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조계사 앞에 걸린 조선일보 구독거부 현수막
목탁은 펜보다 강했다. 신정아 사건 관련 보도로 불교계의 구독 거부 운동에 직면한 조선일보가 25일 만에 꼬리를 내렸다. 불교계를 어르고 달래는 기사를, 낯 뜨거울 정도로 여러 건 써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사찰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구독 거부에 동참한 스님과 신도들 숫자도 3만명이 넘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불교계의 진노는 풀렸다. 방 사장은 10월 30일 총무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언론의 권력화에 대해 경계하고 있으며, 이번 기회를 스스로 점검하는 좋은 기회로 삼겠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강천석 주필도 “문제의 기사는 편집국장이 퇴근한 이후에 들어온 것이어서 체크할 수가 없었다”라며 군색하게 해명했다. 이쯤 되면 가히 ‘조선일보의 굴욕’이라고 부를 만하다.

ⓒibulgyo.com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위는 불교신문 인터넷 기사의 사진이다. 이사진은 다음날 교체되었다.
내부 논란으로 엎치락뒤치락

그런데 사건의 이면은 조금 다르다. ‘전격 방문’까지는 숱한 내부 논란이 있었다. 10월26일, 먼저 조계종을 방문한 김창기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사과문 게재, 방 사장의 사과방문, 구독 거부 철회 등 세 가지 조건에 합의한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신문이었던가. 사과문을 싣기로 한 10월30일, 조선일보는 돌연 태도를 번복한다. 사과문 게재와 사과 방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계종 측은 합의파기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집단은 계속 평행선을 달릴 것 같았다.

결국 30일 오후 불교계 인사의 주선으로 방 사장의 전격 방문이 이뤄지면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조계종 측은 ‘조선일보가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며 ‘구독 거부 철회’ 방침을 밝혔다. 사찰마다 내걸었던 현수막도 즉시 철거했다.  

하지만 사과를 받은 조계종의 입장도 마냥 편치만은 않다. 30일 만남에서 양 측은 1면에 ‘사과문’을 싣기로 합의했지만, 조선일보는 11월1일자 2면 하단에 ‘조계종, 조선일보 구독 거부 운동 철회키로’라는 제목의 ‘기사’만을 내보냈다.

이를 두고 조계종 내부에서는 구독 거부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일자 기사를 사과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내부 조율을 거치면서 구독 거부 운동은 완전히 종결됐다.
조선일보와 조계종, 두 집단의 ‘파워게임’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양쪽 모두 스타일만 구긴 채, 어떤 의미 있는 ‘성과’도 남기지 못했다. 펜에게는 물론, 목탁에게도 개운치 않은 결말이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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