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휴대전화 끊기를 시도한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술 끊기 한 달에 도전했다. 그리고 실패했다’로 이 연재를 마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주위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래 마셨지?”라며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축적된 이미지 탓이니 누굴 탓하랴.

갈등도 있었다. 술 끊기 소식이 알려지면서 강호의 주당들이 도발을 시도해왔다. 한 선배는 대놓고 ‘배신자’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시사IN〉에 만평을 그리는 김 아무개 화백과의 술자리에서는 내내 탄산음료만 마셨음에도 그는 “2차도 가자”라며 나를 꾀었다. 평상시였다면 김 화백과의 술자리를 3차·4차라도 마다할 리 없지만, 이날은 과감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직도 그의 취기 어린 얼굴이 아른거린다.

술 끊기는 짐작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술을 끊었다’라는 자기 암시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던 덕인지 술 생각이 크게 나지 않았다. 지금은 허탈하기까지 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못 끊을 거라며 벌벌 떨었던 것일까. 며칠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초조해하던 내 ‘알코올의존증’은 어쩌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술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술이라도 마시며 삶의 위안으로 삼았던 것이 아닐까. 

술 끊기를 시작하며 한 포털 사이트 ‘알코올중독(의존) 치료 모임’에 가입했다. 회원이 4500명이나 되었다. 알코올 의존 사례를 읽다 보니 그야말로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아침 공복 술’이 마시고 싶어 산책을 구실로 공원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는 동갑내기부터, 금주를 강요하는 아내 몰래 집안 구석구석에 술을 숨겨놓았다 들켜 이혼당한 중년 아저씨까지…. 술을 끊고 싶다는 글을 올리면서도 소주를 마시고 있다는 어떤 이의 사연 앞에선 가슴이 아렸다.

술자리 대신 미술관 등을 다니는 일상이 이제 어색하지 않다.

술 끊기, 누군가에겐 인생을 건 도전

그제야 비로소 내가 하는 ‘술 끊기’라는 게 누군가에겐 ‘인생을 건’ 도전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알코올의존증 전문가는 “알코올의존증에 빠진 사람은 특별하지 않다. 기분 전환이나 스트레스 해소로 술을 즐기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단 한 달 정도 금주에 성공한다면 앞으로도 금주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술 끊기는 내 삶의 ‘이벤트’였다. 알코올의존증을 운명처럼 여기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30대 후반의 평범남에게 주어진 자아 성찰의 기회였다. ‘왜 술을 끊어야 하는가’로 시작한 물음은 결국 ‘과연 나는 뭘 좋아하나’로까지 이어졌다. 술 마시지 못하는 이들과 어울리며 그동안 맺어온 ‘관계’에 대해서도 되새김질했다.     물론 한 달 동안 좋은 일만 일어난 건 아니다. 여전히 술자리 중심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감은 어쩔 수 없었다. 술 대신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지 궁리하는 것도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희비가 엇갈린 한 달’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 질문에 답해야겠다. 과연 내게 술 없는 삶은 지속 가능할까. 솔직히 자신 없다. 다만 알코올의존증으로 치닫던 삶을 ‘조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얻었다. 지난 한 달 동안의 경험이 술 말고 대안이 없던 단조로운 삶에 균열을 냈기 때문이다. 술자리 대신 미술관이며 연주회를 다니거나 찻집에서 수다를 떠는 일상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남에게 술 끊기를 전도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특히 좋은 세상 만드느라 애쓰시는 사회 운동가들, 이분들 중 술 말고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 많다. 한 번쯤 금주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장담하건대 그 뒤에 보이는 세상은 전과 같지 않다. 만약 금주에 성공하면 꼭 연락하시라, 내가 한잔 쏜다.

※ 다음 호부터 ‘끊고 살아보기 4탄 - 밀가루’ 편을 연재합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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