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한 해에 3만명이 넘는 결핵 환자(위)가 발생한다.
1983년 6월 어느 날. 기자는 외가 쪽 친지 몇 분과 충남 공주 외곽의 한 병원 앞에 서 있었다. 병원에서 한 달째 요양 중인 40대 초반의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참 뒤 헐렁한 환자복을 입은 외삼촌이 나타났고,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희고 찬 손을 내밀었다. 30여 분 동안의 면회.

그날 외삼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두 가지는 또렷하다. 그의 얼굴에 요양 생활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완치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는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삼촌은 병원을 ‘탈출’하지 못했다. 2년간 서너 차례 병원을 더 드나들더니 결국 결핵균에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후 세상은 빠르게 변모했다. 결핵균 연구와 치료에서도 굉장한 발전이 있었다. 덕분에 환자 수는 급격히 감소했고, 이제 결핵균 박멸은 시간문제인 듯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결핵 시계’는 어쩐 일인지 거꾸로 돌고 있다. 하강하던 발병률(인구 10만명당 환자 수)과 사망률(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이 늘거나 주춤대는 것이다.

20~30대가 결핵균에 취약한 까닭

2008년 현재 우리나라 신규 결핵 환자는 3만4157명. 지난해보다 553명 줄었다지만, 발병률(70.3명)과 사망률(4.9명)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참고로, 한국을 제외한 OECD 국가의 평균 발병률과 사망률은 각각 17.7명과 2.1명에 불과하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만 결핵 환자가 많은 것일까.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문가들은 오래된 감염자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1960~70년대에 감염된 잠재 결핵 환자가 많은데, 이들이 제2, 제3의 환자를 양산해낸다는 것이다. 불균형한 영양 섭취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1차 결핵 치료제 ‘아이나’와 ‘리팜핀’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난치성) 결핵 환자도 다수 눈에 띈다. 지난 3월 말, 국회 최영희 의원(민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에서 다제내성 결핵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2262명. 특이한 것은 연령대별 환자 수이다. 경제 활동이 가장 왕성하다는 30대·20대 환자 수가 569명·482명으로 1, 2위를 차지한 것이다(반면 40대는 478명, 50대는 379명, 60~70대는 438명이었다).

이 통계 역시 궁금증을 낳는다. 왜, 나이 많은 사람에 비해 젊은 사람이 더 난치성 결핵에 취약할까.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몇몇 전문가는 조심스레 ‘반복되는 단체·사회 활동’과 ‘불균형한 영양 섭취’를 의심한다. 또 20, 30대가 BCG(결핵 예방접종)의 힘이 떨어지는 시기여서 결핵에 취약하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있다.

결핵, 90%는 폐에서 발병

모르기는 슈퍼 결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국내에서 확인된 슈퍼 결핵 환자 수는 238명. 슈퍼 결핵은 1차 치료제뿐만 아니라 2차 항결핵제인 주사제와 퀴놀론계까지 내성을 보이는 결핵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슈퍼 결핵 환자는 18만명 정도이다. 이는 전체 결핵 환자 900여 만명 중 2%에 해당하는 수치. 

어쩌면 더 큰 문제는 환자 숫자가 아니라, 질병에 대한 일반인의 무지일지도 모른다. 수백, 수천 년 동안 “독해!” 소리를 들어가며 인간을 괴롭혀온 질환이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결핵의 진면목을 모른다. 믿기 힘들겠지만,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염병이다. 요즘도 한 해에 165만명 정도가 결핵으로 사망한다. 다행히 병원체는 규명이 되었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가 결핵균을 찾아낸 것이다.

결핵균은 길이가 1~4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 굵기가 0.2~0.5㎛밖에 안 된다.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은 결핵균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백안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른 체 하다가는 큰코다친다. ‘작은 거인’이라 불릴 정도로 결핵균의 감염력은 여전히 대단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결핵균은 한국에서만 하루 100명 안팎의 환자를 만들어낸다.

결핵균의 파괴력이 늘 막강한 것은 아니다. 환자의 몸속에서는 비교적 조용하다. 그러나 환자의 기침과 재채기를 통해 밖으로 나온 뒤, 다른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면 표변한다. 빠르면 2~3년 안에 활동하기 시작한다. 다행히 결핵균에 감염된 모든 사람이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중 10%만이 발병한다(어쩌면, 지금 당신의 몸속에도 결핵균이 잠복해 있는지 모른다). 또 결핵은 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90%는 폐에서 발병하고, 나머지 10%는 놀랍게도 척추·신장·뇌·흉막·림프절 등에서도 생긴다.

결핵에 걸렸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조기 발견하면 항결핵제로 치료가 가능하다. 항결핵제는 세포벽 형성을 막거나 복제를 방해해서 결핵균의 확산을 막는다. 이때 최소 6개월간 항결핵제를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딱하게도 적지 않은 환자가 약 복용을 귀찮아하고, 약의 부작용에 시달리기 싫다며 치료를 게을리한다. 결핵균은 이 틈을 노린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약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것이다. 다제내성 결핵과 슈퍼 결핵도 이 과정을 거쳐 생긴다.

현재 결핵을 예방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는 BCG가 꼽힌다. BCG를 접종하면 결핵에 걸릴 확률이 5분의 1로 줄어든다. 그리고 효과도 10년 이상 지속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인용 BCG가 없으므로 일반인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기 주변에 환자가 있나 없나 살피고, 그 사람을 무조건 멀리할 필요는 없다. 결핵은 비말핵(환자의 기침·재채기·말 따위를 통해 공기 중으로 나온 균)을 통해 감염되므로, 환자가 사용하는 물건은 함께 사용해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도움말:김희진 결핵연구소장, 나경인 연구사(질병관리본부)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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