차원에서 끝났고 보도와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사석에서 정부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인이 그래선 안 된다.

언론노조 총파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파업에 참가한 언론인들은 한목소리로 ‘이명박 정권 언론탄압 중단’을 외쳤다. 하지만 업무에 복귀한 이후 동료 기자와 PD가 부당한 탄압을 받을 때 언론인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냉정히 말해서 그들은 이중적이었다.

언론인 대다수가 MB 정권의 언론 탄압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의한다. MB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노골적이고 천박한 수준으로 언론 장악을 시도한다. 하지만 현재 언론 상황이 MB 정권만의 문제인가. 동의하기 어렵다. 각종 사회 현안을 밀어내고 국민적 관심이라는 미명 아래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동참한 건 정권이 아니라 언론 자신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련의 과정에서 내부 견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MBC의 경우 최근 신임 보도국장 정책설명회에서 ‘과도한 WBC 보도’가 지적됐지만, 그뿐이었다. 김연아 관련 보도에서 비슷한 보도 행태는 계속됐다. 최근 언론 보도에 대해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팀장은 “마치 과거 군사정권 시절 ‘3S’가 2009년판으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걱정되는 건 그것이 타의가 아니라 자발성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지금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MB 정권의 언론 탄압이 아니라 언론 스스로의 천박한 상업화와 저널리즘 실종이다.

기자명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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